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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유자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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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Feb 25. 2016

하품은 연결고리

오전의 주요 일과

오전 생활 패턴은 대체로 일정하다. 아침을 먹고, 청소 아니면 빨래를 한다. TV를 보면서 운동을 조금 하고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훑어본다. 보통 이때쯤 유자가 슬금슬금 내 곁으로 온다. 뭔가 바쁘게 움직인다 싶을 때는 제 집에 들어가 얌전히 있다가 내가 한가해 보이면 자기한테 관심 좀 보이라는 듯이 슬며시 앞발을 들이민다.

적당히 쓰다듬어 주지만 유자의 목적이 산책이라는 걸 알고 있다. 오전 일과의 마무리가 산책이다 보니, 유자도 그 시간이 되면 뭔가 안다는 듯이 보챈다. 뜬금없이 배를 뒤집어 보이거나 내 팔을 긁는다. 내가 들고 있는 스마트폰이나 책을 탁탁 치며 떨궈버릴 때도 많다. 그래도 별 반응이 없으면 길게 누워 하품을  쩍쩍하고 하염없이 내가 움직이기를 기다린다. 나는 이 하품을 기다린다. 이렇게까지 기다리게 하는 건 좀 못된 심보 같지만, 개의 하품은 너무 귀엽다. 유자가 하품을 할 때마다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을 찍는데, 예쁜 사진을 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무리 잘 찍어도 실물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 사진이면 뿌듯해진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나도 모르게 유자의 하품을 따라 하게 된다는 점이다. 어디선가 개의 하품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개는 주인이 하품을 하면 따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하품에는 전염성이 있다더니 개와 사람 사이에도 그 말이 통용되는 줄을 몰랐다. 그 뒤로 유자 앞에서 가끔씩 과장된 하품을 해보지만 유자가 내 하품을 따라한 적은 없다. 오히려 내가 유자의 하품을 따라 할 때가 많아서 '얘가 날 아랫것으로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겠구나' 싶을 때가 훨씬 많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유자 하품을 또 따라 하고 있는 나다.

그래도 언젠가 한 번쯤은 유자가 내 하품을 따라 해 줬으면 좋겠다. 같이 늘어지게 하품을 하면, 적당한 지루함과 안락함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현실로 바뀐다. 꼭 하품을 같이 하지 않아도 내가 즐거울 때 얘도 즐겁고, 가족들이 편안할 때 얘도 편안함을 느낀다면 좋겠다. 유자는 뭐, 누가 슬프고 힘들 때도 혼자 즐거운 애라서 이런 바람은 무리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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