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이 없으면 견생은 허무해
도서관에서 책 세권을 빌려와 열심히 읽었다. 세 권 모두 개를 잘 키우기 위한 안내서다. 진지하게 몰입해서 읽게 된 책도 있고, 만화책 보듯이 가볍고 재밌게 책장을 넘긴 책도 있다. 읽다보니 나름 재미가 있어서 다른 책도 좀 더 볼 생각이다. 유자와 함께 산 지가 햇수로 5년이니, 지금 읽기는 좀 새삼스러울 수도 있는 책들이다. 사실 개에 대한 책들을 아예 찾아읽지 않았던 건 아니다. 처음엔 아무 정보가 없으니 답답한 마음에 인터넷과 책을 뒤져보게 된다. 시간이 좀 지나 개가 있는 생활에 익숙해지고, 스스로도 뭘 좀 안다 싶게 되니까 더 이상 새로운 걸 찾아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그럼 새삼스럽게 이런 책들을 읽는 이유는 무엇이냐, 노르웨이 때문이다. TV를 보다가 노르웨이 '동물보호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하루에 개를 세 번 이상 산책시키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된다고 한다! 하루에 한 번 산책시키는 것도 쉽지 않은데 세 번의 산책이라니. 동물의 권리보호에 대해서도 높은 수준의 공감대를 이루고 있는 시민의식이 굉장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유자는 비가 오지 않는 한 매일 산책을 나간다. 그건 유자에게도 좋은 일이지만 나를 뿌듯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했다. 내 할 일 하기도 바쁜데 산책은 꼬박꼬박 시켜주니까 유자 정도면 행복한 개라며 스스로를 '좋은 주인'으로 여기도록 만들었다. 노르웨이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동물 학대' 수준으로 유자를 키우고 있는데도 '유자 정도면 행복한 개야'라고 생각하는 건 괜찮은 일일까?
그래서 앞으로는 하루에 두 번씩 산책하기로 했다. 세 번을 약속하는 건 도저히 무리라서 일단 두 번으로 절충했다. 두 번의 산책도 언제까지 가능할지 장담할 수 없다. 하는 데까지는 해보려고 한다. 오늘까지 실천 3일째다. 두 번씩 나가니까 보통 4~5km 되던 산책길이 최소 6km로 늘었다. 산책을 다녀와도 쌩쌩하게 놀던 유자가 두 번 나갔다오면 바로 꿀잠을 잔다. 나도 너무 피곤해서 낮잠이 간절해진다는 부작용이 있지만. 두 번이 익숙해지면 가끔씩은 하루에 세 번 나가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어보면 반려견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기-승-전-산책'인 경우가 많다. 짖는 개도 겁 많은 개도 밥을 안 먹는 개도 충분한 산책이 필요하다고 한다. 한 번으로 부족하면 두 번, 그래도 안되면 세 번. 산책이야말로 개의 행복을 만드는 핵심재료인가보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의 행복에는 아주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그에 비하면 개의 행복은 단순하다. 주인이 곁에 있고, 제 때 음식을 먹고, 즐거운 산책을 할 수 있다면 개의 삶은 충만해진다. 사람보다 동물의 행복이 먼저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보다는 유자의 행복을 만드는 게 더 쉬워 보인다. 내가 평범한 북유럽인만큼 행복해지는 건 이번 생에 장담할 수 없다. 유자는, 하루에 세 번 나가기만 하면 된다. 일단은 하루 두 번의 산책이다. 북유럽의 개만큼은 아니어도 아시아에서는 행복한 축에 속하는 개로 살게 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