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개골을 바라보는 운명론적 관점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화로운 산책 중이었다. 쭉 뻗은 길을 걸으며 유자와 나와 동생은 하하호호 즐겁게 걸었다. 약 십분 정도는 평소와 같았다. 갑자기 유자가 다리를 덜덜 떨기 전까지는. 오른쪽 뒷다리로 계속 허공에 발길질을 하고 걸을 때도 땅에 한 발을 딛지 않았다. 처음엔 벌레에 물리거나 뭔가에 찔려서 그런 줄 알았다. 들어 올려서 다리를 살펴봐도 별 이상이 없었고, 만질 때 아파하지도 않았다. 다리는 계속 떨렸다. 산책을 그만 하고 집으로 가야 할지 동물병원에 가봐야 할지 동생이랑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유자가 다시 말짱하게 걸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일단 근처 병원으로 갔다.
결론적으로는 병원에 가길 잘했다. 어떤 처치를 하거나 약을 받아오진 않았다. 하지만 '슬개골 탈구 1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충분히 알고는 있었다. 푸들을 비롯한 소형견들에게 슬개골 탈구는 아주 흔한 질환이라는 것을. 점프와 달리기를 좋아하는 유자도 언젠가는 무릎에 이상이 생기리라는 것을. 하지만 아는 것과 겪는 것은 다르다. "아직 심하진 않지만 오른쪽 무릎은 좀 안 좋네요."라는 수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는 순간 어쩔 수 없이 얼굴이 굳었다. 한참 동안 슬개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나는 '올 것이 왔군'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작은 개들의 운명이 그렇다는데, 뭐 별 수 있나 싶다. 다행히 아직 심각하진 않아서 상황이 악화되는 걸 늦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 높은 곳에서 뛰지 못하게 하고, 밖에서도 달리지 못하게 하고, 뒷발로 서는 것도 못하게 해야 한다. 슬개골 수술을 염두에 두고 미리 돈도 모아볼 생각이다. 유자가 좋아하는 딸기 모양 장난감도 버렸다. 가장 오래 갖고 놀던 장난감이라 이미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그동안은 유자가 제일 좋아하는 놀잇감이라는 이유로 버리지 못했다. 이젠 던지고 물어오는 놀이도 자제해야 할 것 같아서 미련이 줄었다. 장난감이 해지는 동안 유자 무릎도 이렇게 됐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버리기가 쉬웠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늙으면 쇠약해진다. 아무리 운이 좋은 사람도 젊음을 영원히 지킬 수는 없다. 운이 나쁘다면 육체도 정신도 사정없이 쪼그라든 노년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사람은 노화를 피할 수 없고, 작게 더 작게 개량되어 온 푸들은 부실한 무릎을 갖고 태어날 수밖에 없다. 서글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쩔 수 없지만 서글픈 일이다. 나는 이런 걸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닥친 일을 어쩔 수 없는 걸로 치부하는 건 약한 마음일까? 약한 마음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일까? 무엇이어도 좋지 않을까. 뭐가 됐든 그런 관점은 서글픈 일을 조금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그래야 한숨짓는 단계를 벗어나 고민이든 행동이든 계속할 수 있다. 그래서 내일부터는 조금 천천히 산책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