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고 보니 우리 부부에겐 공통적인 배경이 있었다. 사이가 좋지 않음을 넘어서로에게 파괴적이기까지 한 부모님들의 관계였다. 어머니들의 공통점: 한 분은 양자를 가신 장손 집 며느리였고, 다른 한 분은 계모와이복동생들이 많은 집 장손 며느리셨다. 혼인의 이유는 단 하나 '엄청난 양반가'였다.' 양반이 밥 먹여주나'란 비아냥이 왜 나왔는지 알만한 고단한 삶이 펼쳐졌다. 당신들에게 무심한 남편과 혼인 초기의 가난하고 고된 시집살이에 화병까지 생기셨는데 짐만 지워졌고 위로와 보람이 없으니 그랬을 것이다.
양가의 다섯 자식들은 철이 들면서 각자의몫만큼 어머니의 '과거'와 '고통'에 대한 하소연을 들어야 했다. 부모의 불화에 상시 노출되어 '행복한 가정'의 예를 보지 못했고 가정의 평화로움은 더더욱 누리지 못했다. 그중 일찍 자립한 형제자매의 경우엔 고생은더 되었겠지만 거리를
두고 사니 나은 점도 있었을 거다. 나는 막내로 예민하고 몸이 약했는데 그런 분위기의 과부하로 어릴 적부터 마음의 병이 생겼다.
하지만 적령기가 되자 다들 결혼을 했다. 얼핏 봐도 멋져 보이던 오빠의 괜찮은 배우자들! 나는 또렷하게 보아온 부모의 결혼 생활과 나에게 쌓인 슬프고 나쁜 기억을 떨쳐버릴수 없었다. 나에게 '결혼'은 상상만으로도 자신이 없고 피하고 싶은 그 무엇이었다.
8년의 연애! 함께 보낸 시간만으로도 사람에대하여 알게 된 것이 많아졌고 결정의 시간도 다가왔다. 올림픽이 한창이던 1988년 11월에 나는 결혼했다. 남편은 헌신적이고 사랑이 많은사람이라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지금껏 최고의 사람이다.
두려움에 꺼려했던 결혼 이었던 만큼 나 자신은 시행착오가 많았다. 부모의 행보를 이어가기도 했으며 '좋은 부모와 배우자'가 되려던 다짐과 의지는 사소한 것들에도 무너지기 일쑤였다.
27년이 지난 지금! 나는 많은 게 좋아졌다.더 이상 부모님들의 삶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며, 건강하고 발전적이며 용기 있는 사람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애써 길러주셨고 자식들에게만은 사랑과 하실 수 있는 최고의 교육적 뒷받침을 해주셨음을 기억하려고 한다. 어떤 사람들에겐 부모의 삶이 복사판처럼 재현되는 경우가 있고, 다른 경우에는 정반대로 살아가기도 한다. 운명이고 팔자소관일까? 그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