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고 당당한 그들!
한파 재난문자가 빈번했음에도 불구하고 며칠
전에 약속한 겨울 나들이를 위해 6시에 일어나
서둘렀다. 빠른 준비 후 사과와 내린 커피를
마시고 나니 시간 임박! 매섭게 추운 캄캄한 길
을 J와 나는 숨차게 뛰다 걷다를 반복하며 마을
회관까지 달렸다. 멀리 서봐도 회관의 두 방 불
빛이 밝다. 정시에 도착한 우리와 달리 마을분
들은 일찍 도착하여 벌써 커피까지 나눠 드셨단
다. 관광버스 안은 따뜻했다.
버스 맨 뒷좌석에 같이 앉은 나와 남편과는 달리
이분들은 남자와 여자가 따로 앉았다. 남녀유별
의 현장이다. 대다수가 초면이었다. 차는 그 옛날
'코리안 타임' 없이 바로 떠났다. 시간 개념 분명
한 분들과의 동행이란 좋다. 타자마자 맛난 김밥
과 생수 사이다 떡 오징어포와 아몬드 귤 건빵을
주시더니 이어 치킨까지 1박스씩을 골고루 나눠
주셨다.
청년회 이름으로 모였는데 장년과 노인도 더러
있어 어디에서 사는가에 따라 그 기준이 다름도
재미있었다. 말끝마다 '젊은 우리'였고 거기다
가장 어린 커플인 나와 남편은 졸지에 귀염둥이
가 됐다. 겨울여행을 함께 가자던 이장님 제안에
대답을 하고 나서긴 했지만 우린 행선지도 몰랐
다. 타고 나서도 왜 이런 장거리를 택했는지(왕
복 10시간)? 버스도 모자라 유람선까지 타고
바다 한 바퀴를 둘러보는 노선은 왜 추가하였는
지도 모르는 채 실려 다녔다. 한참 후에야 목적지
가 '주문진 항' 임을 알았다. 이렇게 살 수도 있고
나! 계획과 주도적인 삶에서 얹혀서 따라가는
희희낙락의 시간이었다.
4시간이 훨씬 더 되는 시간을 달려온 우리에게
차려진 음식은 광어, 복어회, 도다리, 전복과
전복내장. 오징어. 멍게, 매운탕 고등어 구이등.
술도 많이 돌고 단합 구호도 외쳐가며 마을분들
과 주문진 횟집에서 얼굴을 익혀 갔다. 나를 제외
한 여성분들은 시집을 이곳으로 왔거나 아예
고향이 여기이신 분들이었다. 유구한 시간 속에
서 서로가 함께 하는 동안 정도 들고 말하지 않아
도 이해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나를 난처하게 하는 것은 '호칭'이다. 누군가를
언니 혹은 형님으로 불러본 적이 없다. 호칭이
어색하니 관계조차 어정쩡해질 때가 더러 있다.
씨족끼리 모여사는 특징과 대가족 전통이 남아
있어 그분들의 말씀에 난감해질 때마다 당황하지
않으려 발가락에 몇 번이고 힘을 줬다. 결국 나는
마을의 모든 분들을 형님으로 부르기로 한 뒤 그
이야기는 끝이 났다.
omg! 뒤이어 탄 유람선엔 중앙에 스테이지가
있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한 무리들이
보였다. 혼비백산할 노릇이었다. 오던 길에 상상
초월의 관광버스 춤을 춘 것만으로도 모자라
본격적으로 음악과 무대 디제이까지 있다니.....
물에 빠져 허우적이는 듯 남편에게 SOS를 청하
다 포기해 버리고 춤에 몰입하고자 엄청 노력
했다. 간간히 춤추는 데로 불려 나가기 전에 오늘
의 이 난리는 나의 인생에 어떤 날로 기록될까?
자문자답해 보았지만 딱히 정리되지 않았고
음악소리에 뒤섞여 모든 게 바닷물에 둥둥 떠내
려 가는 듯했다. 한국사람의 놀이 문화이기도
하고 사람들이 익숙한 곳을 떠나 즐거우면 자신
을 잊은 채 놀아보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으로
이해하려 애를 썼다. 한편으로 봄부터 이른 겨울
까지 열심히 일하고 일 년에 한 번 함께 여행하며
맛난 것도 먹고 춤도 추며 어울리는 한마당에
우리를 끼워준 그분들의 넉넉함에 감사했다.
얼마 전 일본에서 있었던 산골 마을의 집단 따돌
림 관련 이야기를 읽었다. 자신의 아이를 괴롭힌
는 반 아이의 엄마에게 어려움을 말하며 도움을
청했더니 오히려 그 피해자 엄마까지 따돌려
자살로 몰고 간 사건이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엄마를 잃은 피해 아동을 보살피며 애쓰던
이웃 엄마까지 집단 따돌림을 당해 또 다른 비극
으로 생을 마감한 사건을 보며 극한 인간 혐오에
치를 떨었다.
낯선 이방인인 우리와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그들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을 것이다. 일 년에 단
하루 실컷 놀아 볼 기회에 우리는 그다지 반가운
존재가 아니었을 수도 있고 자신들을 어떻게 볼까
하여 불편한 마음도 있었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우리와 함께 할 마음을 내주었고 낯설 테니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라며 편안히 대해
주던 이웃들과의 시간은 돌아오는 길에 가슴
가득한 뿌듯함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소모적이지
않고 건강하며 당당한 그분들의 에너지를 전해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