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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모마일 Dec 24. 2019

오늘의 노래-베토벤 합창교향곡

Symphony No.9, 'Ode to Joy', Beethoven


https://m.youtube.com/watch?v=IInG5nY_wrU&list=PLgdqJouBZYGhX1CrTMJn-bhVyBkHHhmrA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이다. 어렸을 적 얼핏 등교 준비를 하던 아침, 텔레비전으로 봤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근 40년 만의 냉전 종식이라고 전 세계 뉴스는 떠들썩했고, 한국은 '전 세계 유일한 교전국(the only country technically still at war)'이라는 슬프지만 독보적인 별칭을 물려받은 날이기도 하다.

역사적인 통일을 기념하고 축하하기 위해, 레너드 번스타인의 지휘 아래, 독일의 베이리안 라디오 심포니, 프랑스의 파리오케스트나, 미국의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영국의 런던필하모니 오케스트라 그리고 러시아의 키로프 시어터 오케스트라가 연합으로 드레스덴에서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1989년 12월 25일 밤에 연주한다. 때가 때이니만큼, 번스타인은 '확신을 갖고' 4악장의 가사인 실러의 위대한 시 구절 '환희의 송가 Ode to Joy(Freude)'를 '자유의 송가 Ode to Freedom(Freiheit)'으로 바꾸어서, 이 날 하루만은 '자유의 송가'로서 연주했으며, 이는 바로 전 세계를 향해 보내는 크리스마스 메시지였다.

베토벤 9번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너무나 유명하지만, 솔직히 4악장의 그 유명한 멜로디가 아닌 1시간 이상의 전체 악장을 제대로 들은 건 나이가 제법 들어서였고 내게는 아들내미 태교 음악으로 출퇴근길에 몇 달 동안 꾸준히 들어서 친숙한 음악이기도 하다. 세상 좋아져서 유튜브로 그때 그 영상을 다시 찾아보았다.

음악회 티켓 값이 점점 높아지는 요즘, 오케스트라는 인원이 많은 만큼 더욱 비싸서 정말 큰 맘을 먹어야 볼 수 있다. 벌벌 떨며 티켓을 결제한 후 콘서트 당일까지 후회와 취소의 갈등이 계속된다. 그러나, 콘서트장에 입장하여 자리를 찾아 앉아 무대를 바라보면 아줌마의 돈 걱정은 깨끗이 사라진다. 악보와 의자가 줄지어 놓여있는 무대 양 옆에서 연미복/검정 드레스를 입은 남녀 연주자가 자기 악기를 들고 당당한 걸음으로 일제히 걸어 나오는 그 순간의 기세에 반한 객석의 관객들은 박수로 그들을 환영한다. 악장의 손짓에 따라 오케스트라 한가운데에 앉은 오보에 주자가 나지막하게 음을 내면, 모두들 그에 맞춰 조율하며 마지막 워밍업을  마친다. 음악회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순간이다. 모든 준비가 끝나면 드디어 지휘자가 입장한다. 팽팽한 긴장감, 가슴 벅찬 기대감으로 공기마저 들뜬 그 순간.

영상에서도 백발의 레너드 번스타인이 등장하는 순간 스피커가 찢어질까 두려워질 정도로 박수가 울려 퍼진다. 그리고 순식간에 정적. 혼돈의 우주를 그린 것 같은 1악장 서두에서부터 주제 멜로디가 나오고 아름다운 선율이 자유롭게 춤추며 공연장 안을 흘러 다닌다. 내가 좋아하는 부분은 그중에서 3악장 중간에 메인 멜로디를 더블베이스가 천천히 연주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된 주제음악은 천천히 첼로, 바이올린, 플루트 등 전체 악기군으로 퍼져나가며, 주제음악을 건네주고 난 낮은음 악기들은 기꺼이 다른 악기를 위해 반주음악을 연주한다. 마치, 인류의 구원이 예수에게 시작되어 점점 높이 퍼져나가되, 낮은 곳부터 시작된 구원이 조화롭게 세상을 물드는 모습 같다. 그리고 압도적인 4악장. 환희와 자유, 축복이 내 머리 위로 쏟아진다. 이 순간만큼은 내게 상처 입힌 모든 이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나 자신을 용서하고 내 안의 inner child를 온 마음 다해 안아주게 된다.

수십 번 수백 번 들은 4악장이지만 베를린 콘서트에서는 남달랐다. 공연장 밖의 시민들도 추운 날씨에도 움직이지 않고  스피커로 뿜어져 나오는 음악을 두 손 모으고 들었다. 연주자들은 한 음 한 음 쉬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하며 회오리치듯 마지막을 향해 달리고 지휘자 번스타인 경 역시 흔들림 없이 피날레까지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이끌었다. 브라보~!!

이 연주회가 끝난 후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독일은 다시 하나가 되었고, 레너드 번스타인 경은 이 과정을 끝까지 못 본채  연주회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다섯 나라 최고의 연주자들이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이루어 연주한 경우는 전무후무한 역사였고, 그만큼 이 비디오 클립의 모든 장면, 모든 소리가 값지다.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이 그렇게 귀한 축복이라 노래하는 것 같다.

Merry Christma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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