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노래
Viva la Vida, Coldplay ㅡ 왕 부럽지 않은 인생!
주말오후 예술의 전당에 갔다. 야외 조각 전시도 구경하고 카페에서 달콤한 초코머핀을 곁들여 커피도 마셨다. 가을 정취 물씬 풍기는 예술의 전당은 여유롭고 편안했다. 예술의 전당에 늘 같이 오던 오랜 친구가 생각났다. 생각난 김에 그녀에게 몇 주 후 김장하는 날 집에 와서 보쌈도 먹고 김장김치도 가져가라고 연락했다. 얼마 후 만나기로 했으나 내 기억력을 밎지 않는 나는 무엇이든 생각날때마다 연락하려 노력한다.
'친구야, 미안. 나 그날은 못갈거 같아. 상견례 날이어서...'
어머나. 최근 들어 가장 놀라운 뉴스다. 통화가 어려워 우리는 카톡으로 얘기를 나누었다. 오랫동안 만난 남친과 드디어 부부의 연을 맺기로 한 계기며, 만난지 백일째부터 결혼하자고 조르던 남친은 언제부턴가 결혼 얘기를 안하길래 물어보니, 이 정도 만났으면 내 사람이고 결혼은 그저 형식과 시간 문제일 뿐이라고 멋지게 답했다 한다.
반갑고 기쁜 마음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오르고 코 끝이 시큰해졌다. 그녀와 나는 서로의 인생을 깊이 이해하는 친구이다. 남들은 선보고 시집갈 준비하던 이십대에 우리는 각자의 공부를 격려하며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 질풍노도시기를 지나 예상과 다르게 펼쳐지는 각자의 삶을 나누었고, 남들은 겪지 않았을 어려움을 그녀도 나도 비슷한 무게로 겪어내었다. 보통은 기혼친구와 미혼친구는 대화의 주제가 한정되어 있고 서로 조심하기 마련인데 우리에겐 그런 벽이 없었다.
결혼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아직까지는 남녀가 사랑할때 그 마음을 최대치로 표현하는 방법인 듯 하다. 내 껍데기에서 나와 당신과 함께 날고 싶다는 성장의 단계?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겪을 어려움을 상쇄할 정도로 상대방을 향한 사랑이 더 크다는 증언? 어쨌든 한 사람과 삶의 모든 것을 나누며 안정된 생활을 꾸려가는 이상을 실천하고픈 사람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다.
기쁨과 충격에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아들과 함께 예술의 전당 위쪽으로 슬슬 걸어갔다. 우리를 기다렸다는듯 콜드플레이의 노래와 함께 음악분수가 시작되었다. 아들은 신이 나서 뛰어다니고 나는 낯설고도 이상한 감정에 휩싸여 가만히 선 채 분수의 물보라를 맞으며 노래를 들었다.
Viva la Vida 인생만세.
노래의 화자는 왕이었던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천국에도 못갈거라 비관한다. 노래가사에는 프랑스혁명, 네로황제 등을 떠올리는 문구도 있고, 뮤직비디오는 프레스코화 풍의 애니메이션이 덧칠해지면서 고풍스런 분위기를 풍긴다. 그러나 희망찬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따라부르다보면,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누구나 왕처럼 자신의 인생을 지배하고 남들보다 앞서나갈 것을 확신하는 시기가 있다. 그러나 세월 속에서 그런 비장한 야심은 남루해지고 크고 작은 실수와 크고 작은 어려움 속에서 야심과 권력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며 지금 내가 선 자리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건강하게 사는 인생이 축복임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노래가 품은 메시지는 바로 이게 아닐까. Viva la vida.
어쨌든 이십년 넘는 시간 동안 마음을 의지하던 벗의 기쁜 소식과 더없이 어울리는 노래를 선물받았다. 앞으로 이십년, 그후 이십년도 함께할 벗이니 나는 왕이 아니어도 이미 부자이고 축복받은 사람이다. 인생만세.
2019 11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