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려서부터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참 많은 하고재비¹ 였습니다. 관심사가 바뀔 때 마다 꿈도 바뀌었고, 꿈이 바뀔 때 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일을 벌이느라 바빴습니다. 작게는 책을 사서 모으거나 학원을 다니는 것부터 크게는 학교를 그만 두겠다 선언하기도 했지요.
어른들은 저에게 변덕이 죽 끓듯 한다며 ‘한 가지만 선택해서 진득하니 해 나가야 한다.’고, ‘너 같이 이것저것 여러 재주를 키우면 굶어죽기 십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살면 굶어죽기 전에 심심해서 죽을 것 만 같았습니다. 한 번 사는 인생에 해 보고 싶은 걸 다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도전이라도 해 보면서 재미있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¹무슨 일이든지 안 하고는 배기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사투리
저는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매일 도서관에서 책을 여러 권 빌려와 쉬는 시간과 하교 후에 틈틈이 읽어 다음날 반납하고 다시 빌리기를 반복했습니다. 매일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는 게 신이 났고,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는 게 즐거웠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교과서도 굉장히 재미있는 책 중에 하나였고, 계속해서 읽다보니 아예 통째로 외워버렸습니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어도 배우는 내용에 크게 차이가 없자 학교 공부에 흥미가 조금 떨어졌습니다. 게다가 책과 노는 게 재미있었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큰 흥미도 없었고요. 그래서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종종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반대하는 어른들이 미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다행인 일입니다. 그 때 학교를 그만두었더라면 소중한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요.
저의 ‘학교 그만둘래 병’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다시 발병했습니다. 초등학생, 중학생 때 배웠던 것을 고등학생이 되어 또 다시 만난 것이 원인이었고, 이럴 바에는 제가 하고 싶은 공부를 집중해서 하는 게 더 재미있고, 저의 삶에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담임선생님은 학교를 그만두고 혼자 공부하여 성공한 케이스는 극소수일 뿐이라며 반대했고, 부모님 또한 정규 과정은 마쳐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저는 선생님께 그 극소수의 케이스에 제가 포함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고, 부모님께는 고등학교를 그만두더라도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 진학을 할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설득을 했습니다. 이 외에도 어른들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계속해서 대화를 시도했으나 결과는 늘 ‘반대’로 같았습니다. 나중에는 끝나지 않는 싸움에 체력이 바닥나고 악만 남아, 어린이답게 떼를 써서 어른들의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학교를 그만두면 경제적으로 지원을 받지 않겠다는 다짐까지 하고서 말입니다.
학교를 그만둘 당시 제 꿈은 건축가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학교를 그만두면 하고 싶었던 것은 전국 여행을 하며 한옥을 공부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제 생각대로 쉽게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받은 월급은 아르바이트로 인해 생긴 스트레스성 위염과 역류성 식도염 따위의 질병을 치료하는데 쓰였고, 검정고시 공부를 하느라 정작 원하던 건축 공부는 시작도 하지 못했습니다. 어른들을 설득하던 시간에 인생 계획을 좀 더 탄탄하게 세우고 준비를 했었더라면 이런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과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런 계획 없이 꿈만 가지고 무작정 행동했던 어린 날의 제 용기가 대단했다고 생각하면서도 참 무식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교사인 언니가 가끔씩 자퇴를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어떤 식으로 상담을 해주면 좋을지 저에게 도움을 요청해 오면 제가 겪은 시행착오들을 이야기 해 주고는 합니다.
앞서 말한 사례 외에도 학생 대상의 공모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없는 등의 상황이 생기기도 하고,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서 더 많은 설명과 서류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또 친했던 친구들과도 공감대 형성이 어려워져 멀어지기도 합니다.
저 같은 경우 이런 시행착오들을 겪으면서 학교에서 얻을 수 없는 질과 양의 배움을 얻었기 때문에 그때의 선택을 후회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가 느낀 것들을 지금 열심히 고민 중인 학생들이 알게 된다면 좀 더 알찬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이야기 해봅니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이러려고 학교를 그만둔 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진로에 대한 고민과 저의 인생 계획을 다시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적성과 흥미, 성격 검사 등을 통해 저를 분석하고, 다양한 직업군에 대해 조사를 하면서 내가 싫어하는 것,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 잘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하고 고민했습니다.
여러 날을 고민한 결과, 저는 ‘영화’를 선택했습니다. 쉽게 흥미가 변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싫어하고, 다양한 것을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고, 뭔가를 만들어 내는 것을 좋아하고, 항상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저에게 가장 잘 맞는 직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내성적이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영화 작업을 잘 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습니다.
이렇게 고민을 하던 와중에 영화를 하겠다고 확신을 얻게 된 것은 우연히 듣게 된 양익준 감독님의 강의에서 였습니다. 양익준 감독님은 스스로를 소심한 사람이라고 표현하셨고, 이렇게 소심한 나도 영화를 할 수 있으니 여러분들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치 제 고민을 알고 말씀하시는 듯 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감독님의 말에 용기를 얻어 영화감독을 꿈꾸기 시작했고, 12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영화를 하고 있습니다.
무작정. 정말 이 단어는 저의 인생초기에서 뺄 수 없는 단어입니다. 그때의 저는 무언가 생각이 들면 일단 무작정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영화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후, 무작정 지역의 청소년 문화의 집을 찾아가 영상동아리를 만들었습니다. 작은아버지에게 캠코더를 빌려서 당시 유행하던 월드컵 응원과 신상뽐춤 UCC 패러디 영상을 만든 것을 시작으로 환경 캠페인 영상, 뮤직비디오, 문화의집 사용설명서 등 활발히 활동을 이어나갔고, 문화의집 선생님들도 저희를 위해 강사님들을 초빙하여 촬영과 편집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등 많은 지원을 해주셨습니다. 지금 보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엉망진창인 영상들이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열심히 그리고 재밌게 활동 했던 것 같습니다.
한 번은 만화 동아리를 하는 동생과 친하게 되어 함께 작업을 하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한창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이 유행하던 때였는데, 케이블 방송국에서 영상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제작한다는 공모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패러디 영상을 만들어서 공모를 했고, 사람들의 반응을 위주로 평가했던 1차 예선에서 통과를 하여 2차 면접까지 보러 가게 되었습니다. 거창에서 서울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접수를 하는데, 이름표를 나눠주던 스탭분이 저희 영상을 보셨다며 저희를 너무 반가워해주셔서 저희는 2차 면접도 쉽게 통과 하는 게 아니냐며 한껏 들떴습니다. 하지만 저희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앞선 팀들이 면접장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며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영상 프로인데 왜 장기자랑을 하는 거지? 라는 의문이 들면서도 아무것도 준비해 오지 않은 저희가 잘 못 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또 시무룩해졌습니다.
면접 심사를 마치고 탈락이라는 결과를 받았지만, 심사위원들의 전문적인 평가를 통해 새로운 관점으로 저희의 결과물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얻었고, 또 함께 대기를 하던 다른 참가자에게 많은 사람들 중에 1차 예선을 통과한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것이고 실력이 있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탈락을 했음에도 기분 좋게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영상·영화 관련 기관이 많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은 도시와는 달리 기회도 지원도 적은 시골에서는 스스로 열심히 찾고 노력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그나마 세상과 연결 통로가 되는 것은 인터넷이었으므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정보를 찾고, 도전의 기회를 얻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검색을 하던 중 KBS1 채널의 ‘TV비평 시청자데스크’라는 프로그램에서 방송인을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방송 프로그램 제작 현장 체험과 방송국 탐방을 시켜주는 ‘체험! KBS’코너를 운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게시판에 자신을 소개하는 영상과 함께 신청 내용을 적어서 업로드하면 간단하게 신청을 할 수 있었기에 사실을 알게 된 그날 바로 신청을 하였습니다.
며칠 후 KBS에서 연락이 왔고,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코너의 영상을 제작하는 현장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피디님과 촬영감독님을 따라 촬영을 구경 다니면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신기하고, 멋있고, 재미있는 공부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추후 작가님과 함께 인터뷰를 하고, 저의 인터뷰가 대본이 되고, 대본을 바탕으로 내래이션 녹음을 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사전 영상을 가지고 본방송에 출연해 진행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녹화를 진행하는 등 하나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전체적인 과정을 몸소 체험해보면서 하나의 방송을 만드는데 많은 절차가 필요하고 신경써야할 부분이 굉장히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화에 중독되기에 3일이면 충분하다
문화의집으로 영상 강의를 와주신 선생님에게 ‘필름메이커스(www.filmmakers.co.kr)’라는 사이트에 대해서 듣게 되었습니다. 필름메이커스는 영화인들이 여러 가지 정보들을 나누고, 구인구직이 이루어지는 공간입니다. 직접 들어가보니 영화의 시나리오도 많이 올라와 있고, 영화 관련 정보들이 많이 올라와 있어서 틈틈이 들어가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부산에서 촬영 예정인 한 단편영화의 스크립터를 구한다는 모집공고문을 보고, 지원서를 내게 되었는데 뜻밖에도 저를 써주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와!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경험도 없는 미성년자를 믿고 일을 시켜주다니요. 게다가 스크립터라는 말도 스크립터 용지도 그때 처음 알게 된 왕초보에게 말입니다.
생전 처음 경험하게 된 영화촬영 현장. 촬영은 3일동안 진행되었고, 저는 스크립터로 일을 하면서도 다른 파트의 언니 오빠들을 기웃거리며 귀찮게 했습니다. 그래도 감독님과 스탭분들이 귀엽게 봐주신 덕분에 제 아이디어를 반영하여 두 컷이나 연출해보는 소중한 경험을 해 볼 수도 있었습니다. 이때 저의 아이디어로 장면을 구성해주신 이 일이 저의 마음에 꺼지지 않는 불을 지펴 아직까지도 영화를 계속 하고 있습니다.
스무 살이 되고,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언니를 따라 부산으로 내려가 자취를 시작했습니다. ‘카메라를 배울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사진관에서 일을 시작했고, 마침 실장 언니가 영화를 좋아해서 함께 시나리오 모임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카메라를 잘 다루고 싶어서 도서관에서 주관하는 사진 강좌를 듣기도 하고, 컴퓨터 학원에서 3D 편집도 배웠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공부를 하면서 세상에는 정말 굉장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고, 고만고만한 실력의 소유자인 저는 또 다시 혼자 고민에 빠졌습니다.
영화감독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감독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찾아보던 중, 한국에서 영화감독이 되려면 시나리오를 잘 써야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시나리오부터 배워보자는 생각이 들어 시나리오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스승님께서 운영하시는 아카데미를 발견했습니다. 매주 스승님께 작법을 배우며 영화에서 시나리오가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지를 알게 되었고, 스토리를 기획하고, 구성하고, 완성시키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들을 훈련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도 어렵고, 제출한 수많은 기획안²들 중 하나도 통과를 시켜주지 않으시고, 항상 제가 써 낸 글보다 긴 피드백을 주셔서 살짝 서운한 마음이 들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피드백은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니 마음이 편안해졌고, 피드백을 잘 받아들여 작품을 개발하는데 몰두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탄탄한 기본 교육과 피드백을 받고 그에 따라 수정하는 훈련을 많이 했던 덕에 저의 작품이 많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함께 공부했던 동기들은 선의의 경쟁자이자 서로의 조력자로 글을 쓰는 또 다른 원동력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서로를 응원하는 좋은 사이로 남아있습니다.
²시나리오를 작성하기 전 뼈대를 세우는 작업. 제목, 주제, 소재, 기획의도, 형태, 분량, 마케팅전략, 등장인물, 간단한 줄거리 등 작품의 전체적인 구상을 함.
기획안에서 트리트먼트³ 단계로 넘어갈 수 있게 되었을 즈음부터 허리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가 베이비스튜디오에서 일을 한지 일 년이 되어가던 시기였지 싶습니다. 무거운 장비도 많이 들고, 대리석 바닥에 온 몸을 던져가며 일을 한데다가 인스턴트 음식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는 바람에 몸이 망가진 것입니다.
물리치료, 침 치료, 프롤로 주사, 교정 치료, 기 치료 등등 좋다는 것은 다 시도해 보았지만, 그럼에도 허리는 점점 안 좋아졌고, 나중에는 장우산을 지팡이처럼 짚고도 겨우겨우 절뚝 걸음을 걷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결국 신체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더 이상 버티기 힘들게 되었고, 지금까지의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방법 밖에는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누워있는 것 밖에는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자 다시 출발선으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습니다. 다시는 걷지 못할 것 같았고, 다른 무엇에 도전할 생각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³ 기획안(시놉시스)에서 발전한 단계. 작품의 구체적인 줄거리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