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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선 Jul 03. 2024

2. 미루다 보면 결국 할 수 없게 될지도 몰라

꿈을 이뤄주는 질문     


    제대로 걷지도 못하던 와중에 어떻게 그런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냥 문득 죽기 전에, 더 아파지기 전에 한 때 로망이었던 자전거 여행을 갔다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꿈을 실현하는 가장 첫 단계는 주변에 알리기부터! 저는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주위 사람들에게 저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반응은 좋지 않습니다. 제가 이야기 하는 것들의 대다수가 무모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자전거 무전여행 또한 반응이 좋지 않았습니다.      

“네가 드디어 미쳤구나.”

“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남자라면 몰라도 여자 혼자서는 안 되지.”

“날씨도 곧 추워질텐데 가려면 차라리 내년 봄에 날 풀리면 가던지.”

“너 아프다며. 허리 아픈 애가 어떻게 자전거를 타냐?”     

 하지만 이렇게 반대 의견을 들을수록 저의 꿈은 더욱 선명해집니다. 질문들에 대답을 하고, 대답하지 못한 질문들에 대한 해결 방안을 찾는 과정을 통해 허황됐던 꿈이 현실 가능성 있는 계획이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도 이루기 어려운 꿈이 있다면 자신의 꿈에 질문을 던져보는 건 어떨까요?     



쥴리어스   

  

    쥴리어스는 제 자전거의 이름입니다. 이 이름은 영화 ‘리틀 로망스’에 나오는 노신사 캐릭터의 이름에서 가져와 붙인 것입니다. 영화 속 쥴리어스는 주인공들의 여행을 도와주는 조력자로, 저의 자전거 쥴리어스 또한 저를 즐겁고 새로운 곳으로 데려다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같은 이름으로 지었습니다. 

 처음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조금씩 모은 돈으로 산 친구이기 때문에 (여행당시) 쥴리어스와 만난 지는 3~4년 정도 되었을까요? 그동안 생활 속 제 발이 되어주기도 하고, 짧은 여행을 함께하기도 하는 등 참 추억이 많은 친구입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가까운 곳으로 라이딩을 가기도 하고, 부산에서 자취를 할 때도 같이 살았고, 문화의집에서 영상동아리를 하던 시절에는 성취포상제⁴ 활동의 일환으로 자전거를 타고 캠핑여행을 가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제 생애 마지막 자전거 여행이 될 지도 모르는 여정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⁴ 청소년이 다양한 활동영역에서 자기주도적으로 활동하여 스스로의 잠재력을 최대한 개발하고 삶의 기술을 갖도록 하는 전 세계 130여개국에서 운영되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자기 성장 프로그램.     


시작은 고라니와의 눈싸움  

   

    제 여행의 시작점은 안동이었습니다. 우선 낙동강을 따라 종주를 하고, 도착점인 부산에서 새로운 루트를 생각해보겠다는 정도의 계획만을 가지고 안동으로 갔습니다. 저희 집에서 안동까지 바로 가는 시외버스가 없어서 대구를 거쳐서 안동으로 갔는데, 안동에 도착할 즈음에는 이미 해가 져버린 상황이었습니다. 우선 잘 곳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마을회관을 찾아 가까운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만나야 뭐라도 물어 보지요.

 한참을 헤매다 노숙을 해야 하나 고민하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벼에 붙은 쌀알을 훔쳐 먹으러 온 고라니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저희는 서로 당황하여 한참 눈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노숙을 하다 고라니 뒷발에 차이거나 멧돼지 송곳니에 찔리는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습니다. 갑자기 오싹해짐을 느끼고 시내 찜질방으로 바퀴를 굴렸습니다.

 첫 날부터 비상금을 꺼내 쓰게 되어서 조금 아쉬웠지만, 그 다음날부터는 딱히 돈을 쓴 일이 없습니다. 희한하게도 제가 자전거를 멈추고 잠시 쉬어갈 때 마다 지나가시던 분들이 먹을 걸 나눠주셔서 그 음식들로 배를 채웠고, 입장료가 있는 관광지 대신 무료로 볼 수 있는 곳들을 구경했습니다. 숙박은 모르는 곳에서 얻어 잔 날도 있었지만,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친척이나 가족들 집에서 많이 신세를 졌습니다.

 이렇게 여행 중 돈을 쓰지 않으려 노력하기도 했지만, 제 속도에 맞춰 여행을 하는 데도 집중했습니다.     



마이 페이스, 마이 레이스    

 

    비행기로 여행할 때, 차로 여행할 때, 자전거로 여행할 때, 걸어서 여행할 때 그리고 다른 사람과 같이 여행할 때, 혼자 여행할 때. 같은 여행지라도 할 수 있는 것과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 차이가 많습니다. 각기 다른 매력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혼자 하는 여행은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좋은 점인 것 같습니다.

    혼자 하는 여행은 온전히 저의 속도에 맞춰 흘러갑니다. 간혹 루트가 겹치는 여행자들이 저를 빠르게 스쳐 지나갈 때도 있지만, 조급해지지는 않습니다. 저는 빠르게 많이 가는 것 보다는 천천히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갈 수 있는 저의 속도가 딱 좋았습니다.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이는 속도, 억새풀과 하이파이브를 할 수 있는 속도가 저의 속도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오르막길은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면서 천천히 올라갔고, 내리막도 브레이크를 잡고 천천히 음미하며 내려왔습니다. 그러다 민달팽이를 만나 사진을 찍기도 하고, 길가다 만난 시민분께 얻은 초코파이를 먹으며 풍경을 감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저의 레이스는 조금씩 확실하게 진행됐습니다.     



비움 후 채움   

  

    이렇게 조금씩 제 상황과 속도에 맞춰서 여행을 하면 되는데, 지금까지 그걸 몰랐습니다. 장비가 없어서, 돈이 없어서, 체력이 모자라서 여행을 포기했지요. 하지만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조건들은 채워지지 않았고, 여행은 늘 미뤄지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여행은 어느 때 보다 안 좋은 조건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체력도 돈도 바닥인 상태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채우기 위해서는 비워야 한다는 말이 있지요. 저의 여행에는 없는 것이 많았던 만큼 그 자리에 낭만과 행운이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여행 가방을 꾸릴 때에는 새언니와 엄마가 함께 해 주셨고, 아빠와 작은 고모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비상금으로 용돈을 주셨습니다. 또 남동생은 터미널까지 저를 배웅해주고 버스에 자전거 싣는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어린 조카들은 늑대와 도깨비를 조심하라며 걱정을 해주었고요.

 여행 중 길을 가다 힘들어서 잠시 멈춰 설 때면, 주변을 지나던 주민 분들이 새참으로 가져 나온 빵이나 음료수 같은 먹을 것을 나눠주셨고, 심지어 어떤 분은 돈을 주시겠다고 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리고 자전거가 넘어졌을 때 짐 싣는 것을 도와주셨던 분과 길을 알려주신 친절한 분들 덕분에 여행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고, 각지에 살고 있는 친구와 가족, 친척들 덕분에 따뜻하게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곡사에서 도현스님과 대연화 사무장님을 만나 도움을 받은 일은 제 인생에서 가장 낭만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인연의 시작   

  

    휴대폰 지도로 자전거길 근처에 있는 사찰들을 찾아보다가 대곡사라는 절을 발견했습니다. ‘오늘은 이 곳을 찾아가 하룻밤 묵어 갈 수 있는지 여쭤본 후에 거절을 당하면 그 밑에 있는 마을 회관에 가서 부탁을 해봐야 겠다.’ 생각을 하고 열심히 페달을 밟았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가는 길이 멀고 꼬불꼬불한데다가 경사까지 있어서 애를 먹었습니다.

 해는 져가고 길은 아직 많이 남았고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팠습니다. 돌아서 다른 곳으로 가자니 갈 곳도 없어서 그냥 가만히 멈춰서 있는데, 그 때 산불지킴이 선생님께서 오토바이를 타고 제 앞을 지나가셨습니다. 길가에 덩그러니 서있던 제가 신경이 쓰이셨는지 다시 오토바이를 돌려 제 앞에 멈춰 서서는 이것저것 캐묻고 그냥 그렇게 다시 갈 길을 가셨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오토바이 뒤에 얻어 타고 대곡사까지 태워달라고 하고 싶었는데, 쥴리어스를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대곡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리를 들으니 다시 힘이 나서 대곡사로 향하는데, 산불지킴이 선생님이 또 오셨습니다. 농사일을 하고 계시던 분들에게 빵과 음료수를 얻어서 일부러 전해주시러 오신 것이었습니다. 정말 가뭄의 단비 같은 분이셨습니다. 덕분에 기운이 나서 속력을 높여 대곡사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넓은 절에 사람이라곤 한 명도 보이지 않고, 조그만 강아지만 저를 따라다니며 나가라고 소리쳐대는게 아니겠습니까? 절에서 자기는 글렀구나 싶었습니다. 다시 마을로 내려가려던 찰나 스님께서 강아지 소리를 듣고 제가 있는 곳으로 오셨습니다. 갑자기 강아지가 너무 예뻐 보였습니다. 아무튼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스님께 오늘 하루만 재워주실 수 있는지 여쭈었고, 스님은 ‘그래, 시간도 늦었는데 내쫓을 수 있나!’ 하시며 방을 하나 내주셨습니다. 

 방에 짐을 내려놓고 나오니 스님께서 감식초를 담그기 위해 감꼭지를 따고 계신 것이 보였습니다. 밥값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일을 거들고 앉았습니다. 곧이어 장을 보러 나가셨던 사무장님이 돌아오셨고, 스님과 사무장님과 함께 감꼭지를 따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자연스럽게 제 허리상태에 대해서도 말을 하게 되었는데, 스님께서 매주 오시는 신도 중에 교정치료를 하시는 분이 있는데 어제 왔으면 허리 상태를 봐줬을지도 모르겠다며 안타깝다고 하시면서 괜찮으면 일주일정도 머물렀다가 그분을 뵙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좋다고 했고, 일주일간 대곡사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얼떨결에 지내게 된 절에서의 일주일은 제가 그동안 살면서 마음이 가장 편안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종을 치고 예불을 하는 것은 힘들었지만, 기도와 참선이라는 것을 해보면서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을 받기도 했고, 악몽을 꾸지 않고 깊은 잠을 잔 것도 좋았고, 낮에는 농사일을 하거나 산을 가볍게 오르며 산책을 하고 밤에는 별을 구경하는 등 하루 종일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니 몸이 맑아지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실제로 일주일이 지난 후 다시 자전거를 탔을 때 그전과 다르게 체력이 엄청 좋아졌음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너무 좋아서 이런 곳에서 공부를 하면 정말 좋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는데, 속마음이 들렸던 건지······. 스님께서 밖에 나가면 무엇을 할 건지 물으시더니 그것을 꼭 밖에서 해야만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사실 아프던 와중에 여행을 온 것이었고, 별다른 계획이 없었기에 절에서 지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스님께 여행이 끝난 후에 다시 오겠노라고 말씀을 드렸고, 여행을 끝낸 후 집에 돌아가 부모님의 허락을 맡고 절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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