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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선 Jul 03. 2024

3. 낭만적 사건과 찾아온 인생의 전환점

어린 날 가졌던 작은 로망의 실현     



    어릴 적 읽었던 전래동화 속 선비들은 과거를 준비할 때면 꼭 암자에 들어가서 공부를 했습니다. 어릴 때는 그게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절에 짐을 싸들고 들어왔을 때 마치 전래동화 속 선비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대곡사가 옛날에 과거시험을 보러가던 선비들이 꼭 들르던 절이었고, 하룻밤 묵어가면 과거에 합격을 한다는 소문이 자자했던 절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이거다!’ 했습니다. 게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몇 개월간 고시공부를 했던 절이라고도 하니 이곳에서 지내기만 해도 굉장한 시나리오를 쓸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대곡사에서 처음 2년의 시간을 보내고, 선운사에서 7개월, 다시 대곡사에서 1년 정도. 총 4년정도의 시간을 절에서 보내면서 참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안 좋았던 작은 습관들을 고쳤고, 생각을 달리 하는 방법을 배웠고, 마음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고, 그래서 이전보다 훨씬 여유로워졌고, 스트레스를 덜 받는 사람이 되었고, 삶이 편해졌으며, 스스로 반성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고, 착하게 살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이전보다 더 따뜻한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뀌기 위해서 특별히 노력하고 훈련을 하기보다는 주어진 일을 하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많이 웃고, 울고, 화를 냈으며, 사계절의 흐름에 따라 생활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참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제가 변했을 뿐인데 세상은 좀 더 아름다워졌고, 훨씬 편안한 곳이 되었습니다.     



사람도 나무와 같다   

  

    도시에서는 일 년 사계절이 늘 같은 색을 띕니다. 하지만 대곡사에서는 매일이 달랐습니다. 공기의 온도, 햇빛의 양, 나뭇잎의 색깔이 하루도 같지 않았습니다. 농사를 짓고 꽃을 가꾸니 그 변화가 더욱 생생히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대곡사를 떠나온 지금, 그 사계절을 온전히 맛보았던 그 느낌이 가장 그립습니다.

 도시에서는 화분 하나 키우기도 어렵습니다. 생업을 이어가면서 저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와중에 다른 생명을 책임지고 돌본다는 일이 어렵기도 하고, 무엇보다 원룸에는 테라스가 없습니다.

 봄에는 씨를 뿌리고, 매일 물을 주며 싹을 틔워내고, 여름에는 잡초를 뽑아 작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해주고, 가을엔 매일 아침 빈 바구니를 들고 나가 가득 채워오는 기쁨을 맛보고, 겨울에는 말린 채소로 음식을 해먹었는데 도시에서는 매일 같은 일을 합니다. 그만두기전까지 매일 같은 일을 하고, 그만두고 나면 또 비슷한 일을 구해 비슷한 일을 똑같이 해나갑니다. 물론 도시에서도 수확의 기쁨과 비슷한 환희를 맛볼 때도 있습니다.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들도 많이 있고요. 도시에서의 하루하루가 불행한 것도 아닙니다. 매일 나름의 재미와 행복을 찾아내며 잘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씩 자연의 생명력과 위대함이 한없이 그리워지는 날이면 도시의 풍경이 너무나도 지루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그래도 저는 대곡사의 땅에 뿌리내려 빨아들였던 그 양분 덕에 아스팔트에도 뿌리를 내리고 단단히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대곡사의 하루 

    

    대곡사에서 지내면서 제가 맡은 일은 새벽예불 종치기, 네이버 카페 운영하기, 사무 보조, 농사일 돕기, 법당 청소, 각종 행사 준비 돕기 같은 일이었습니다. 이걸 시간 순서대로 하면 이렇습니다.     


 - 새벽 4시 : 새벽예불

 스님이 목탁을 치며 도량석을 도시는 동안, 모든 법당에 촛불을 켜고 다기물을 올립니다. 스님이 도량석을 다 돌고 나시면, 제가 기다렸다가 종을 33번을 치고, 새벽예불을 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가 7시까지 잠을 잡니다.

 저는 아침잠이 많아 새벽예불에 참여하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주지스님께서 다른 일은 혼내지 않으시면서 새벽예불에 불참하는 것만큼은 봐주지 않으셨기에 항상 눈물을 머금고 일어나야만 했습니다.     


- 오전 7시 : 아침공양

 공양은 식사를 말합니다. 아침은 토스트에 잼을 바르고, 스님께서 내려주시는 드립커피와 함께 간단히 먹습니다. (모든 절이 이렇게 아침을 먹는 건 아닙니다.)     


- 오전 시간 ①

 간단히 사무실 청소를 하고, 초하루, 부처님 오신 날, 백중 등 법회가 있는 날에는 기도 접수를 받고, 평소에는 공부를 하거나 사무 일을 돕거나 농사일을 돕습니다.     


- 오전 10시 : 사시예불

 맞이 밥을 올리고, 사시예불에 참석합니다.     


- 오전 시간 ②

 사무장님을 도와 점심공양을 준비합니다. 저는 주로 밭에서 채소를 따서 씻는 정도의 일과 수저와 반찬을 나르는 등의 상차림을 도왔습니다.     


- 낮 12시 : 점심공양

 대곡사는 식사 준비를 해주시는 공양주가 없었기에 사무장님께서 식사를 준비해주셨습니다. 법회가 있는 날에는 평소보다 많은 분들이 오시기 때문에 신도분들께서 오셔서 공양 준비를 도와주셨습니다.    

 

- 오후 시간 ①

 스님께서 내주신 숙제 같은 것이었는데, 매일 정해진 양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경전을 읽거나 절을 하거나 정근이라는 기도를 합니다. 저는 제일 처음에는 삼천배를 했고, 그 다음에는 백일동안 매일 지장경을 한 번 읽고, 천배를 했습니다. 이후에는 스스로 원하는 만큼 기도나 참선을 했던 것 같습니다. 

    

- 오후 시간 ②

 법당이나 공양간, 공용 화장실 등을 청소하거나 사무일을 돕거나, 공부를 하거나, 사무장님과 함께 장을 보러 나가기도 했습니다.   

  

- 오후 5시 : 저녁예불

 예불은 기도시간입니다. 절에서는 새벽예불, 사시예불, 저녁예불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 오후 6시 : 저녁 공양

 저녁 공양을 마치면 각자의 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일찍 잠에 듭니다.     

 같지만 다른 매일의 하루가 쌓여 일주일을 만들고, 한 달을 만들고, 일 년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저를 만들었습니다.     



있다고도 못하고 없다고도 못하는     


    절에 있다 보면 신기한 이야기도 많이 듣고, 가끔씩 경험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부로 발설하기는 어려우니 제가 겪은 일들을 몇 가지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첫 번째는, 절에 짐을 싸들고 들어간 후 스님께 삼천배 기도를 하라고 숙제를 받았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절을 하다가 힘들어서 쉬기 위해 가만히 앉아있는데 갑자기 ‘2년’ 이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런데 이 소리는 귀에 들린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울리듯이 들렸습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대곡사에 들어온 지 딱 2년째 되는 날 절을 내려가게 되었고, 이후 선운사에서 몇 개월간 일을 했습니다. 꼭 계시를 받은 것 같이 신기해서 잊히지 않는 에피소드 입니다.

 두 번째는, 귀신을 본 일입니다. 사무장님과 함께 장을 보고, 저녁을 먹은 뒤 다시 절로 돌아가던 중 자동차가 마을 어귀를 지나는데, 한복을 입은 할머니를 보았습니다. 아무리 할머니라도 요즘에 한복을 입고 다니시는 게 신기해서 사무장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사람이 어디 있었냐고 하시는 겁니다. 잘못 봤겠지 하고 넘기려 했는데, 절에 가서 보니 당시 49재를 지내고 있던 영정사진 속 할머니와 같은 얼굴, 같은 한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오싹한 경험입니다. 이를 스님께 말씀드렸더니 간혹 기도를 하다보면 귀신이 보이거나 목소리가 들리거나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시면서, 이럴 때 자꾸 신경을 쓰면 증상이 더 심해진다고 하여 한 동안 ‘보이지 마라.’를 중얼거리며 다녔던 기억이 있습니다.

 세 번째는, 아빠 이야기입니다. 제가 대곡사에서 지내며 문화재지킴이로 근무를 하던 시절, 아빠가 간암에 걸리셔서 투병을 하시다가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가 오빠의 꿈에 나타나 로또 번호를 알려주셨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오빠는 꿈을 꾼 그 주에만 로또를 사고 다음 주에는 사지 않았는데, 아빠가 알려준 번호가 바로 다음 주의 1등 당첨 번호 였다는 것입니다. 사후세계가 있고, 로또 번호 같은 미래의 일을 미리 알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일이 정말 신기해서 기억에 남습니다.

 네 번째는, 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스님께서 내주신 기도 숙제를 하던 중에 꾸었던 꿈들인데, 처음 꾼 꿈에서는 무너진 집터에 부처님 상을 모시고 절을 하였고, 한 참 뒤에 꾼 두 번째 꿈에서는 같은 자리에 돌담이 있는 평범한 시골집이 지어져 있고, 그 집에서 밥을 대접을 받았습니다. 스님께서 풀이를 해 주시기로 그것은 사후 세계에 있는 조상님들의 집인데, 제가 기도를 해서 사후 세계에 있는 조상님들의 형편이 좋아졌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대접을 받은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풀이를 해주신 내용이 신기해서 기억에 남는 이야기입니다.      



잘 모르는 절 이야기   

  

    절에서 지낸다고 하면, 항상 ‘거기서 뭘 하냐.’고 질문을 받았습니다. ‘절은 스님들만 사는 곳’이라거나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는 곳’이라는 고정관념들도 많이 있었지요. 하지만 앞서 얘기했듯이 하는 일도 많고, 신기하고 재밌는 일도 참 많이 생기곤 합니다. 

 절에도 일반 회사처럼 사무실이 있고, 월급을 받으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무실은 ‘종무소’라고 하고, 사무원들은 ‘종무원’이라고 합니다. 종무소에서 하는 일은 사찰의 전반적인 관리와 회계 업무, 템플스테이 업무, 홍보 업무, 기도 접수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제가 처음 지냈던 대곡사는 신도가 많지 않은 절이었기 때문에 사무장님과 저로도 충분 했습니다만, 두 번째로 갔던 선운사는 규모가 큰 절이라 굉장히 많은 분들이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절에서 지내면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 것이라고 많이들 생각하시는데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찾아오기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또 외국인들이 템플스테이나 성지순례 여행을 많이 오기 때문에 외국어를 해야 하는 일도 꽤 많습니다. 선운사에는 특히 외국인의 방문이 잦아서 템플스테이 팀장님은 영어회화를 유창하게 하셨고, 저는 성지순례 여행을 온 일본인 부부에게 사찰을 안내해 드렸던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일본으로 돌아가셔서 편지와 함께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 상품들을 선물로 보내주신 적도 있습니다.

 제 관심 분야인 영화와 드라마 촬영 현장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습니다. 대곡사에서는 드라마 ‘신사임당’의 한 장면을 촬영한 적이 있고, 선운사에 드라마 ‘달의 연인’과 영화 ‘옥자’ 촬영팀이 와서 촬영 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이 외에도 사진이나 커피, 음식, 음악, 미술 등 문화나 예술에 조예가 깊으신 스님들도 많이 뵙는 등 절에서 지내는 동안 오히려 바깥에 있었을 때 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체험할 수 있는 삶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필요한 것들은 모두 절에 구비되어 있었고, 없는 것은 인터넷 주문으로 충분히 채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절에서 자격증도 많이 따고, 학위도 따면서 미래를 준비할 수도 있었고, 매주 부산을 오가는 교통의 불편함은 있었지만 시나리오 공부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생각할수록 절에서 지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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