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서 내려온 후, 1년 동안은 절에서 모은 월급으로 생활을 하며 시나리오 공부를 이어감과 동시에 여러 편의 단편 영화에 참여하면서 경험을 쌓았고, 시나리오로 제작 제원을 받아 첫 감독작을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처음 시작에 비하면 굉장한 성과입니다.
그런데 항상 제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바로 ‘그러면 전공을 영화로 하신 거예요?’라는 질문입니다. 제가 영화를 한다고 하면 반드시 따라오는 질문이자, 저 스스로를 괴롭히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이 질문은 제가 하는 작업들과 내리는 모든 결정에 계속해서 의구심을 들게 하거든요.
그런데 작품을 하면서 만났던 동료들 중에는 대학 전공을 영화나 영상으로 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 분들은 오히려 대학에서 전공을 하지 않은 만큼 스스로 열심히 노력해서 전공자들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대학에서 전공을 하지 않은 만큼 창의적인 시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저의 강점을 발전시켜 약점을 보완하자고 새롭게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쉽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들도 했으니 저도 할 수 있겠지요?
상업영화는 파트별 전문 인력들이 팀을 이루어 작업을 진행하지만, 예산이 적고 사람이 적은 독립영화의 경우에는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독립영화를 하다 보면 점점 할 줄 아는 것들이 늘어납니다.
저는 프리프로덕션⁵ 단계에서는 연출, 콘티, 미술, 로케이션⁶ 등에 모두 참여하고, 프로덕션⁷ 단계에서는 촬영을 하면서 연출과 제작, 미술부분도 함께 체크를 하고, 포스트프로덕션⁸ 단계에서는 편집을 하거나 포스터를 만드는 등의 홍보 관련 일을 맡아서 해 왔습니다.
이렇게 한 작품에서 일인다역으로 일을 하려면 그 작품을 깊고 넓게 봐야만 합니다. 그래서 더 공부해야 하는 부분도 많고,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많아집니다. 물론 한 가지 기술을 깊게 연구해서 실력을 높이고 싶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연출을 하는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파트를 체험해보는 경험이 시각을 넓히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또 여러 파트를 경험하다보니 다른 전공자들에 비해 참여 작품수가 적음에도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영화는 작품 마다 필요로 하는 능력과 지식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그래서 작품을 하나 제작할 때 마다 저도 점점 만능 캐릭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소재에 대한 공부는 물론, 원하는 것을 연출하기 위해 기술적인 부분도 공부를 해야 하고, 또 실력의 미흡한 부분도 계속해서 업그레이드 해 나가야 하기 때문에 평생 영화가 쉬워질 일은 절대 없을 것 같습니다. 언제나 새롭고, 긴장을 늦출 수가 없습니다.
⁵ 영화 제작을 준비하는 단계.
⁶ 영화 촬영에 필요한 장소를 구하는 일.
⁷ 영화를 촬영하는 단계.
⁸ 촬영 후 편집, 배급 등 후반 작업을 하는 단계.
영화감독을 꿈꾸고 십 년 만에 찍게 된 첫 감독작인 단편영화 ‘예쁜 여자’는 2018년도에 제작한 작품인데, 아직까지도 가족들에게 빚이 남아있습니다. 스태프로 참여했던 다른 작품들 또한 보수보다 훨씬 많은 돈을 회의 참여 등을 위한 교통비(기차, 시외버스 등)와 숙박비로 지출했고, 생계유지와 영화 제작 참여를 위한 돈은 아르바이트를 통해 충당했습니다. 그러다 나이를 먹으니 아르바이트 자리도 없어 직장을 구해야만 했습니다. 직장 생활은 아르바이트보다 더 쉽지 않다는 것은 예상했지만, 정말 힘들었습니다.
최대한 무난한 생활을 하며 안정적인 월급을 얻고자 했는데, 회사는 매일 매일이 전쟁터였고 무엇 하나 제 마음 같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출장이 잦아 저녁시간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날도 많았고, 영화 활동에 집중하지 못하는 날도 많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열 입골 살에 스크립터로 참여했던 작품의 감독님께서도 딱 저와 같았을 겁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계신다고 하셨던 기억이 나거든요. 주위 다른 친구, 동생들도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생활비로 쓰거나 영화 제작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왜 다들 영화를 놓지 못하느냐면 재미있기 때문일 겁니다. 하나의 주제를 이야기로 확장시키고, 여러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시나리오)를 실현시키기 위해 고민하고, 기술을 연마하고, 작품을 완성시키는 과정들이 재미있고, 특히 촬영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분위기와 에너지가 있는데 그런 묘한 중독성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계속 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낮에는 직장 업무를 보고, 밤에는 시나리오를 쓰거나 영화 작업을 하고, 주말과 연차를 이용해 촬영을 하고, 그 와중에 장거리 연애 까지 하는 생활을 2년 정도 지속했습니다.
여러 가지 일을 병행하는 것은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같았습니다. 하나의 일정이 어긋나면 모든 일정이 복잡하게 꼬이고, 어느 한 쪽에 치우쳐 균형을 잃어버리면 다른 쪽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런 불만이 오해를 낳아 슬픈 사건들을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지금도 그 균형점을 찾는 일은 어렵습니다. 나이가 들고, 관계가 복잡해질수록 마음을 써야 하는 곳들이 계속 늘어나는 것 또한 쉬워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래도 길을 열어주시고자 항상 노력하시는 스승님과 힘을 내서 함께 작업을 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고, 도움이 필요할 때 달려와 주는 가족들과 친척들이 있고, 배려해주고 이해해주고 힘이 되어 주기위해 애쓰는 남자친구가 있고, 항상 응원해 주는 친구들과 동료들(도비방 친구들)이 있고, 또 직장에서는 일을 하면서도 영화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편의를 봐주었기 때문에 저도 고마운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고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꿈과 현실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기 어려운 것인가’, ‘영화는 평생 취미로 돈을 써가며 즐겨야만 하는 것인가’ 항상 고민해 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꿈과 현실의 사이가 가까워지는 게 느껴졌고, 직접 체감할 수 있었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바로 제가 열 일곱 살에 만들었던 영상동아리의 후배들에게 단편영화제작 강의를 하게 된 것입니다.
후배들에게 해주는 강의이기도 하고, 제가 주강사로 주도하는 첫 강의인 만큼 저의 모든 것을 강의에 쏟아부었습니다. 옛날 문화의 집에서 받았던 교육들과 지금까지 저에게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무엇인지 떠올려보면서 강의 PPT를 작성했고, 영상 장비를 빌려 학생들과 함께 촬영을 체험해 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수업을 통해 시나리오를 기획 및 발전시키고, 수업이 끝난 후에도 계속 연락을 하며 피드백을 통해 시나리오를 완성시켜 실제로 학생들이 촬영과 편집을 진행했고, 전국 규모의 공모전에서 입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만들어서 입상을 한 것보다 훨씬 기쁘고 뿌듯했습니다.
조금씩 영화의 커리어가 쌓이고, 외주 작업에 대한 경험이 쌓이면서부터는 프리랜서의 삶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민 끝에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전향을 하게 되었는데, 이는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 이었습니다. 지금 당장은 일이 있지만 그 다음 일이 언제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불안함이 깔려있고, 오로지 혼자서 모든 일을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감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프리랜서 플랫폼에 저의 이력을 올리고, 매일 유관기관을 모니터링하고, 단기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지원사업의 제안서를 만들고, 공모전에 도전하고, 지역 예술인들과 프리랜서들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해 각종 모임을 기획하고, 블로그를 운영하며 발자취를 남기고, 경제 공부를 하는 등 혼자의 삶은 더 치열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노력의 성과가 하나 둘씩 쌓여가는 것을 보니 직장에서 일을 했을 때 보다 성취감이 몇 배는 더 많이 느껴졌습니다.
아마 평생 이렇게 어렵고 쉽지 않은 인생이겠지만, 한 가지 바라는 것은 여유를 가지고 상황을 바라보며 그 속에서 배울 점을 찾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