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81kg
내 몸무게는 81kg다. 내 살은 팔뚝이나 배, 허벅지 같이 안보이는 곳 위주로 살이 붙어있기도 하고, 살이 찌기 전이나 지금이나 얼굴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서 무게에 비해 날씬해 보이는 편이다. 하지만 남편이나 친척들은 이런 내가 보기 불편한 가 보다. 남편은 매일 내 뱃살을 만지며 살을 빼라고 하고, 친척들은 오랜만에 보는 나를 보며 ‘어휴-’하고 숨 막혀 하는 소리를 낸다. 그러면서 던지는 말은 ‘허리도 안 좋은데 어떡하냐.’는 식의 말들인데, 결국에는 자기가 보기 불편하니 하는 말이다. 눈을 감던지, 나를 보지를 말던지. 짜증난다.
살은 쪘지만, 나는 여전히 예쁘다. 임신을 기점으로 입기 시작한 원피스 차림도 잘 어울려서 이제는 오히려 바지를 잘 입지 않는다. 어린애 같았던 느낌에서 좀 더 성숙해진 느낌도 든다. 숏단발도 잘 어울리고, 부드럽게 웃는 인상은 처음 만나는 이에게도 호감을 산다. 깔끔하고 수수하고 편안한 것이 지금 나의 아름다움이다. 남편은 살만 빼면 다른 건 모두 괜찮다고 이야기 하지만, 사실 내가 보기에 남편은 살이 찐 나도 많이 좋아하고 있다. 자기가 인정을 하고 있지 않을 뿐이다. 눈에 보이는 뱃살에 현혹되어 나의 아름다움을 만끽하지 못하다니 정말 바보다.
끝이 없어 보이는 싸움을 평화롭게 해결할 방법
나도 가끔은 내 몸이 보기가 싫을 때가 있다. 앙증맞은 사이즈에 귀여운 옷을 입고 예쁘게 꾸며놓은 아기 옆에, 후줄근한 옷을 입고 세수도 못한 내 모습이 어쩌다 사진에 찍혀 나올 때에는 한 번씩 자괴감이 든다. 나는 이대로 괜찮은 걸까? 아이를 돌보느라 나를 너무 챙기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때도 많다. 그럴때는 남편의 말이 좀 더 아프게 가슴에 박힌다. 그리고 내가 못나보인다. 우울해지고 눈물이 난다. 요즘에는 아기를 낳고도 늘씬한 몸매를 가꾸는 사람도 많다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걸. 살림하고 육아하고 나면 체력이 바닥인데 쉬는 게 우선이지. 뭐라도 하나 거들어 줄 거 아니면 나보고 뭐 좀 더 하라고 안 했으면 좋겠다. 내가 하면 하는 대로, 안하면 안하는 대로 그냥 놔뒀으면 좋겠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예뻐지기 위해 뭘 더 하라고 하지 않는데.... 그냥 지금 그대로 이쁘다고 하면 어디가 덧나나?
아파트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집 안에서 담배를 피지 말라는 금연방송이 울려퍼지면, 흡연자인 남편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흡연구역에 파라솔 하나, 하나 못 해 의자 한 두개라도 가져다 놓으면 사람들 다 거기가서 담배 피지! 흡연자들도 비오면 비 맞기 싫고, 땡볕에 서서 담배 피기 싫으니까 몰래몰래 집에서 피는 사람들이 있지."
담배를 안 피는 나는 남편의 말을 듣고는 굉장히 신박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평화적으로 모두가 좋아질 수 있는 해결책이지 않은가! 우리 남편은 이렇게 날카롭게 번뜩이는 통찰력이 매력으로, 이렇게 한 번 씩 나를 홀린다.
"근데 오빠, 오빠도 나한테 살빼라 살빼라 하지 말고, 자꾸 이쁘다고 칭찬하면 내가 기분이 좋아서 춤을 추다가 라도 살이 빠지지 않을까?"
나는 응용을 잘 한다.
결론은, 빼기로 결심
23년 12월 31일. 오늘은 애를 낳은 지 딱 2년이 되는 날로, 나는 오늘 임신으로 인해 찐 20kg의 살과 이별을 결심했다. 운동을 하기로 결심한 것은 놀이터에 조카들과 딸을 데리고 놀러 나갔다가 놀지도 않았는데 숨을 헐떡이고 있는 나를 발견해서다.
나는 원래도 건강이 썩 좋지는 않았다. 잔병치레를 많이 하는 타입이랄까? 감기도 잘 걸리고, 조금만 피곤해도 목이 붓는다. 허리나 목, 관절 같은데도 안 좋고, 장기도 뭐 썩...
남편은 내가 여기 아프다 저기 아프다 할 때 마다 불량품 반품해야 되는 거 아니냐며 농담을 하곤 하는데, 내가 봤을 땐 피차일반이다. 자기도 썩... 그러니 나보고 운동하라고, 영양제 먹으라고, 병원 가라고 할 때 마다 흥- 콧방귀를 뀌는거다. 아무튼 원래도 몸이 안 좋아서 몸을 최대한 아껴 쓰고 있었는데, 집 앞 놀이터를 나갔는데 숨이 차니 좀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래도 딸래미가 성인이 돼서 잘 사는 모습은 보고 죽어야 되지 않을까... 그래서 이제는 운동을 정말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연말이겠다, 내년에는 반드시 살을 빼고 건강이라는 걸 좀 해보자! 그렇게 결심을 했다.
어.... 근데 결심을 하고 바로 운동을 하지는 않았다. 원래 연말의 결심은 올 해, 실행은 내년 부터가 깔끔하니까 말이다. 오늘은 워밍업 정도로, 아이가 뛰어 노는 것을 열심히 따라 다니는 것을 나의 첫 운동 목표로 삼았다. 옆에 조카가 들고 나온 줄넘기가 있었지만, 줄넘기를 했다는 이유로 인대가 놀라는 바람에 깁스를 한 적이 있어서 패스- 못 본 척 했다. 건강해지면 언젠가는 줄넘기도 할 수 있게 되겠지!
뭐 그런 생각이다. 중요한 건, 결심을 했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