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엄마와 나

25화. 아티맘 이야기 ⑥

정보경 영화감독

by 명선


25화. 아티맘 이야기 ⑥


정보경 영화감독


다양한 분야의 엄마예술인을 만나면서 공감과 위로를 받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언젠가 엄마 영화인을 꼭 만나 보고 싶다는 간절함이 있었다. 그러던 중 대구·부산·창원 KBS의 합작으로 이뤄지는 <영남 라디오스타>라는 프로그램의 외주팀 작가를 맡게 되어 열심히 인터뷰이를 찾다가 정보경 감독님을 알게 됐다. 지역에서 영화 연출을 하시면서 시원이와 한 살 차이밖에 안 나는 아들을 기르고 계신 분이라 우리는 전화 인터뷰를 하면서도 죽이 잘 맞았다.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항상 서로를 생각하고 힘을 얻다가 1년 만에 드디어 면 대 면 만남이 성사되었다. 우리는 서로를 만나기를 얼마나 기다려왔던 걸까? 정신없이 수다를 떨다 보니 녹음을 기록한 문서가 64페이지를 넘어갔다. 앞에 미처 녹음하지 못한 부분까지 생각하면 100페이지까지 가지 않았을까 싶다.


Q. 진짜 너무 뵙고 싶었어요. 다른 선배 예술인 엄마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힐링이 많이 됐었는데, 같은 업계의 선배님을 뵙는 건 느낌이 다르네요. 다른 분야의 선생님들과는 영화 현장에 대한 감상을 나누기는 힘들다 보니 풀리지 않는 작은 응어리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감독님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혼자서 환호했어요. “있어! 없는 게 아니야!” 이러면서요.


사실 영화 하는 여성들 중에서 기혼자를 만나기는 힘들잖아요. 그래서 감독님은 활동을 하시면서 촬영 현장에서 엄마 영화인을 만나본 적이 있으신지 궁금했어요.


A. 그러네요. 촬영을 하다 보면 ‘아빠’인 영화인들은 생각보다 많거든요. 그런데 ‘엄마’인 영화인은 만나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직접 만나본 적은 없고, 제 후배가 부산국제영화제에 가서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이라는 영화와 김보람 감독님의 GV를 봤는데, 그 감독님이 수상소감으로 영화 편집 기간에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면서 힘들었다고 이야기하는데 제가 생각이 났다며 연락을 해 온 적은 있어요. 자기 동생도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재택근무를 하면서 유치원생 딸을 키우다 보니 그 소감이 되게 감명 깊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저도 ‘나도 아기를 낳고 육아를 하면서 영화를 하지만, 그 감독님은 장편 작업도 하고 대단하고 부럽다.’ 이런 감정을 느꼈었죠.

그래서 작가님에게서 연락이 왔을 때 정말 반가웠어요. 얼굴을 보지 않았지만 마음이 많이 공감됐고, 와닿는 부분들도 많았고요. 또 얘기를 나누다 보니 영화의 결,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작가님이 가고자 하는 이야기의 방향과 제 방향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큰 틀에서 봤을 때는 저와 작가님이 가고자 하는 영화의 결이 되게 비슷해서 더 좋았고요.

저도 작가님처럼 자극적이지 않은 착한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다 보니 지원사업이나 영화인들 사이에서 공감받지 못한 적이 많아서 이때까지 늘 외로웠거든요. 하지만 제 영화로 관객분들과 만났을 때에는 너무 좋아해 주셨기 때문에 작가님도 원하시는 방향으로 글을 쓰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또 그러한 기회들로 우리가 함께하게 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가 활동을 잘 이어 나가서 ‘아이로 인해서 더 행복하고 좋다, 결혼한다고 영화를 포기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라는 걸 창작하는 지역의 청년들이나 여성 영화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그리고 얘기를 하다 보니 생각이 났는데요.

이번에 제작한 제 영화 <계약만료>에서 색보정을 해주신 컬러리스트분이 울산에 계시는데, 그분도 아기 엄마예요.

원래부터 알고 지낸 것은 아니고 이번 영화의 후반 작업을 하면서 연락하게 된 분인데요. 수많은 이력서 중에서 PD님이 왠지 저랑 맞을 것 같다며 추천해 주신 분이에요. 직접 만나서 얘기를 하다 보니까 PD님 말처럼 저와 결도 잘 맞았어요. 원래는 연출 쪽으로 관심이 있었는데, 갑자기 아기가 생겨서 컬러리스트로 활동하고 계신다고 하더라고요. <계약만료>는 가정위탁을 주제로 한 영화인데, 아기 엄마이다 보니 영화에 대한 이해도도 높으셨고 또 그로 인해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었어요. 저희 영화 색보정이 9월에 들어가서 1월에 끝났거든요? 사실 단편 영화는 색보정이 이렇게나 오래 걸리지 않는데 서로의 아기가 번갈아 가면서 아프다 보니 저희 둘 다 피드백이 엄청 느려진 거예요. 제가 피드백을 보내면 기사님 아기가 아프고, 기사님이 파일을 보내주시면 또 저희 하성이가 아프고. 근데 그게 서로 이해가 되는 거예요. 기간이 너무 늘어지니까 다른 일에 지장을 드릴까 봐 죄송했는데 괜찮다면서 이해해 주시고 피드백도 너무 잘 받아주셔서 제가 사죄의 의미로 지역에서 만나는 분들마다 열심히 홍보하고 있어요.

우리 다 같이 한번 모여서 놀아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저희 집에 한번 초대를 할게요. 아기들도 같이 놀라고 하고, 또 같이 영화 얘기하면 좋을 것 같아요. 조만간 날을 한번 잡아요.


이 만남이 있은 후, 우리는 한 달 반 만에 다시 모였다. 정보경 감독님의 집에 함께 모여 손수 준비해 주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친목을 다졌다. 감독님께 말로만 들었던 이지은 컬러리스트 기사님도 정말 좋은 분이셨고, 마산에 오신 김에 정보경 감독님께 연락을 하신 <계약만료>의 배우님도 함께 모여 영화 제작의 뒷이야기도 들으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정보경 감독님이라는 공통분모로 모이게 되었지만, 사실상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끊임없이 대화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에게 영화와 엄마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디에 가서도 속 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들이 팝콘이 터지듯이 톡톡 튀어나왔다. 이날의 감상 또한 나에게는 깊게 남아있는데, 우선 정보경 감독님과의 대화를 마저 이어 나가 보고자 한다.


Q. 감독님과 저, 우리는 두 가지의 약점을 가지고 있어요. 엄마라는 것 그리고 지역에서 영화를 한다는 것이죠. (동시에 강점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아직은 힘이 약하다.)

그러다 보니 활동을 이어 가는 것이 더욱 버겁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 지역은 현장 자체가 적다 보니 활동의 기회를 직접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감독님께서는 창원에서 어떤 식으로 현장을 만들어 가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A. 우선 영화의 경우에는 지원사업을 통해 제작 여건들을 조성하고, 제작된 영화로 국내외의 영화제들에 참가하거나 공동체 상영회를 진행하고 있어요. 그런데 전체 일정으로 봤을 때는 영화보다는 다른 것들이 많아요. 언제나 제 마음속의 메인은 영화인데 스케줄의 빈도만 따지면 강의가 많죠. 그리고 청년 문화단체 활동이나 문화기획자로서 공연을 만들기도 했고요.

24년부터는 청소년 영화팀도 만들었어요. <씨네틴>이라는 팀인데, 벌써 3기까지 운영이 되었네요. 부산 국제 어린이 청소년 영화제의 제작지원작으로 선정이 되기도 해서 책임감 때문에라도 더욱 열심히 운영을 하고 있어요.


Q. 청소년 영화팀을 만드신 이유에는 육아의 영향이 컸을까요?


A. 아니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까 영화라는 분야가 안 그래도 사람 수가 적은데, 지역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처음 영화를 시작할 때만 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고, 제가 스스로 개척해서 서울까지 가야 되는 상황이었어요. 그지역에서 영화를 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직접 경험했다 보니 영화를 꿈꾸는 지역 청소년들에게 멘토로서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죠.

그런데 내 아이가 생기니까 사실 이런 마음이 더 강력해진 것 같기도 해요.

내 아이가 자라서도 관심 있는 분야의 좋은 선생님과 멘토를 만났으면 하는 마음에서 지금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이 하나 있어요. 아이들이랑 장비 픽업도 같이 다니고 하면서 아이들과 얘기를 하다 보니 그 아이들의 엄마가 저와 동갑이거나 얼마 차이 안 나더라고요. 저는 이제 아이가 5살인데···


Q. 그럴 때 좀 충격이기는 하죠··· 하지만 굉장히 동안이세요!


현재 감독님께서는 지역에서 영화를 중심으로 다양하게 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육아와 영화를 병행하는 데 있어 감독님만의 노하우가 있을까요?


A. 우선 저는 친정 부모님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요. 어린이집도 등원은 제가 시키지만, 하원은 부모님께서 운영하시는 사진관으로 하고 있고요. 스케줄이 많으면 아이가 친정 부모님 댁에서 자는 경우도 많고요.


그리고 제가 직접 촬영을 하거나 공연을 하는 날이 아닌 이상, 회의를 하거나 사전 준비를 할 때에는 아들 하성이를 많이 데리고 다니죠. 코로나 때 줌 회의를 할 때에도 아이와 같이 모니터 앞에 앉아서 회의를 하고 그랬어요.

그러다 보니 PD님이나 동료들이 하성이를 많이 예뻐해 주고, 하성이도 이모 삼촌들을 잘 따라서 자연스럽게 아이가 함께하는 분위기가 조성이 됐어요. 저희 일 특성상 아이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조용히 있어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런 장점을 살려서 활용하고 있어요. 지역아동센터 같은 곳에 수업을 갈 때도 아이를 같이 데려가면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하지만 내가 엄마고, 우리 아이가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한테 너무 의지하거나 피해를 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죠. 아이를 데려가기 전에는 항상 양해를 구하기도 하고요.

처음에 아이를 일터에 데려갔을 때에는 ‘아이를 데려가도 될까’ 걱정하고 눈치도 봤었어요. 그런데 모두가 허용해 주는 선에서 편해지고 나면 아이 또한 일원으로 생각해 주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9월에 영화제에 초청되어서 서울서 GV를 할 때도 하성이가 제 무릎 위에 앉아 있었어요. 제가 무대로 나가는데 자기도 나가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조금 고민하다가 분위기가 너무 딱딱하지 않은 분위기여서 아이를 데리고 나갔었어요. 아이가 영화에 배우로 참여하기도 했으니 명분도 있었고요.

그런데 GV 하면 좀 멋있게 마이크를 들고 이야기하는 사진을 찍히고 싶은데, 아이를 무릎에 앉히니까 몸이 다 가려져서 멋있는 사진은 못 남겼어요.

그래도 아이가 되게 좋아했어요.



Q. 저도 그런 경험들이 있어서 너무 공감되네요.

아이와 함께 다니는 것이 추억이 될 때도 많지만, 내가 주목받아야 하는 순간조차도 아이에게 포커스가 맞춰지다 보니 당황스러운 순간이 생기더라고요.

제 예술인 프로필 사진에 아기가 더 크게 찍히기도 하고, 무대에서 PPT 발표를 하는데 떨어지지 않으려고 해서 같이 무대에 올라간 적도 있고요. 저에게 할당된 인터뷰 질문들이 저의 작품이 아닌 아기와 관련된 질문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던 적도 있어요.


그럼에도 아이라는 존재는 예술 활동에 긍정적이다라는 의견에 변함은 없어요.

아이가 생기고 나서 감수성도 더욱 풍부해졌고, 공감 능력도 늘었고요.

사회 현상이나 관계를 이해하는 시각도 넓어진 것 같아요.


A. 맞아요. 제 영화 <계약만료>도 원래 2019년도에 완성된 시나리오였었거든요. 그때는 아기 엄마가 아니었다가, 아기 엄마가 되고 나서 이 작품을 찍게 되니까 작품이 다시 보이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요즘 혼자서 밥을 먹을 때 아이패드로 드라마를 하나씩 보는데, <하이바이, 마마!>나 <도깨비>에서 엄마가 아이를 두고 먼저 죽는 모습이 나오거든요. 예전에는 그냥 보고 지나친 장면도 엄마가 되고 나서 보니 너무 뭉클하더라고요. 그런 부분들에 있어서 시나리오를 적을 때 많이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내가 적을 수 있는 글이나 적고 싶은 글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달라지고요. <계약만료>처럼 부모의 마음에 대한 영화를 찍을 때에도 제가 엄마로서의 경험이 없으면 다른 사람이 어떤 피드백을 했을 때에 제가 그걸 반박하기가 힘들 텐데, 저는 엄마가 되어 봤으니 그런 대화들도 더 진정성 있게 나눌 수 있는 거죠.


그래서 결혼하고 아이의 부모가 되어서 영화를 한다는 건, 아까 말씀하셨던 것처럼 저의 영역이 확장되고 공감대가 넓어져서 더욱 깊이 작품을 이해하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서 좋은 것 같아요.

미디어는 힘이 세다. 특히 영화나 드라마는 현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사람들을 속이기가 더욱 쉽다. 실제 사람들이 나와서 실제같이 꾸며진 현장에서 실감 나는 연기를 하는 것을 촬영해 만든 콘텐츠는 화면 속 세상이 실감 나면 날수록 관객을 몰입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부모가 만든 콘텐츠가 더욱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부모뿐만 아니라 다양한 성별과 계층, 취향을 지닌 콘텐츠가 더욱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창작자에서 부모와 소수자들의 비율이 높아질수록 더욱 많은 다양성을 고려할 수 있고, 더욱 깊은 이해를 이루어낼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창작자들은 보다 다양한 이해를 가지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작품 속에서나 작품 밖에서나.



정보경 영화감독님 인스타그램

미디어랩 독감경보 @project_flu

일상&소식 @lydia_bok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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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현미

교정. 교열. 윤문. 김지현 rlawlgus272@naver.com


본 콘텐츠는 (재)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 2024년 대구 특화 출판산업 육성지원 사업에 선정·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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