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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Nov 21. 2023

핫도그 먹으러 양평까지 갑니다

달콤한 위로


시후는 30개월부터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치료실을 다녔다. 한창 자유롭게 노는 친구들과 달리, 차갑고 각진 공간에서 하루 1시간 또는 그 이상을 보냈었다. 그리고 그날, 순둥이 시후는 이유를 설명할 틈도 없이 울음이 시작됐었다.

얼마 후 울음이 그쳤지만, 아이는 역시 설명지 못했고, 나는 5살 시후의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동네를 걷기 시작하니 안정이 찾아왔고, 코 가까이에 다가온 명랑핫도그 내음에 아이는 말문을 열었다.

"이거. 이거."

작은 손 끝에 힘이 야무지게 들었다. 깔끔쟁이 시후 입 주변에 소스가 어우러져도 불편한 기색이 없다. 그리고 입가에 달곰함이 번지기 시작했다.

그 후로 우린 갑작스럽게 울음이 찾아온 날도, 따스한 바람이 반가운 날도 잊지 않고 걷기를 핑계로 그곳을 들렸다.





지난 야간근무에 평생 먹을 욕을 하루아침에 듬뿍 먹었다. 욕하지 말라는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주취자에게 더 이상의 제지는 의미가 없었다. 이윽고 단호하게 대처했던 난 어느새 욕바가지에 무덤덤해졌다. 그리고 모든 감각이 멈춰버렸다.     


피곤함을 이끌고 퇴근한 아침,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하얀 벽을 응시하다, 그 한편에 기대 잠이 들었다. 얼마 후 배고프다고 아우성인 아이들의 목소리에 겨우 눈을 떴다. 그 순간, 물기를 머금은 몸 일으켜졌다.

"핫도그 으러 갈래?"

지그시 찾아온 두통과 울렁이는 속을 가다듬을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어린 시후를 치료실에 밀어 넣던 그날, 혼란스러웠다. 지금의 선택이 과연 아이를 위한 것인지, 나를 위한 것이지 알 수 없었다. 흐느껴우는 아이를 끌어안고 속삭였다.

‘엄마가 미안해. 우리 시후 힘들게 해서 엄마가 미안해.’


입술마저 사랑스러운 아이가 그 주변을 붉은빛 노란빛으로 밝히며 웃던 그 미소는 입안에서 사르르 녹던 설탕처럼 그날의 죄책감을 순식간에 녹였다. 그래서였는지 퇴근하던 날, 그 달달한 위로가 유독 그리웠다.


바삭한 얇은 파우더가 품은 도톰한 소시지는 달달한 설탕을 뱅글 두르고, 여백에 기꺼이 새콤 달콤함을 내어준다. 이윽고 입안을 자극하는 다양한 감각과 적당히 차오르는 포만감을 선사한다.


헛헛한 하루에 만난 달달한 아이의 미소 오롯이 전달받는다. 지난날의 상실은 발끝으로 녹아내리고 결을 바꾼 충만함이 나를 채다.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서둘러 운전대를 잡는다.

나는 핫도그 먹으러 양평까지 간다.








[ epilogue : 시후의 일기 ]



시후 : 아빠. 아이스크림 사줘.

아빠 : 그만 먹어. 많이 먹었잖아.

시후 : 그럼 지구젤리.

아빠 : 진짜 마지막이다.

시후 : 알았어! 시후 뚱뚱해?

아빠 : 그래도,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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