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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Nov 26. 2023

빵점을 맞았으나,

오늘부터 90점이라 읽습니다


난 받아쓰기 시험을 기다린 학부모이다. 6살부터 한글을 익히기 시작한 시후는 ‘자유롭게 써 내려가는 맛’을 즐길 줄 아는 어린이다. 또래 친구보다 느린 시후에게 ‘쓰기’는 시후의 색을 친구들에게 공표할 수 있는 매력 중 일부였기 때문이다.  

   

비단,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2학기 개별화교육계획(IEP) 협의회에서 특수교사는 참석한 다른 교사들에게 시후를 소개할 때도 그러했다.


‘박시후 어린이는 또래관계에 어려움이 있으나, 인지능력은 정상이며 순하고 미소가 이쁜 잘생긴 모델 같은 어린이입니다.’     


미소가 이쁜 꼬마작가 박시후는 간절히 기다린 받아쓰기 날, 두근거림을 선사했다.







알림장 일부


시후의 알림장 공지가 울렸다. 우리 아들이 얼마나 매력을 뽐냈을지 설렘 가득 안고 돌아온 아이의 책가방을 서둘러 열었으나 이윽고 터져 나온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나의 웃음은 안중에도 없던 시후는 ‘오늘의 간식’을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냉장고를 뒤적이기 바빴다.

이내 새어 나오는 웃음을 아랫입술로 숨기고 엄숙한 척 건넸다.     


“시후. 여기 앉아. 엄마랑 이야기 좀 해.”
“왜요?”
“엄마랑 받아쓰기 100점 맞기로 약속하고 갔잖아. 그런데 이거 봐. 몇 점이야?”
“실패했어! 이거 동그라미 해주세요!”     


심각한 표정의 시후를, 두 팔을 동그랗게 말아 포근히 안았다.

“빵점 맞아도, 귀여워.”







처음에는 의문이 들었다. 분명 빵점인데, 떡하니 여있는 점수는 90점이었다. 하단의 공란에 틀린 문제를 적기 시작했다. 사실, 시후는 다 틀렸기에 달리 접근했다.


‘엄마랑 다시 받아쓰기 시험 보기’

1번부터 차례로 재시험을 봤다. 틈틈이 나오는 어려운 문항은 힌트를 슬쩍 주기도 했다.

‘시후 엄마 입 잘 봐봐. 쉬~~~ㄴ 다.’


그렇게 차례로 적어 내려가다 7번 문항쯤 왔을 때 담임선생님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적은 90이라는 숫자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긴박한 공기 속 치러지는 시험에 시후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나름 적으려 노력했으나, 속도를 놓진 박자는 쉽사리 따라갈 수 없었다.

이내, 쫓아가기 힘든 상황까지 멀어진 거리에 시후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답안지를 건네받은 선생님은 채점에 집중했다. 척척 쌓여가는 친구들의 백 점짜리 시험지에 흐뭇한 미소를 채운 그는, 허전한 시후의 시험지를 발견했다.

빨간펜으로 사선을 긋지만 헛헛한 마음에 결국 90이라 적고 마음을 달래 본다.     



시, 청각이 예민한 시후는 시·청각 주의력이 낮다. 더구나 학교에서 다수의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이면 그마저 있던 능력은 현저히 떨어진다.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1:1 상황에서 본인의 능력이 조금 발휘된다는 것, 특히, 엄마와 시간에 그렇다는 것을 선생님은 알고 계시다.     


결국 그는 90점이란 붉은 글씨에 시후의 성장 가능성을 염원했다.

그리고 나는 그 아래 마음을 전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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