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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Nov 16. 2023

햄버거가 좋은 남편, 국밥이 좋은 아내


폭신폭신 부드럽고 고소한 빵 사이에, 차곡차곡 쌓아 올린 패티, 양상추, 노란 치즈. 그들을 감싼 휘황 찬란 마법 소스는 나를 뺀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이다.     


남편은 이렇게 맛있는 것을 왜 안 먹느냐며, 손사래 치는 나에게 끊임없이 강요했다. 거절도 한두 번, 그 이상의 밀어냄에 민망함이 오를 때면 못 이기는 척 함께 했다. 그러나 얼마 먹지 못해 끄끄거리며 올라오는 불편한 속에 역시나 자리를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남편과 아이들이 거실 한복판에 작은 상을 꺼내 둘러앉았다. 두툼한 햄버거, 그리고 치즈스틱, 감자튀김, 입가심할 콜라까지, 내가 두어 시간 정성스럽게 만든 밥상보다 근사한 상이 순식간에 차려진다.     


감자튀김을 움켜쥐고 케첩까지 찍어먹는 시율

커다란 햄버거를 야무지게 붙잡고 먹는 시후

그 사이를 진두지휘하며 한 손에 햄버거, 다른 손에 콜라를 놓지 않는 남편


세 사람의 입은 쉬지 않았고 모두의 시선은 1개 남은 치즈스틱에 모여있었다.

그리고 남은 1개에 가장 빨리 도달한 손은, 시후였다.

오늘의 승자는 시후였다.

   





아이들과 외식 메뉴로 국밥은 쉽지 않았다. 좋아하지도 않지만 뜨겁고 묵직한 뚝배기로 집중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등원한 오전 남편과 단둘이 있는 날이면, 국밥이 떠오른다. 서둘러 남편에게 점심메뉴를 제안다.


“순대국밥 먹으러 가자.”

순식간에 남편 얼굴의 온도가 식다.


“지구대에서 점심때 국밥 많이 먹잖아. 다른 거 먹자. 난 지겨워.”     

그날, 지겹다는 그의 말이 유독 서운했다.     






연애할 적, 음식코드가 천생연분이라 생각했다.

그와 늦은 시간 즐기는 햄버거에, 어쩜 이렇게 다양하고 맛있게 만들었냐며 감탄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세월이 흘러 우린 극명한 식성을 내보였다.


한식파 아내는 더 이상 연하 남편의 젊은 입맛을 쫓지 못했다.     


우린 음식에 대한 선호도가 변한 것일까,

사랑에 대한 온도가 달라진 것일까.







오랜만에 일을 시작하며, 잔뜩 긴장한 몸과 마음은 탈이 났다. 진입 경로를 알 수 없는 감기는 지친 몸에 침투되었고, 결국 병가를 내고 드러누웠다. 그 좋아하던 커피도 몸에서 받질 못한 걸 보니, 몸과 마음의 회복에 꽤 오랜 시간 소요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등원하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마디마디가 쑤시는 고통에 몸을 일으킬 수 없었고 얼마 후, 빼꼼히 문을 연 남편은 안위를 물었다.


“흑염소탕 먹으러 갈래? 뚝배기에 나오는데 흑염소가 여자한테 좋대.”     

평소 흑염소를 입에 대질 못하는 난, 거절했다. 식욕도 없었거니와, 차라리 자고 싶었다.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먹어보라며 성화인 남편의 손에 이끌려 모자를 눌러쓰고 집을 나섰다.      


내 앞에 놓인 작은 접시를 가져간 남편은 얇게 썬 생강과 이름 모를 소스를 얹어 섞더니 다시 내 앞에 두었다.

“흑염소는 이 소스랑 같이 먹어. 그럼 맛있더라고.”     


아무 말 없이 남편이 일러준 대로 바글바글 끓는 뚝배기에 공깃밥을 반절 넣어, 건네준 소스와 함께 먹었다. 가득 올려진 한 수저가 입안을 채웠을 때, 허리에 힘이 들어갔다.


허겁지겁 먹던 난, 배가 채워지고서야 내 앞에서 흐뭇하게 바라보는 그가 있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살다 보니 달라졌다.

연애 때의 뜨거운 온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양은 냄비 같이 별일 아닌 일에 논점을 잊은 채 감정이 후루룩 달아올랐다.

서운했고, 미워했고, 때론 격노했다.     


그리고 특별한 일 없던 어느 날, 우리는 달라졌다.

두툼한 뚝배기처럼 당신의 감정과 행동에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 묵직이 기다렸다.

서로의 온도를 인정하고, 그 거리를 존중하기 시작했다.     



연애할 적 걷잡을 수 없던 심장의 두근거림이, 오늘날 미진에 다다랐음에도 서운하지 않다.


이제는 익어가는 두툼한 따듯함이 우리의 온도를 오랫동안 머물게 해 줄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두툼한 뚝배기에 담겨 나온 뽀얀 국물과 다양한 고기, 파와 고추를 잘게 썰어 올린 고명에 붉은 양념을 더한다. 바글바글 끓어 넘칠듯한 뜨거움 속에 차가운 수저를 풍덩 담그니, 평온이 찾아왔다. 잔잔해진 국물 한 수저에, 가슴이, 온몸이 따뜻해졌다. 밥 반공기를 듬뿍 떠 뚝배기에 더한다. 그들이 만든 조화에 하루가 든든하다.     


우리를 닮은 그 한 그릇이, 난 좋다.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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