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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Jan 19. 2024

남편 마음에 생긴 구멍


“죄송합니다. 저희 아이가 아픈 아이라, 상황판단이 미흡했습니다.”

“아픈 아이면 더 잘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사고는 늘 찰나였고, 기분 좋게 나간 그는 물기를 한 것 머금고 돌아왔다. 날 선 그의 목소리는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정확히 내 귀에 콕 박혔다.      


‘방금 사고 났어.’     

상황인지보다 본인의 욕구가 우선이었던 아이는 오랫동안 그네를 독점하던 친구에게 ‘나도 탈래’라는 말을 툭 건네며 불쑥 다가갔다. 시후의 과실이 더 큰 상황이었기에, 남편은 바로 사과와 상황을 설명하였으나, 그에게 돌아온 날카로운 화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시후가 더 다친 상황이었으나 남편은 반박할 수 없었다 했다. 이유인즉슨 상대 아버지의 발언은 지극히 옳았기 때문이다.     


‘아픈 아이 그리고 한눈판 부모. 내 잘못이 맞지.’     


덤덤하게 내뱉은 남편은 빨갛게 물든 아이 볼을 두 손으로 감쌌다. 얼음장 같던 볼은 이내 미지근해졌으나, 붉은빛은 쉽사리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아들. 어디 부딪혔어? 아파? 아프면 병원 갔다가 집에 갈까?”

“아빠. 집에 가자.”

“응. 그래. 집에 가서 좀 쉬자.”     


몇 년 전 상황만 보고 아이를 다그쳤던 그는, 아이와 눈높이를 맞혀 마음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지난 나의 갈증이, 그의 부드러운 말투에 녹아내렸다.     






둘째가 쏟아놓고 간 레고 블록 더미에 앉아 알록달록 결정체들을 쌓아 올렸다. 척척 쌓아 올리는 사이, 아이에게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지 매듭이 지어졌다. 그리고 만든 결과물과 10칸짜리 노트를 들고 아이와 마주 앉았다.     


레고로 만든 그네, 두 명의 피겨. 그날의 이야기를 우리는 다시 마주했다.


“놀이터에서 있었던 일 일기 쓸 거야. 시후 마음을 알고 싶어.”


레고로 만든 그네와 두 명의 피겨를 놓고, 시후의 시선과 일반적 시선의 간격을 좁히기 시작했다.


시각적 자료(레고 그네)를 앞에 두고 피겨의 위치를 옮겨가면 ‘안전하게 노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질문을 통해 시후 생각을 듣고,

‘글’을 통해, 시후의 마음이 이내 내게 닿았다.           






여리고 감정선이 세세한 남편은, 처음 겪은 놀이터에서의 경험에 다양한 감정을 맞이했다. 거침없는 상대에 대한 분노, 장애 부모로서의 서러움 그리고 최종적으로 맞닿은 것은 아들에 대한 애틋함이었다.


아무 말 없이 아들 얼굴을 어루만지는 그의 묵묵함이 오늘은 조금 먹먹하다.     


이성적인 아내는 고심하다 행동을 옮겼다.

머리로는 앎이, 행동으로 연결되기까지 ‘충동성’이란 과제가 존재하는 아이를 위해, 알맞은 방법을 생각했다.

속상한 순간에도 감정선을 흩트리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아이가 또래 섞여 함께 즐기는 것, 남편이 아이와 함께하는 놀이터에서 더 이상 마음 졸이지 않는 것뿐이다.     



깊게 파인 가슴에 난 상처가 아이의 마음으로 조금씩 메꿔진다.

훗날, 아이가 피울 꽃을 상상하니, 이내 마음에 꽃이 피었다.     


남편은 시후 일기와 그림을 오랫동안 바라보다 아이를 꼭 안다.


“잘했다. 우리 아들.”






[epilogue -


"여보. 뒤늦게 안 사실인데, 우리가 갔던 놀이터가 통합놀이터래."

"통합놀이터가 뭐야?"

"장애, 비장애 친구들이 함께 놀 수 있는 놀이터. 안내문구가 없어서 몰랐어."

"음. 나도 몰랐네. 시후가 또 가고 싶다던데, 다음에 다시 가보자."

"그래. 우리 시후 똑똑하니깐, 믿고 기다려보자." 

                       

아이와 함께 그린 그림


· 사진출처(제목)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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