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살 지금도 함께하는 이 남자의 예측불가 매력은 23살 연애할 적부터 있던 오래된 습관이다. 그에게 연애 기간 중, 몇 차례 어쩔 수 없는 거리 두기를 제안했다.
연애를 갓 시작했던 우린 대학교 CC였고 나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는 겨울방학이 다가왔다.
그러나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겨울방학이 찾아왔다.
전라도와 강원도의 거리, 그에게 중요치 않았다.
여러 번 환승해야 도달할 수 있는 교통편 역시 그에게 장애가 되지 않았다.
시험 준비를 위해 노량진 근처에 방을 얻을 때도,
경찰에 합격 후 근무지와 가까운 곳에 거처를 옮길 때도, 그는 서둘러 나와 마주 보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같은 서울 아래 굳이 그래야 할까 의문이 들었으나 연애 때니깐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혼 후에도 그는 변함이 없었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아랫집에 내려가 수다시간을 즐길 때였다. 출근한 남편이 전화가 왔고, 받자마자 화를 내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아랫집 내려와서 차 마시느라 몰랐어.”.
“난 무슨 일 난 줄 알아서 112 신고하려고 했다고.”
“미친 거 아니야?”
38살 먹은 아내가 걱정돼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는 남편에게, 아무도 데려가지 않는다고 셀프디스를 날렸음에도 그는 여전히 화를 냈다.
요즘 얼마나 무서운 세상인 줄 아느냐며, 애틋한 아내사랑에 올라간 목소리는 스피커폰처럼 옆에 있던 아래층 언니 귀에 쏙쏙 박혔고, 킥킥 터져 나오는 웃음에 부끄러움은 내 몫이었다.
“부럽다 부러워.”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남자에게 난 어떤 사람일까.
분명 이 사람이 없으면 죽을 것 같던 사랑이, 이제 와서 불투명해졌다.
남녀 간의 사랑이 어려워졌다. 방법론을 잊은 것일까, 어쩌면 원래부터 알지 못했던 것일까. 그 논점으로 우린 매일 치열하게 다툰다.
소파에 좀 앉을라 하면 쏜살같이 다가와 어깨를 마주댄다. 정리 좀 할까 싶어 책장 앞에 서성이면 조용히 다가와 포갠다. 까슬까슬한 수염이 내 볼에 스칠 테면 불쾌함이 소스라치며 오른다.
“그만 좀 쫓아다녀!”
아직도 아내를 이렇게 사랑하는 남편이 어디 있냐며, 이런 식으로 하면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다는 그의 말이,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제발 하지 마세요, 그 사랑.”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며 엄포를 놓는 남편은 채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침대에 기대 책을 읽고 있는 아내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그리고 해맑게 웃으며 쐐기를 박는다.
“사랑하는데 어떻게.”
이 남자 참, 유별나다.
아직도 아내를 사랑하는 그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 감정이 사랑이긴 한 건지 의문이 들었다. 그냥, 습관 같은 것, 익숙함 그런 것을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반문했다.
그러나 심장이 미친 것처럼, 아내를 보면 반응하는 그의 눈웃음, 치솟는 입꼬리. 머리보다 먼저 반응하는 신체에 더 이상 의문을 품을 수 없었다.
난 그저 사랑이란 무게 앞에서, 그에게 늘 부족한 사람이다.
[epilogue : 남편과 대화]
“여보. 나 승진시험 준비해도 돼?”
“응. 여보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런데 경감되면 지방 내려가서 1~2년 있어야 해.”
“그래? 그럼 준비해 당장!”
“아니야. 안 할래. 여보랑 같이 있을래.”
잠깐의 상상에, 순간 행복이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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