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네 7살과 크게 다릅니까?
사랑에는 장애가 없어요
“시후야, 선생님 너무 힘들었어.”
“안아줄게요.”
활짝 웃는 얼굴로 뒤뚱뒤뚱 걸어와 선생님을 포근히 안아주는 시후는 웃을 때 눈을 감추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위장술이다. 전언에 의하면, 정말 힘들었던 마음이 싹 사라질 정도의 감동이었다 한다.
시후는 유치원에서 선생님을 졸졸졸 따라다닌다. 가끔 ‘엄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흔쾌히 ‘오전 엄마’를 자처하셨다.
최근 소아정신과를 다니며 시작한 약 복용으로 식욕이 샘솟고 있다. 이전의 모델처럼 날씬하고 길쭉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토실토실 곰돌이로 변신 중이다.
아침 기온이 제법 차갑던 가을날, 딱 붙는 목티를 입고 귀여움을 뽐내며 등원하던 날이었다. 유독 흰 우유를 좋아하는 녀석은 등원하자마자 첫 일과를 시원하게 우유를 마시는 것으로 시작한다. 갈증이 났는지, 꿀꺽꿀꺽 마시는 목 넘김에 봉긋 솟은 둥근 배도 박자를 맞혀 꿀렁꿀렁 함께 춤을 춘다. 그리고 둥근 배에 선생님의 시선이 닿는다.
“시후는 뭐 먹고 배가 이렇게 귀여워졌어?”
“선생님 귀대 봐~ 사과 먹고 나와찌.”
커다란 덩치에 비해 작고 통통한 손을 선생님 귀에 나란히 가져다가 속삭인 시후는, 갈매기 눈꼬리와 슬쩍 오른 입꼬리로 범접할 수 없는 귀여움을 더한다. 우유를 만족스럽게 마신 아이는 한껏 즐거운 마음을 안고 꽃반(특수학급)으로 이동했으나 이곳에선 더 이상 놀 수만은 없다는 것을 익히 알기에 태세를 전환한다.
“안 한다고. 공부 싫어. 싫타고.”
방금 전 미소천사는 어느새 차도남으로 변해 본인만의 밀고 당기기 스킬을 장착해 까칠함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슬쩍 물러나는 척하며, 두수 앞서간다.
“시후가 공부하면 강아지가 힘이 세져서 악당을 이길 수 있대.”
“알았어요.”
시후의 관심사를 꿰뚫고 있던 선생님 덕분에, 수월하게 학습을 이어갈 수 있었고, 말하는 것에 자신감이 떨어진 아이는 ‘써 내려감’에 더 솔직한 시후로 자랄 수 있었다.
오늘도 역시, 집으로 와서 선생님께 편지를 쓴다. 내 아이의 취미는 선생님께 편지 쓰기다. 사마귀랑 장수풍뎅이가 싸우면 누가 이기냐, 선생님은 홍차를 좋아하느냐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편지지에 주욱 써 내려간다. 그리고 고민하다 조심스레 하원 때 넌지시 드렸다. 그러면 선생님은 귀여워 미치겠다는 표정과 업된 목소리로 늘 한결같이 사랑을 듬뿍 주셨다.
그 후 며칠, 추석이 기다리고 있었다. 유치원에서는 보름달에 빌고 싶은 소원을 주제로 그리기를 했다. 맑은 가을 하늘, 찬란한 빛을 유지하는 노란 보름달이 그려진 종이를 한 장씩 받은 친구들은, 서둘러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먹고 싶은 것, 평소에 가지고 싶었던 장난감을 서슴없이 그리고 칠하는 친구들은, 다가올 추석의 설렘을 눈앞 페이퍼에 잔뜩 실었다. 서로의 그림을 들여다보며, 본인의 종이에 더해가는 재미에 빠진 친구들에게는 한 장의 보름달은 다소 작은 듯싶었다. 그리고 그 곁에 멍하니, 둥근 보름달을 지켜만 보던 시후 곁에, 선생님은 다가갔다.
“시후야. 보름달에 하고 싶은 말 그림으로 그려볼까?”
여전히 큰 미동이 없던 아이는 선생님을 슬쩍 보며 어깨에 잠시 기대어본다. 그리곤 자세를 곧추 세워 검정싸이펜을 오른손으로 야무지게 잡았다. 다소 투박한 커다란 바퀴와 네모진 자동차를 몇 대 그리더니, 레고를 닮은 꼬마병정 하나를 자동차 위에 넣어 그린다. 그리고 새빨간 크레파스를 휘갈기면서 경계를 오가며 대충 색칠해 선생님께 내보였다.
“시후야 선생님 뭔지 잘 모르겠어. 설명해 줘.”
“소방관이 될 거야!”
툭하고 내뱉은 시후의 꿈은, 마주 보던 선생님이 쿵하고 받았다. 포클레인을 닮은 소방차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시후의 그림솜씨는 또래친구들에 비해, 많이 미약하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누구보다 뜨거운 소방차였다.
자폐스펙트럼을 겪는 아이에게도 꿈이 있고, 간절히 소원하는 것이 있다. 우리 시후에게는 소방관이 그렇다.
어쩌면 가당치 않는 이야기 일수도, 넘봐선 안 되는 일이라고 칭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는, 시후가 소방관이 되는 길에 끝없는 응원을 하려 한다.
오늘 우리가 흘린 뜨거운 눈물처럼, 너의 꿈이 누군가의 희망이 되길 붉어진 눈시울로 대신한다.
7살임에도 초등 3학년을 의심케 하는 신체조건을 소유해 큰 형님 느낌을 풀풀 풍기고 다니는 아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들기 전 ‘엄마 너무너무 사랑해.’라는 달콤한 인사를 잊지 않는다.
느리기에 오래 즐길 수 있는 맛이다.
사진출처(제목) _ 픽사 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