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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Feb 13. 2023

지간신경종

너를 잃고 나를 찾는다


입원해서라도 휴식이 필요했다.
그 정도로 나에게, 나는 없었다.



어느덧, 9년. 나에게 맞지 않던 딱딱한 신발은 결국 탈이 났다. 왼쪽 2, 3번째 발가락 사이의 찌릿함이 디딜 수 없을 정도의 고통으로 변해갔다.

엄지와 검지 발가락은 나머지 발가락에 기대어 살았다. 나머지 세 녀석은 그 짐이 버거웠을까.

3, 4번 사이까지 그 아픔영역을 넓힌다.

그래서 이번에 왼쪽발은 오른쪽발에 의지했다.


본인의 일을 망각하고 누군가에게 기대어 하루하루를 보낸 그동안, 몸의 중심이 무너다.

당장 눈앞의 복직에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6년 만의 복직에 누군가에게 민폐이고 싶지 않았다. 결국, 입원절차를 밟았다.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 홀로 누워있는 지금이 행복하다. 이렇게 오롯이 나는 혼자가 된다.

나에게 주어진 2박 3일.

행복해 입꼬리가 내려가지 않는다.     


공기마저 차가운 수술실, 두려움보다 편안함이 앞선다. 서서히 내 몸을 타고 들어가는 수면마취에 온전한 휴식에 들어간다.

걱정도, 불안도, 바쁨도 없이.  

   

“환자분 눈뜨세요. 병실이에요.”

떨리는 눈꺼풀을 올렸을 때 처음 마주한 사람, 남편이었다.

“나 너무 추워.”


그리고 그날, 몇 년 만에 밤을 홀딱 새웠다. 찢어지는 고통에 쉽사리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수술 천천히 할걸.’

몇 시간 전 밝음은 온데간데없이 뒤늦은 후회만 가득이다. 무통주사는 의미가 없고 벨을 계속 누른다.


“진통제 좀 주세요.”

“맞았는데 아직도 아프세요?”

“너무 아파요.”


그렇게 짜릿한 2박 3일이 흘러갔다.     






4주간 깁스생활이 시작됐다.

묵직한 깁스를 이끌고 처음 달려간 곳은 유치원.

2박 3일 떨어져 있던 그 시간 가장 그리운 사람, 아이였다.

"엄마 발 아파?"
"응."
"아프지 마."


엄마의 아픈 발로, 한동안 데이트를 할 수 없다는 슬픔보다 깁스로 왕발이 된 엄마의 모습이 더 안쓰러운 시후다.

‘아들 많이 컸네.’



쩔뚝쩔뚝 높이가 안 맞는 왼발과 오른발 사이에, 균형을 맞추려 노력한다. 깁스의 불편함으로 그제야 보통의 일상에 고마움을 깨닫는다.     


드디어, 깁스와 해방이다. 조심스레 발을 운동화에 넣는다. 마치 첫걸음의 설렘처럼 다시 돌아온 일상이 특별해지는 그 순간이다.

그 소중함에 떨림이 전해온다.






위드코로나 선언과 함께 남편을 회사에 내주었다.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광화문, 삼각지 등에서 남편은 집회·시위 관리를 위해 현장을 나서야 했다. 혹시나 뉴스에서 아빠 얼굴이 잠시라도 비치지 않을까 싶어, 아이들과 TV속 아빠 찾기에 열을 올린다. '아빠를 찾아라'

(남편은 주말집회로 계속 바쁜 상태입니다)   

  

이번 주말도, 지난 주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산에 가서 숲놀이터 갈까?”
“아니.”
“내려오면서 간식 사서 오자.”
“오빠는 초콜릿케이크, 시율이는 무지개케이크 먹을 거야.”     


아침 겸 점심을 든든히 챙겨 먹고 아이들과 산 오른다. 3개월의 시간에 발은 제법 가벼워졌다.


 "잘 회복 중이나, 30분 이상 걷기, 운동 안 돼요. 당연히 뛰는 거 안 되는 거 아시죠?"

"당연히 알죠."


지난주 진료실에서 의사와 대화다.

그래도 아이들 손을 하나씩 잡고 향한다.   



가벼운 발과 상쾌한 겨울 내음에 마음도 가볍다.


 아이들과 오르는 산이 좋다.

고요한 연못 똑하고 떨어트린 물방울의 울림처럼

익숙한 그곳을 아이들이 힘차게 뛰어오를 때 얼굴에 퍼지는 그 미소는 잔잔하고 평온하다.

내 얼굴마저 그러하다.    

 

미련해 9년을 미루다 결정한 도피성 수술에, 고통을 내어주고 나를 찾았다.


숲놀이터에서 아이들과 정신없이 뛰며, 맞닿는 숨결에 살아있음을 느낀다.

언젠가 내 품을 떠날 아이들,

그리고 그리워질 오늘.

훗날, 후회를 경감시키기 위해 나는 오늘도 의사말을 듣지 않는다.     


산에 올라서 잡기놀이한 것, 비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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