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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Feb 27. 2023

강직한 척, 입학준비

격동의 시대


늦잠의 묘미를 느껴야 할 일요일 아침,

무거운 머리로 홀로 이른 시간 눈이 떠진다.

고요함을 오롯이 즐기고 싶어 발끝을 세워 조용히 나간다. 삐-하고 이명소리가 들릴 만큼 고요하다.

채 뜨지도 못한 눈으로 빙그레 웃는다. 

혼자만의 시간, 행복하다.

     


살금살금 화장실로 들어간다. 윗옷을 야무지게 바지 안에 밀어 넣는다. 세숫대야에 휙 던진 걸레를 깨끗이 빨아, 없는 힘을 다해 쥐어짠다.

머금던 물기를 쏙 뺏긴 따뜻한 걸레에 괜스레 열의가 가득 차다. 거실 바닥에 무릎을 맞댄다.

네모반듯하게 편 걸레, 너와의 한판이 시작된다.

야심 찬 두 손으로 서로를 움켜잡고 밀고 당긴다.


이 순간 모든 고민은 잊힌다.


오롯이 걸레와 눈을 맞추고 앞으로 나아간다.

작은 집, 저 끝은 보지 않는다.

끝을 향한 시선은, 곧 현 위치에서 소요될 시간 예측해 의욕이 사라질 테니,

오직 코앞만 뚫어져라 보며 닦는다. 쓱싹쓱싹.

뽀드득 거리며 닦이는 경쾌함에 힘이 난다.


몰두한 육체적 노동에 머리는 맑고, 반짝이는 공간에 기분은 상쾌하다.     

역시 복잡할 땐 청소가 진리다.



조용하고 말끔한 공간, 방금 내린 커피.

코로 향을 머금고 입안 가득 채운 고소함에 풍요롭다. 그 컵을 살며시 들어 책상에 앉는다.


"우리 여보 하고 싶은 거 다 해."


남편이 내게 선물해 준 비싼 노트북 앞에 앉는다.

(이 돈으로 노트북 샀다고 잔소리했지만, 나의 근심을 푸는 역할을 톡톡히 하는 녀석이다)


‘오랜만에 글 써볼까.’

한글 파일을 여는 순간, 딸깍.

사자머리 그녀가 애착인형을 안고 나온다.

그렇게 자유는 끝이 다.






8살 첫째는 초등학교로 간다.

오른쪽 가슴에 명찰 박시후,

그 뒤에 투명하게 써 내린 특수교육대상자.

그 시린 이름표를 가슴에 달고 학교로 간다.


5살 사자머리 그녀는 유치원으로 간다.

박시율.

눈치도 말도 빠른 아이는, 유치원 가서 배울 활동에 벌써 설렘이 가득이다.

     

느린 첫째, 빠른 둘째.

보색의 찬란한 입학준비로 중간에서 정신 못 차리는 어미다.

어느 장단에도 몸을 맡기지 못한 난, 결국 휘청이다 대안을 찾는다.

장소에 맞는 부캐 설정, 또 다른 나를 만든다.


아이의 안정과 편안함을 부탁하는 시후 엄마,

프로그램에 다소 깐깐한 척하는 시율이 엄마.


난 아이들이 맞이할 환경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색깔이 다른 만큼 준비할 것도 전혀 다른 길이다.


첫째를 위해 오늘도 글을 쓴다.

담임선생님과 특수선생님께 전하는 원페이지 부탁글. 낯선 환경에서 행여나 훅 올라올 불안을 대비해, 진심을 다해 적어나간다.

   

아이가 잘하는 것, 중요한 것, 불편해하는 것과 도움을 줄 수 있는 것 등.

바쁜 선생님을 위해, 원페이지로 끝내야 하는데 자꾸 욕심이 생긴다. 브런치와 똑같다.  

   


하원한 둘째와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유치원에서 무슨 놀이하고 싶어?”
“요리도 하고 싶고 발레도 하고 싶고 색칠도 하고 싶어. 발레옷도 사야지. 무지개 발레옷 사줘. 응? 알았지 엄마?”


주절주절 설렘이 가득한 아이의 요구에 흐뭇함과 기특함이 절로 일어난다.

그러다 거실 한편에 앉아 홀로 놀이를 하는 첫째의 모습을 발견하고 미안함이 가슴을 강하게 때린다.  급하게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온 신경을 첫째에게 쓰느라 놓친 둘째의 설렘,
둘째와 대화에 함께 설렌 그 순간을 첫째에게 들킨 것 같은 죄책감에  


어느 것 하나 편히 표현 못하고 중간에서 눈치만 본다. 


이렇게 부족한 난, 오늘도 배운다.

‘망설이지 말고, 온전히 함께 할 것을.’    






두 녀석은 조금 더 큰 사회로 발걸음을 옮긴다.

자전거 안장에 야무지게 앉아 페달 위에 발을 올린다. 탕, 총소리와 함께 출발하기 위해 설레는 얼굴로 앉아있다.    

 

그동안은 자전거 뒤에 함께 타, 핸들을 아이손과 포개 잡고 페달을 밟았다면,

이제 그 일련의 과정을 아이들이 할 수 있게끔 기회를 제공하려 한다.


페달 위 올려진 작은 발이, 스스로 발 끝에 힘을 줘 바퀴를 구를 수 있게끔 난 뒤에서 묵묵히 응원한다.

    

어쩌면, 균형을 잡지 못해서 또는 휘청이는 핸들을 컨트롤 못해 넘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또한 값진 경험이기에 거리를 둔다.

그렇게 조금씩 너와 나 사이의 거리를 넓혀 가려한다.     


내일이, 오늘보다 다소 힘들더라도

그 내일이 더 큰 값어치를 할 것임을 알기에 조용히 아이들 뒤를 따르려 한다.     


너희의 희망찬 내일을 응원하며,

입학 축하해. 사랑한다.



사진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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