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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Mar 23. 2023

죠리퐁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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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정신없는 8시다.

한 녀석은 여전히 침대 속에서 꿈나라를 즐기고 다른 한 녀석은 유치원에 꿀 발라 놓은 건지 홀로 챙겨 입고 신발장에 나가 있다.

배고프면 예민해지는 두 녀석의 식사부터 챙긴다. 그러나 밥을 할 여력이 없는 난, 키다리장을 열고 아이들을 부른다.

간단한 끼니를 만끽하기에 그것만 한 것이 없다.     


“첵스, 콘푸라이트, 죠리퐁. 뭐 먹을래?”
“죠리퐁!”


파란색, 핑크색 시리얼 볼에 소복이 담는다.


“많이 주세요.”
“과자만 주고 우유는 주지 마.”


한 배에서 태어났지만 성격도 식습관도 너무 다른 두 녀석은 각자의 방식으로 한 끼를 즐긴다.

성격 급한 시후는 먹는 속도도 빠르다.


“한번 더 주세요.”     


조그만 갈색 알맹이가 주는 깊은 맛에 매료됐다.






9시 30분, 드디어 오롯이 나의 시간이다.

전쟁터가 따로 없던 이곳을 구석구석 쓸고 닦는다.

어지럽던 시야는 말끔한 배경과 잔잔한 음악이 더해지며 맑음을 느낀다.


투박하게 꺼낸 국그릇에 쪼르륵 아쉬운 양의 죠리퐁을 담는다.

그것들이 빼꼼 고개를 내밀정도의 우유양이 더해지면 빠른 속도로 입안 가득 채운다.

바삭바삭 생기 가득한 달콤함을 놓쳐선 안된다.

눅눅하게 힘없는 죠리퐁은 생각만으로도 슬프다.

금방 바닥을 드러낸 그릇에 이 번거로움을 반복한다.


이 녀석은 건강 가득 시리얼보다 중독성이 강하다. 덕분에 행복한 포만감이 가슴 가득 채워진다.





웬일인지, 오늘 그 맛이 나지 않는다.


아무리 이쁜 그릇에 담아도,
아삭아삭 식감을 위해 더 적은 양을 담아도,
그 녀석들의 허리춤까지만 우유를 살며시 적셔도


전과 다르다.


몇 시간 전 우린,

하기 싫던 그 숙제를 하고 돌아왔다.


오랜 시간 고민한, 장애등록.

일련의 절차를 위한 첫 검사를 덤덤히 써 내려갔다.


검사를 위해, 결석을 한 아이는 유난히 밝다.

몇 개월을 보지 않던 텔레비전도 보고 싶다며 트램펄린 위에서 제대로 시청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오랜만에 개운한 미소가 지어진다. 그리고 이내 몽글몽글 올라온 감정은 파도를 탄다.



입학을 하며 마음을 굳힌 것은 다름 아닌, 장애등록이다.


피투성이 상처에 덧나지 말라고 소독약을 콸콸콸 쏟아붓는다. 갑작스러운 쓰라림에 신경질 나고 아파 소독약을 내동댕이 치고 싶지만,

상처 난 곳에 새살이 이쁘게 자리 잡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기에 두 주먹 굳게 쥐고 버틴다.


눈앞의 고통을 내어주고, 나은 내일이 올 것임을 주문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 과정은 생각보다 독하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그릇에 우유를 가득 붓는다.

우유를 한 것 머금은 그 녀석들은 물컹이며 눈물과 함께 목으로 넘어간다.

꿀꺽 삼킨 순간 달콤한 그 녀석 덕분에 쓰디쓴 아픔이 중화된다.


곧 바닥을 드러낸 그릇에 달콤함은 사라졌지만 시린 눈물은 넘쳐난다. 한껏 독기 오른 쓴맛이 코끝까지 차올라 눈가를 가득 채운다.          


들킬세라 한 손 가득 죠리퐁을 담아 욱여넣는다.

메이는 목, 터져버린 눈물.

그들은 서로 엉켜 부드럽게 넘어간다.


오늘의 먹먹함도 그렇게 넘어간다.     

남겨진 혀끝의 잔잔한 달콤함이 오늘을 감싼다.


갈색 알맹이에 위로받는다.


가까이에서 대신 흘려준 당신의 달콤한 눈물에,

단단해진다.     






아들, 오늘 고생했어.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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