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민 Mar 21. 2023

학교에서 과외받아요

특혜


 “도움반을 아십니까?”    

 


오감은 우리 정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사랑하는 사람과 먹었던 음식의 향을 맡으면 그 시절로 돌아가 어느새 그 추억 속에 산다. 코끝에 살며시 다가와 간지럽히는 향에 가슴 두근거림의 육체적 파동은 그리움과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가득 채운다.

     

초점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조용히 앉아있는 아이.

그 먹먹한 시각적 자극은 이내,

피부결을 스쳐가는 쓰라림을 안겨준다.


지난 학창 시절, 그때도 있었다.

불안한 눈빛, 말하지 않 1살 많던 그 언니.

먼발치에서 곁눈질로만 담았던 레임, 쑥 떠오른 안함에 눈을 질끈 감는다.






오전 내내 들이킨 카페인은 무거운 머리에 효용이 없다. 박카스를 들이켜 재차 깨운다.


새빨간 수첩, 검정 볼펜 하나, 아이에 대한 당부 글.

가슴에 품 불끈 힘이 솟는다. 오늘은, 개별화교육지원 회의를 하는 중요한 날이다.     


특수교사, 담임선생님, 그리고 나.

그렇게 아이를 위한 지원을 주제로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사실 작년에 1학년 교과서 가지고 저랑 공부했었어요. 당장 학습은 따라갈 겁니다.”
“선행하신 건가요?”
“네. 이거라도 뒤처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학습이 중요한 것은 아니에요.”     


4년 차 개별화 회의지만, 유독 올해는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긴장감이 감돈다. 한껏 올라온 예민함은 회의실을 빠져나오고서야 고삐가 풀린다.      

    

‘박시후를 소개합니다.’


도움이 됐으면 싶어 적은 주절주절 원페이지 문서.

나는 아이를 제대로 알기나 한 걸까.

주관적 희망에 사로잡혀 진실을 외면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미안함인지 원망인지 모를 복잡한 감정으로 남은 여분의 서류를 끌어안고 울분을 토한다.

구깃구깃 망가진 서류.

두 손으로 아무리 펴도 예전과 같지 않다.       






아이는 입학한 날부터,

옆을 지켜주는 또 다른 선생님과 함께 한다.

교문에서 헤어져 스스로 교실을 찾아가는 아이들 사이, 우리는 아직 함께 등교를 하고 있다.


“시후 혼자 갈 거야.”


라며 호기롭게 내뱉은 말은 채 몇 걸음 가지 못해 멈춘다. 불쑥불쑥 올라오는 불안에 눈 가리고 서 있다. 난 그런 아이를 홀로 보낼 수 없었다.

하굣길, 왼손에 선생님 손을 잡고 나온다. 그리고 하루 일과를 말씀해 주신다.

우린 이렇게 많은 특혜를 받고 있다.     


그러는 사이, 많은 시선은 우리를 향해 있었다.

벅찼고 때론 불쾌했다.

슬플지언정, 아픔에만 흠뻑 취할 순 없다.


이 또한 내 욕심임을 알기에,

괜찮은 척 툭툭 털고 일어난다.     


이번 주부터 국어·수학 시간, 선생님과 단둘이 마주 앉아 공부한다.

파란색 테두리, 하얀색 명패에 적힌 ‘도움반’.


그곳의 차가운 온도와 뿌옇게 번진 광경을 뜨거운 두 눈에 담는다. 그리고 견고하게 마음을 다잡는다.

내 아이의 편안함을 우선순위에 두겠다는 초심을 꽉 부여잡는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아이, 잘 부탁합니다.”






“여보, 좋게 생각하자. 덕분에 시후가 조금 더 편해지잖아.”
“아는데, 왜 이렇게 힘들까?”
“그건 나도 그래.”     


우리는 지금 아프다.

불편함에 도움을 줄 수 없는 부모라,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없는 부모라,

서로의 어두운 얼굴을 힐끗 바라보며 어떠한 말도 건네지 못한다. 그저,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남은 감정을 가슴 한편에 고이 묻어두고 너스레를 떤다.      


“과외받고 우등생 되는 거 아니야?.”
“공룡놀이 하자고 안 하면 다행이다.”     


그제야, 무거운 공기가 조금 가벼워진다.



사진출처 :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기댈 곳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