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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Apr 03. 2023

발 끝에 느껴지는 자유

다른 듯 같은 방향


베란다 블라인드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봄햇살에 마음이 꿈틀거린다. 흔들리지 않으려 눈을 질끈 감아도 그 아래 흩날리는 벚꽃잎에 이미 마음을 빼앗겼다.


“나갔다 올게.”    

 

임경선 작가의 얇은 책 한 권과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 깊숙이 욱여넣고 나온다. 발목을 휘감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작은 이어폰으로 묻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동네 작은 카페로 들어간다. 날씨가 좋은 만큼 한산하다.

나이스.     


엑스트라 사이즈 커피를 시켜 테이블에 놓는다.

컵 사이즈는 나의 자유의 시간을 대변하다. 나의 바람을 대변한다.

‘오랜 시간 즐기고 싶다. 이 자유를.’     


이어폰을 더 깊숙이 밀어 넣는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임영웅 노래 연애편지.

묵직한 컵을 두 손으로 들어 입안 가득 부드러움을 담는다.

‘차마 그립단 말 대신 꽃잎을 넣어 보내며~


절로 감기는 눈에 행복이 차오른다. 피로가 녹는다.


딩동. 핸드폰이 울린다. 친구와 주고받는 안부에 우린 마감일을 건네받는다.

엉뚱한 사진 한 장과 함께.


“근데, 발이 평온해 보인다. 너와 나의 발에 대해 글 써봐야겠다.”
“서로 써보고 공개할까?”
“좋아. 마감 내일까지입니다.”
“웃기겠다.”
“집중하세요.”






받은 사진

홀로 사는 친구는 주말 아침,

늦은 기상과 함께 베란다로 나선다. 

투명 유리잔에 달콤한 믹스커피를 한 손에 들고 무심한 듯 내려놓는다. 정오가 다 돼 가는 시간임에도 체크파자마를 여전히 갈아입지 않는다.

털썩 주저앉아 스르륵 문을 연다.

아래 수놓은 초록빛 핑크빛 향연에 봄내음이 가득하다. 웬일인지 상자 옆 살짝 내려둔 발에 평온함이 느껴진다.


건넨 사진

일상의 고단함이 운동화 밑장에 잔뜩 달려있다.

그 무게로 발목, 종아리, 무릎, 허벅지에 균일한 에너지를 분배해야 무리 없이 걸어갈 수 있다. 그래도 오늘은 남편이 이 몫을 덜어준다.

비록 신데렐라 같은 시간일지라도.

발 코는 신이 나 몸보다 앞서나간다.

그런데 뒤꿈치는 그 속도에 맞추느라 애를 먹는다.

힘들다고 바닥에 내리면 오만에 얻은 자유가 멈칫할까 싶어 쫓아가려 부단히 애쓴다.

다행히 힘듦이 티 나지 않고 보폭을 맞혔다.

즐겨보겠다고 허벅지에 슬쩍 올린 발,

그래도 행복하다.

노래에 마음이 홀리고 부드러운 커피에 매료되니 그 피로가 잊힌다.






벚꽃마저 비치는 투명 유리잔, 꽃내음을 코앞에서 느낄 수 있는 활짝 열린 시. 거기에 더해진 뽀얀 발. 나와 다른 하루의 한컷에, 위로받는다.

이내 사진 속 넘실대는 자유로움에 몰입된다.  

   


우린 귀밑 3센티 달랑이는 단발을 자른 후로 친구가 되었다.

호리호리하고 눈물 많던 14살 친구는 20년 언저리가 넘어감에도 여전히 가까이에서 지낸다. 어쩌면 내 삶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표현이 더 알맞다.


방향을 못 잡던 보통의 어느 날, 그림 한 점을 선물 받았다.

행복한 그림만 그린다는 에바알슨 화가의 작품 중 마음을 끌어당긴 하나.

그 스케치에 나와 시후를 녹아냈다고 한다.

알록달록 물든 네모난 프레임 속 아이와 나.

힘든 어느 날이면 건네받은 그림을 마주하며 위로를 받는다.     


너와 나의 삶이 다를지언정, 서로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지금.

나는 너의 뽀얀 발을 통해 평온함을 느끼고,

너는 나의 신난 발을 통해 안도감을 느낀다.





딩동

마감일, 친구로부터 글을 건네받았다.


일주일 무겁게 버틴 발아,
너에게 주어진 보상의 시간이다.
참으로 가벼운 발걸음이길
아직 그렇게 살아보지 않은 내가 너에게 어떤 말을 할 수 있으랴마는
잠시 뒤돌아 오롯이 혼자서 신발 끈을 묶을 때
네가 느꼈을 행복만큼 발 너도 안도했을 거라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말해줬길.          



사진출처(제목)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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