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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Apr 06. 2023

흰쌀밥

허기가 아닌, 마음을 채우는 것


“진짜 하기 싫어.”     


참고 참던 인내심은 일요일 저녁 결국 터지고 말았다. 마지막 한 끼였는데, 그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가위를 냄비 안으로 집어던졌다.

깜짝 놀란 그들의 눈동자는 대수롭지 않게 각자의 것에 집중했으나 오직 한 사람, 남편은 배시시 웃으며 내게 다가온다.


“김치 자르는 게 그렇게 힘들었어? 줘 내가 할게.”


그렇게 주방을 나오고서야 깊은 한숨을 쉰다.

난 해 먹는 일에 흥미가 없다.






부모품에서 해주던 것만 먹던 나는 결혼이란 제도권 안에 들어오게 된다.

감사히도, 아침을 안 먹는 그 덕분에,

외식을 선호하는 그 덕분에

간신히 숨길 수 있던 신혼이었다.    

 

그러다 까꿍하고 나타난 아이 덕분에 위기에 봉착한다. 다행히도 값비싼 식재료를 앞세워 이유식과 유아식이라는 명분아래 니맛도 내 맛도 없는 무맛이 허용될 수 있는 빌미를 앞세웠다. 덕분에 식재료 고유의 맛을 즐길 줄 아는 건강한 어린이로 자랐다.     


그러나 그 어린이가 세상의 맛을 알아가는 이젠,

진퇴양난이 따로 없다. 난 그렇게 시늉만 하며 손에 꼽히는 몇 개의 메뉴로 돌림노래를 한다.

오늘도 여전히 비슷한 메뉴의 나열이다.


“만들지 말고, 시키세요!”


아이의 진심에 남편이 웃으며 한마디 거든다.


“여보는 나가서 일해야 해. 주부랑은 어울리지 않아.”


맛없음을 에둘러 표현하는 남편이다.     



일을 다닐 땐 먹는 일, 먹이는 일에 크게 비중을 두지 않았다. 어쩌면 먹고 먹이는 일은 내 일이 아니라 생각한 지도 모른다. 사 먹으면 되니깐.

러나 휴직을 하고 집에 있는 지금은, 밥에 대한 무게가 다르다. 굉장히 무겁다. 특히 오후 5시면 몸 여기저기가 조여 온다.






어릴 적부터 동경한 경찰이 내게 다가왔다. 그 공간에 있던 매 순간이 행복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그 꿈이 먹이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생각보다 빨랐던 첫승진은 그 변화를 받아들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 걸렸다. 오랫동안 갈망하던 직장이었기에 당연히 서글펐다.     


다시 되돌아갔을 땐 승진은 이미 포기. 아이들 케어에 더 수월한 위치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다가올 복직이 그리 달갑진 않다. 여전히 꿈틀거리는 꿈을 고이 접어 가슴 깊은 곳에 넣어둘 때가 되면 즐기려나 싶다.



식구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


꿈을 밀어 넣은 대신 식구를 얻었다.

전신에 감도는 긴장감을 끌어안고 보낸 하루 끝에 둥근 식탁에 둘러앉는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지랄 맞은 사연까지 툭툭 내뱉으며 오늘의 즐거움을, 오늘의 서운함을 씹어 삼킨다.


“나 오늘 과장한테 혼났어.”
“왜?”
“넥타이 직접 매고 다니래.”
“별거 다 트집이네. 이따가 내가 해 볼게.”     


가끔 미운 가, 혼났다며 누런빛 얼굴과 함께 퇴근하면 안쓰러움에 마음이 울컥한다. 식탁에 둘러앉아 여린 남편의 마음을 보듬는다.


일상의 고단함이 얼굴에 가득 이어도 기댈 줄 모르는 꼿꼿한 아내에게, 남편은 배시시 웃으며 끌어안는다.      


아내 같은 남편, 남편 같은 아내.


둥근 식탁에서 보낸 일련의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연민이 생긴 것일까.

우린 이렇게 둘러앉은 이곳에서 치유된다.     



오늘도 식탁 위 한 끼를 차린다. 음식에 소질이 없는 나지만 유일하게 지키는 철칙이 있다.


묵은 밥은 제공치 않기.

오늘도 밥 짓는 것에 유난이다.


흰쌀 2컵을 가득 채워 담는다. 쌀알이 서로를 보듬을 수 있게 손으로 살살 어우른다.

그렇게 다듬은 것을 토닥이며 찰랑이는 물과 함께 밥솥에 넣는다. 얼마 후 알알이 끌어안은 따뜻한 온기를 식구에게 대접한다.

식탁을 가득 채운 식구와 그날의 허기를 채운다.






“오늘 집회 때문에 퇴근 늦어. 먼저 자.”


재우다 울린 핸드폰에 메시지가 남겨져 있다.

‘먼저 자. 일.’


떠지지 않는 눈으로 더듬더듬 찾아낸 남편의 넥타이를 휘리릭 감고 테이블 위 휙 던지고 다시 잔다.

허리를 감싸는 거칠고 두꺼운 손에 그가 왔음을 인지한다. 지금의 편안함을 깨고 싶지 않아 여전히 자는척한다.


“난 여보 없음 못살아.”


실눈을 살짝 뜨고 바라봤을 때 넥타이를 만지작 거리며 웃는 그가 비친다.


“넥타이 때문은 아니지?”
“아니지!”


난 여전히 그 의심을 거둘 수 없다.


사진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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