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민 Apr 10. 2023

삐뚤삐뚤 머리카락

흔적, 셀카


삐뚤삐뚤 앞머리
클수록 쳐져가는 날 닮은 눈썹



아이는 오늘도 역시 핸드폰에 선물을 담아놓고 곤히 잠들었다.     


    

며칠 전 미용실에서 잘랐음에도 마치 내가 이끈 거 마냥 제멋대로다. 전장 같았을 미용실에서의 격함이, 사진 한 장에 담겨있다.






아이는 미용실에 가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두 달마다 찾아오는 그 끔찍한 행사에 앞서, 오늘도 아이와 거래를 한다.


“머리 이쁘게 자르면 컴퓨터 30분 줄게”
“게임 30분!”
“게임은 안돼. 컴퓨터로 만화는 볼 수 있어.”
“알았어.”     


감각이 예민한 아이에게 미용실에 가는 것은 곤욕이다. 4살까지는 내 선에서 해결했었다.

목에 하늘색 보자기를 두르고 머리에 바가지를 씌운 상상을 하며 이발기로 휘리릭 밀어버리곤 했다. 아름다움보다 깔끔함이 우선이었다.

4살이었기에 귀여움을 앞세워 용서될 수 있었다.


정수리까지 올라갈 앞머리


5살이 되고 조금 더 큰 사회로 나갔다.

댄디컷, 울프컷, 투블록 등 이름마저 멋진 스타일로 자른 친구들을 보고 있자니, 이젠 셀프 이발 놓아줄 때가 됐음을 인지했다.

그리고 수소문 끝에 찾은 1인 미용실이었다.      


“아이가 예민한데 괜찮을까요?”
“데리고 와보세요.”     


역시나 자리에 앉자마자 어깨를 귀까지 봉긋 세운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이발기의 소음과 간질거리는 촉감은 아이를 곤경에 빠뜨렸다. 그런 아이의 머리를 깎는 미용사는 개업이래 난감한 역경을 맞이한다. 다행히도 손이 빠른 미용사 덕분에 다소 부족한 투블록이 완성됐다.



어느덧 그곳을 다닌 지, 4년 차에 접어든다.

정신없던 새 학기 끝에 아이 머리카락은 어느새 덥수룩하게 자라있었다.


“시후 머리 자르러 가서, 이야기할까?”
“무슨 이야기?”
“아이가 조금 다르다고.”


남편의 이야기에,

서로의 편안함을 위해 털어놓기로 했다.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네, 원하시는 스타일이 있나요?”
“아니 그게 아니라, 아이가 특별해서요. 머리 자르는 거 힘들어합니다.”
“이미 알고 있었어요. 3년을 봤는데요. 힘드셨을 텐데 이렇게 말씀해 주신 아버님 용기가 멋지십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바짝 쳐올린 까끌까끌 머리로 아빠 손을 잡고 나오는 아이가 나를 보며 배시시 웃는다.


“컴퓨터 주세요!”


차에 탄 남편은 먹먹한 표정으로 말문을 연다.


“알고 있었대. 그리고 시후 속도에 맞게 천천히 진행해 주더라고.”
“참 고맙네.”
“시후도 이제 제법 커서 잘 깎더라고. 다음엔 현금으로 드려야겠어. 세금이라도 덜 내게.”


남편의 너스레에 웃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눈물이 차올랐다.

우린 조금씩 세상에 아이를 오픈하는 중이다.

아이의 편안함을 위해,

더불어 우리도 편안해지고 싶었다.






어릴 적부터 눈 맞춤을 굉장히 불편해했던 아이다. 그리고 고심 끝에 생각한 사진 찍기였다.

‘snow’ 어플을 이용하니 재밌는지 제법 그럴싸하게 남겼다.


핸드폰을 나보다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이제는 깜짝 선물을 남겨둔다. 유치원 다니던 작년은, 선생님 핸드폰에도 선물을 드렸다고 한다.


연속촬영을 한 듯, 30장이나 남겨있는 사진을 검지손가락으로 한 장 한 장 넘긴다. 무표정으로 시작된 사진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사진으로 마무리된다.




표정을 가린 채 눈썹과 머리카락만 보인 아이의 첫 셀카.


그 검정 머릿결에 내가 숨는다.

지난 시간 다소 힘들었던 타인의 시선에 꽁꽁 숨었다. 몸을 움츠려 두 눈을 질끈 감는다. 아이의 검은색 까끌까끌한 짧은 머리카락이 나를 감싼다.       

   


다음 선물로, 입꼬리를 살짝 올린 듬직한 사진을 남겨두었다.


나도 허리를 곧추세워 전신에 긴장감을 준다. 또렷하게 찍힌 아이 눈빛에 진한 눈 맞춤을 보낸다.

옆에 잠든 아이의 부드러운 머릿결을 쓰다듬는다.



네가 나에게 보낸 얕은 미소에 가슴속 깊은 파동이 일렁인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 소장






작가의 이전글 흰쌀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