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민 May 04. 2023

대상 박은빈

계속해보겠습니다



금요일 오전이면 핸드폰을 놓지 못한다. 다가올 주말, 어디를 놀러 가야 할지 끊임없이 찾는다. 울창한 나무속, 아기자기 꾸며진 숲 놀이터를 우선적으로 서핑한다.

꽃놀이를 가고 싶지만 일찌감치 포기했다. 밀집된 사람들과 그곳에서 뿜어 나오는 각양각색의 소음은 예상치 못한 불안으로 아이를 멈추게 하기 때문이다.     


‘불곡산 유아숲체험장’


깊은 나뭇결 내음과 묵직한 흙의 촉감에 아이들은 앞다퉈 달리기 시작한다. 몸은 가볍고 머리는 맑다. 얼굴에 차오르는 미소는 당연하다.


새파란 도화지를 뽐내기라도 하듯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눈이 부시다. 그러나 얼마 후 아이는 발걸음을 멈다.

양손을 귀에 밀착한 채 두 눈을 있는 힘껏 질끈 감은 모습에 가슴 끝이 아려온다. 오늘도 그분이 오셨다. 원인도 실체도 알리지 않고 시후 속에 꽁꽁 숨어있는 그분. 더 이상 어떠한 걸음도 할 수 없다.


집라인을 타기 위해 시후 뒤에 줄줄이 서 있던 친구들의 아우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쟤 이상해.”


시후를 끌어안고 그 무리를 벗어날 때 어느 한 친구의 입에서 툭하고 흘러나온다.


‘이상해.’

그 말이 왜 이리 슬픈지, 서슬 푸른 하늘이 그리도 원망스러웠다.


“시율아, 우리 이제 집에 갈까?”
“더 놀고 싶어!”
“오빠가 힘든가 봐, 다음에 또 오자.”
“오빠만 사랑하고!”

    

아쉬움을 뒤로한 시율이의 속상함에 가슴을 맞닿고 울음을 삼킨다.

“속상하지. 엄마가 미안해.”


지난주 즐거웠던 숲놀이터가 이번주는 눈물범벅 속상함으로 마무리된다.          






긴장의 여파가 남은 시후, 울다 지친 시율이.

무거운 공기에 어떠한 말도 쉽사리 내뱉을 수 없었다. 그 적막을 남편이 살짝 깨운다.


“우리 서울 떠날까?”


예전 같았음 약해 빠진 소리 하지 말라며 남편을 몰아붙였겠지만 몇 달 만에 지나치게 수척해진 남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그럴 수 없었다. 입과 볼을 나누는 경계깊어진 회색빛 얼굴에 마음에 없는 소리를 일단 던졌다.


“여보 하고 싶은 대로 해.”


안팎으로 힘듦이 쏟아져 나오는 남편에게,

그것을 공유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위로였다. 그리곤 시후를 더 뜨겁게 안았다.   

  


가끔 나도 동의한다. 아니, 요즘 유난히 그렇다.

한적한 시골로 내려가 자연을 벗 삼아 살면 시후가 편하지 않을까, 적어도 이곳에서의 예상치 못한 불안으로부턴 안전하지 않을까, 시골 민심이 더 너그럽지 않을까.     


6년 전 내 아이의 꿈, 소방관을 실현시켜 주겠다는 자신감은,  지금 발가락 언저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떨어지길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만해야 하는 거지? 이상을 좇는 일.



지난겨울 시후와 같은 아이들이 조금 더 편한 활동을 보장했음 싶어 시작한 '끄적거림'은,

내가 그럴 자격이 있나 싶을 무게감에 한동안 노트북 위에 손을 얹을 수 없게 했다.

나 따위가 감히.


오늘도 도피성 독서에 파묻힌다.

그렇게 활자 사이의 행간에 나를 꽁꽁 숨다.





대상 박은빈 님!


세상이 달라지는데 한몫을 하겠다는 그런 거창한 꿈은 없었지만, 적어도 이전보다 친절한 마음을 품게 할 수 있기를, 또 전보다 각자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들을 다름이 아니라 다채로움으로 인식할 수 있기를 바라며 연기를 했습니다.


읽던 책을 책장에 욱여넣었다.

그 속에 비겁하게 숨어 있던 나를 끄집어냈다.


지금도 애쓰는 너의 앞에서,

나의 고통만 앞세워 질끈 감았던 순간의 미안함에 뜨거워진 눈시울을 멈춰 세울 수 없었다.


오랜만에 노트북 앞에 앉았다.

멀어진 거리만큼 소복이 쌓인 먼지를 툭툭 털고,

따끈하게 빨은 수건으로 부드럽게 닦는다.


타닥타닥.

거친 부딪힘이 손끝에 에너지를 가져다준다.


계속해보겠습니다.






쉽지 않은 길 내어줘 미안해.
그럼에도 엄마 곁에 와줘서 고마워.


남들에겐 너의 삶이 이상하고 별나더라도,

가치 있 아름다움을 우리가 알기에

너의 빛을 잃지 않도록 함께 할게.


사랑한다.

작가의 이전글 널 포기할 수 없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