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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May 17. 2023

이상한 루틴

틀린 삶은 없습니다



하나, 둘, 셋.


손가락을 하나씩 접는 모습, 이상한가요?
전 왜, 가슴 끝이 저릿할까요.     







2022년 우리 곁에 불쑥 다가와 먹먹함을 안겨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주인공 우영우는 공포의 턱 앞에 발길을 세운다. 지그시 감은 눈, 섬세히 편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셋을 세고 문턱 너머의 세상으로 건너간다. 엉뚱한 그녀의 행동에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고 ‘자폐스펙트럼’이란 먹먹한 키워드가 대중매체를 휩쓸다.      


자폐스펙트럼을 겪는 친구들은 불안이 높아, 새로운 환경에 대한 대처능력이 미흡하다. 들은 살기 위해, 낯선 세상 속 자신만의 루틴을 통해 본인을 보호할 울타리를 만든다. 우영우의 루틴처럼, 그 일련의 과정을 통해 안정을 찾고 다음 스텝으로 나아간다.  


그녀의 이상한 루틴은 나의 사랑 시후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루틴’(네이버사전)

최고의 운동 수행 능력을 발휘하기 위하여 습관적으로 하는 동작이나 절차     






"이런 게 바로 루틴이죠. 자신이 만든 일련의 절차를 다 수행해야 끝나기 때문에 처리속도가 늦어지죠."
"그럼 깨야 하나요?"
"깨 주는 게 좋아요. 그러나 깸으로써 불안을 증폭시킨다면 어느 정도 선에서 보호해 주는 편이 좋습니다. “     


지난 소아정신과 진료였다. 소아정신과는 다른 과와 달리, 장난감과 매트 등으로 소규모 키즈카페를 연상시킨다.

집중이 어려운 이유로, 아이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관찰하기 위한 이유로 제공된 놀이공간이다.

매트 위에서 공룡 피놀이에 열중하던 아이였다. 진료가 끝날 무렵, 정리하자는 말에 마음이 급해진 아이는 집에서와 같은 일련의 루틴 보였다.


가장 좋아하는 티라노사우르스가 나머지 공룡을 이기는 상황. 그 일련의 과정이 형식적이더라도 모두 끝내야 아이는 편안히 자리에 일어난다.     


시후에게 마지막 남은 티라노사우르스는 마음을 지켜주는 용맹한 용사와 같다. 물론 그 루틴을 망가뜨린다고 감당하기 벅찰 정도의 화를 내거나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넘어진 다른 공룡들을 재차 일으켜 자신의 방식을 꿋꿋이 해낸다.      


우영우처럼, 시후에게 그 절차는 아주 중요하고 필요한 루틴이다.






당신은 어떤 루틴을 가지고 있습니까?



나에게도 있다.

동트기 전, 무거운 눈꺼풀이 시야를 가려도 따뜻한 커피를 내리는 일, 잔잔한 피아노 연주곡과 함께 그 온기를 온몸에 전달하는 일. 그것은 내게 중요한 아침 루틴이다. 

아침 5분의 따스함에 오늘을 잘 살, 에너지를 얻는다. 그 과정에 안정을 찾는다.          


시후와 나의 루틴에서,

우영우와 나의 루틴에서,

안정을 추구함은 동일나.


상황에 맞지 않는 엉뚱하고 이상한 모습에 우리는 을 뺏긴다.


우리의 시선은 의문투성이고,

시후 어미의 시선 시 투성이다.     


누군가와 섞여 사는 삶에 있어,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떤 날은 불과 1분의 시간도 여의치 않다.

그러나, 의무적 또는 선택적으로 만든 일련의 루틴은 나른한 날, 낮잠 같은 달곰함을 선사한다.


묵직한 머리와 찌뿌둥한 어깨선을 손목 위 살짝 올려 사르륵 감은 두 눈은 쉼을 제공받는다. 그 잠깐의 달콤함은 포근하다.


그러나 우리 시후에게 티라노 루틴은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말고 하는 낮잠이 아니다. 어쩌면 분히 채워져야 할 잠에 가깝다.

누군가 어떠한 이유로 깨뜨리면 다른 것에 시선을 돌리기 어렵고, 알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혀 설명할 수 없는 울음을 한동안 토해야 진정되는 무엇이다.   


누군가에게 불편을 제공할 정도가 아닌 이상,

시후의 루틴을 존중해 주는 건 어떨까.

우영우의 루틴을 기다려 주는 건 어떨까.


우리의 루틴이 존중받는 것처럼.






시후는 별나 보이는 이 세상에 함께 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우리라는 테두리 안에서 섞여 살기 위해서 잠시 일련의 과정에 집중할 뿐이다.


방식이,

다소 우스꽝스러울지라도,

다소 답답해 보일지라도.


틀린 삶은 없습니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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