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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May 19. 2023

코끼리 요리사

너랑 나랑 닮았다



“요리사 할 거야!”


언어치료실에서 수업이 끝나자, 아이는 내게 외친다.

방글방글 웃는 모습에 사랑스러움이 가득이다.


“꿈이 바뀐 거야?”
“요리사해서, 당근도 먹고 오이도 먹고 버섯도 먹을 거야.”
“음식 만들어서 누구 줄 거야?”
“코끼리!”     


언어치료수업의 주제가 마트(장보기)였다. 선생님은 마트에서 경험을 이야기 나누고 앞에 놓인 ‘카트’에 사고 싶은 물건을 담아 보라 제안하셨다.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를 쏟아냈고, 선생님은 생각지 못한 리스트에 소가 가득이다.


“오이도 사고 당근도 사고 수박도 사고 시금치도 사고 버섯도 사고! 선생님, 배고파요.”     


우리 시후의 꿈이 바꿨다.

여느 아이들처럼 순간의 바람을 담는다. 그 모습이, 어여쁘다.     






8살 꼬마의 슬픈 다이어트



호리호리한 체형에 길쭉하기만 했던 녀석이 듬직한 통통이가 되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이젠 서 있어도 볼록 올라온 배에 두 팔은 얹어 안정된 자세를 유지한다. 묘하게 나와 닮았다.


오픈 냉장고를 방불케 하는 가슴속 훤히 보이는 차가운 네모 박스.

띠링. 띠링.

문 좀 닫아달라고 울부짖는 소리에 언성을 높인다.


“박시후! 냉장고 그만 열어!!!”


몇 달 전부터 아이의 먹성에 관여기 시작했다.

아빌리파이정 1mg에서 어느덧 5mg까지 올랐다. 그만큼 식욕도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그렇게 원했던 뽀얗게 오른 둥근 볼살에, 이상하게 마음이 미어진다.


7살 시작했던 아빌리파이 복용이 어느덧 1년을 넘어가고 있다. 약의 대표적 부작용은 식욕증가다. 흔히, 약 시작 전 부작용에 대한 걱정이 크다. 그러나 당시 아이는 큰 키에 비해, 늘지 않던 체중으로 약 부작용에 대한 고민이 크지 않았다. 의사 역시 그렇게 위로를 했었다. 약의 용량이 늘며, 몸무게도 차곡차곡 오르기 시작했다.      


체스처럼 전략상 한 수 물렀다.

충동성과 불안을 내어주고, 식욕을 얻었다.


“시후 뚱뚱해?”
“그래도 귀여워. 대신, 7시부터는 그만 먹자.”


작고 빨간 입술을 요리조리 오물거리 맛있게 먹는 모습에 쓰러진다. 이 사랑스러운 모습을 아쉽지만 저녁 7시면 멈춰야 한다. 신데렐라와 다를 바 없다.          






“시후랑 코끼리랑 똑같아?”     



헐레벌떡 뛰어와 윗옷을 한껏 올린다. 봉긋 올라온 배를 두드리며 툭 던진다.


“어디가 똑같은 거 같아?.”
“배.”     


이 녀석도 슬슬 차오르는 배가 신경 쓰이는지 내 앞에서 자주 윗옷을 걷어올린다. 시후는 키 크기 때문에 통통해도 괜찮다 위로에도, 석연치 않는 표정을 짓는다.


“코끼리도 키 커?”
“어 그러네. 코끼리도 키가 크네.”


그렇게 일방적 질문을 훅 던지고 떠난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코끼리랑 시후랑 닮았네.’     




암컷이 이끄는 코끼리 가족은 다른 가족과 함께 집단생활을 한다. 수컷 코끼리는 홀로 지내는 것을 즐긴다.

커다란 덩치 때문인지, 코끼리의 인성 덕분인지 적이 없고 맹수 사자도 쉽사리 달려들지 않는다.

또한 예민한 귀 덕분에 30km 이상 떨어진 먼 곳에서의 위험을 감지한다.

물을 좋아하는 코끼리는 아삭아삭 당근을 좋아한다.



홀로 앉아 노는 아이의 뒷모습이, 괜스레 시리다. 발끝을 세워 조심스레 다가가 본다.

동화책 한 권을 앞에 두고 검지손가락 끝에 힘을 준다. 한 자 한 자 찬찬히 읽는 너의 옅은 미소에 안도감이 다.


친구와 의사소통이 미흡해, 행여 놀림을 당하지 않을까 싶어 먼발치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나를 발견하고 뛰어오는 아이의 오른손에 작은 마이쥬 하나가 놓여있다. 친구 역시 시후의 미소에 매료됐는지, 그 빛을 작은 간식으로 답한다.


초능력 귀로 쓰린 가슴을 끌어안는 순간이 많지만, 예민한 귀 단숨에 입력된 경쾌한 노랫말을 흥얼거리며 즐거움의 콧노래가 가득이다.


짝 붙은 수영복 바지, 넘실대는 둥근 배.


투명빛 찰랑이는 물결에서 날갯짓을 하듯, 물속에서 너는 자유롭다.






아들.

네가 엄마에게 찾아왔을 때 커다란 코끼리인형을 너의 침대 곁에 뒀어.
졸릴 때 기대기도, 허전할 때 채워주던 그 녀석이,
네가 걷기 시작하고 더 큰 세상에 시선을 닿았을 때 살며시 거리를 뒀지.
 
지금은 부딪히고 깨져 내 품에 안기지만

그 하루하루가 오롯이 너로 살아갈 삶이 될 때를 기대하며. 코끼리인형이 그랬듯, 나 역시 설레며 그 순간을 기다릴게.

넌 항상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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