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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Apr 25. 2023

널 포기할 수 없어

비락, 슬픔을 덮는 함께하는 즐거움


요똥의 10분 컷 레시피


재료 : 떡 한 줌, 어묵 한 봉지, 파 한주먹,                            식혜 한 캔, 고추장 한 수저 듬뿍


1. 식혜와 물(200ml)을 넣고 고추장을 푼다.

2. 떡과 어묵, 파를 바로 넣고 졸인다.


식혜의 탈을 쓴 떡볶이는, 

학교 앞 분식집에서 먹던 맛을 상기시킴. 강추.






칼 같은 일직선 머릿결이 귀밑을 찰랑이던 시절,

친구들과 둘러앉아 보글보글 끓여 먹던 즉석떡볶이는 여전히 강렬한 메모리다.

오늘처럼 주르륵 내리는 비가 가져다준 서늘한

공기에 예상치 못한 기억이 상기된다. 그리고 이내, 침샘이 먼저 반응을 일으킨다.


스테인리스 테이블 위, 네모반듯한 버너를 놓고 올린 양은냄비 속 각양각색의 조합들.

그리고 그 마무리놓칠 수 없는 든든함.


“이모! 여기 밥 2개만 볶아주세요.
김가루 많이요!”


그 시절 유난히 가파른 교문에서 교실까지의 거리를, 지치지 않고 헐떡이며 제시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볶음밥의 힘이 아니었을까.    

 





8살이 된 시후는 떡볶이를 좋아한다.

작년까진 애써 만든 떡볶이를 다시 씻어 먹는 속상함의 번거로움이 존재했으나, 이젠 초등학생이

됐다고 있는 그대로의 매콤함을 즐긴다.


시후는 떡파, 난 어묵파.

같은 음식에서 선호하는 파트가 다른 우린 평화롭게 식사를 즐긴다. 그러나 매콤하고 질퍽한 국물을 감싼 파로, 이따금 다투곤 한다.


“파 시후가 먹을 거예요.”


먹을 거 앞에선 한 치의 양보가 없다.     


불과 얼마 전까진 다양한 맛의 떡볶이를 제공했다. 그날의 레시피에 따라, 지나치게 달기도 하고 씻어야 먹을 수 있을 정도의 매콤함을 제공하기도 했으며 이따금  맛도 내 맛도 없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은 공들여 보낸 재료 손질과 불 앞에서 뜨거운 기운을 한껏 먹으 달달 볶던 시간이 허투루

날아간다. 아이는 떡 하나를 입에 넣고 삼키지 않으며 이야기한다.


“배불러요.”


외마디를 외치며 차갑게 돌아서는 아이의 뒷모습은 굳이 묻지 않아도 오늘의 떡볶이 맛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너를 만났다. 비락식혜

(※광고 아)


“이게 맛을 낸다고?”


네이버 블로그로 우연히 접한 레시피, 얘랑 고추장만 넣어도 맛이 난다는 소리에 실소가 터졌다.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해봤다.


냄비에 식혜를 쪼르륵 따른다. 밥풀은 거르고 넣으라 여있지만 난 그리 섬세하지 못하다. 모든 재료를 탈탈 털어 였다. 의문이 들었지만 나머지 재료를 넣고 걸쭉한 농도가 완성됐을 때 맛을 봤다.     


‘세상에나.’



그 후로 아이는 자주 떡볶이를 주문한다. 냉동실을 뒤적이며 아이는 동그랗게 말린 떡 봉지를 꺼내 내게 건넨다.


“떡볶이 해주세요.”


떡볶이의 주재료를 나에게 건넨 아이의 당연함에, 난 당황한다.


“식혜가 없어서 할 수가 없어.”


어리둥절한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자면,

미안함을 앞세운 미소가 입가에 머문다.






아이가 성장하며 모습에 나를 보게 된다.

알려주지 않았으나 자연히 닮게 되는 모습에 먹먹함이 깊이 박히는 날이 있는가 하면,


매콤함과 쫄깃함을 즐기는 모습에,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스테인리스 테이블에 둘러앉아 먹던 행복함을 공유하기도 한다.


나를 닮은 작은 친구 매콤한 맛으로 하나가 된다.



“아들 맵지 않아? 엄만 매운데”


씁씁거리며 빨갛게 달아오른 조그만 입술 식탁에서 몸을 일으킨다. 본인의 어몽어스 물컵에 시원한 물을 찰랑이며 내 곁에 다가와 조심히 내려놓는다.


‘아. 이 스위트한 차도남.’


백 마디 말보다 섬세하고 따뜻한 아이의 행동에 목이 멘다. 널 어찌 안 사랑할 수 있겠니.

 





보슬보슬 어깨만 살짝 적시는 오늘 같은 날,

가족과 둘러앉아 떡볶이 즐겨보시는 건 어떤가요?


꽤 달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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