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민 Apr 22. 2023

집단상담

#1. 나


“나를 뒷담화한다고?
왜?
이따가 수업 끝나면 보자고 전해줘”     



옆반에서 삼삼오오 모인 친구들 사이,

한 친구가 시작한 불장난을 지켜보던 다른 이는

친절하게 반을 옮겨가면 그 소식을 내게 전해줬다. 6교시가 끝나자마자 그 친구 교실문을 두드렸다. 단지, 나를 싫어하는 연유가 너무나 궁금했었다.     


“이유가 궁금한데 말해줄 수 있어?”
“아니, 그게 아니라.”     


굉장히 차분한 목소리와 미소를 머금고 던진 나의 행실에 당황한 친구는 머뭇거리다 미안하다는

말부터 건넸다. 이유는 터무니가 없었다.

중학교 2학년의 미성숙한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질투로 험담이 시작된 것이었다.


“앞으로 뒤에서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언제든 할 말 있음 이야기해 줘. 나에게.”


궁금증이 해소된 난, 가뿐한 마음으로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으러 갔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난 좀 이상한 아이였던 거 같다. 아주 어릴 적부터 또래와 달리 지나치게 침착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떠한 행동에 명확한 이유가 존재해야 하며, 납득이 돼야 받아들였던 아이였다.



그러나 난, 나의 이런 묵직한 냉정함이 좋다. 

사사로운 감정에 휘말리지 않다. 뻣뻣이 중심을 잡았고, 게다가 화를 내지 않아도 되기에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 없었다. 덕분에 여전히 주변과 깊은 관계가 유지된다.

물론, 자존감도 하늘 높은지 모르고 치솟았다.  


차가움을 유지하며 높은 곳에서 꽁꽁 얼어붙었던 자존감은, 아이의 아픔을 알고 녹아 흘러내렸다.

그래도 그 순간, 곁에서 쓸어 담아준 큰 그릇의 내 사람들이 있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러나 불현듯, 그들에게 미안해졌었다. 나의 몫을 나눌 수 없음에도, 편하고자 조금씩 떼어 강제로 쥐어 주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뇌리를 스쳤다.


그리고 그날 이후, 그 몫을 가슴속에 담기 시작했다. 그래도 버틸만했다. 나름 6년 차 짬밥이라 분기별 찾아오는 우울함을 견딜 스킬도 습득했었다.     



따스한 햇살이 감싸던 4월의 푸르름이 가득하던

그날은 달랐다. 미루고 미루던 아이의 장애등록을 위해 묵직한 서류를 주민센터에 건네고 오던 날이었다. 그리고 같은 날, 비슷한 시간 반려견 딱지가 우리 품을 떠났다. 엄마와 난 각자의 큰 상실을

이유로 몇 날 며칠, 눈물로 지새웠다.    

 

그렇게 흐느적거리는 어제와 같은 어느 날 친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집단상담 자리가 하나 남았는데 생각 있어?"
"무조건! “


탁상달력 4월 20일을 빨간색 색연필로 있는 힘껏 동그라미 쳤다.

치유의 시작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집단상담이 이뤄지는 그곳은 다름 아닌, 휴직 전

근무했던 지구대의 관할이었다. 처음 가는 곳이지만 처음 같지 않은 그곳에 마음이 끌렸다.


이내 우린, 마스크에 불편한 표정을 가린 채 둥글게 모여 앉아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상담사의 담담한 시작으로 나와 다르지도 같지도 않은 참자들은,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담담히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몰입감을 입증하듯 그곳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10분의 쉬는 시간이 흐른 후, 강사는 종이인형 놀이책을 건넸다.


“아이템을 오려 붙여 자신을 표현해 주세요.
과거, 현재, 미래의 나. 누구든 상관없습니다.”


어릴 적부터 로봇을 가지고 놀던 난, 오리고 붙이느라 흘러가는 지금 이 시간이 아쉬울 뿐이었다. 책을 스르륵 훑으며 눈에 들어온 외투, 바지, 신발, 머리스타일을 오려 붙였다. 예상대로 1등이었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다른 참가자들을 바라봤다.


이내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 방금 전 지난 고통으로 울음을 토해내던 그들은 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공통점은 과거의 자신을 표현했다는 점이다. 깊은 고민이 없던 그 시절의 파릇함을 서슴없이 즐기고 있었다.


‘아. 이분들 지금 상처가 녹아내리는구나.’

단번에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그들과 난 달랐다.

묵묵히 걸어왔던 지난 시간을 덤덤히 이야기하는 난, 종이인형으로 미래의 나를 만들었다.

만들 때 몰랐던 결과물이, 나머지 참가자와 다른

방향임을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다소 놀라웠다.

눈에 띄는 나의 인형에 상담사도 관심을 보였다.


“미래의 모습인가요?”
“네.”
“가을에, 행복한 혜민 씨의 모습 같네요.”


난 정말 다가올 가을에, 행복을 꿈꾸것일까.

질문에 여전히 의문이다.






그날 난, 굵직한 눈물도 없이 왜 행복한 미래의 나를 만들었을까.

그 의문은 돌아오는 길, 작은 꽃망울에서 찾았다.   

  


겨우내 앙상한 가지 속 작은 새싹은 자신을 숨긴다.

그 가지를 감싸는 시린 공기와 차가운 눈이불에

아려오는 서늘함을 애써 버텨낸다.


그렇게 맞이한 봄 역시 긴장을 놓는 일이 없다.

곧 다가올 이름만 예쁜 꽃샘추위의 고통을 예견하기 때문이다.


봄의 따뜻함에도 들뜸이 없이 묵직함을 유지하는 건, 그 서림의 고통이 지나서야

품 안의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와 시후는,

그 겨울의 앙상한 가지 속 작은 망울일지도 모른다.

화려한 꽃을 드러낼 희망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사진출처(제목) : 픽사베이

작가의 이전글 일타조력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