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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Jul 02. 2023

데이트 중독자


“생일에 뭐 하고 싶어?”
“피자가게에서 피자랑 스파게티 먹고 싶어.”
“다 같이 갈까?”
“아니. 엄마랑 시후랑 두 마리만.”
“두 명만.”
“두 명만. 엄마는 사이다 먹고 시후는 피자랑 스파게티 먹을게.”   

  

아이의 8번째 생일이 찾아왔다.

예전엔 선물을 미리 고민하고 준비하는 맛이 있었으나 이젠 초등 형님이 되었다고 핸드폰과 게임 이외엔 관심이 없다. 그래서 굳이 선물을 몰래 준비하는 번거로움을 생략하고 의사를 물었다.


그런데 단둘이 데이트가 하고 싶다는 외의 반응이었다.


"시후야, 데이트가 뭐야?"


좋아하는 사람이랑
놀러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는 거야.



그 3가지 요건을 충족시키는 것은,

지하철 타고 백화점 가서 간식 먹기다.     

시후는 일정화된 패턴에 고집부리진 않지만, 안정감을 느낌은 확실하다.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예사롭지 않은 미각은, 작고 비싼 디저트를 한눈에 알아보는 능력을 가졌으며 그 모든 요건을 백화점족시켰다.


데이트라 일컫기에 당연히 지하철 백화점이란 단어를 툭 뱉을 줄 알았다. 그러나, 8살 생일엔 달랐다.


피자가게에 가서 피자와 스파게티 먹기


놀라웠다. 이게 그렇게 놀라운 일인가 싶겠지만, 관심사가 조금씩 옮겨가는 것은 시후에게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작업 중 하나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남편과 둘째를 등지고 오롯이 그 시간을 즐기러 떠났다.     


피자가게에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에 이미 즐거움이 가득이다.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홀로 두고 주문하러 갔으나

혼자 잘 앉아 있을지 걱정스러운 마음에 눈길을 아이에게 옮겼다.


육중한 몸과 커다란 키로 테이블 옆 좁은 공간에 서서, 오른쪽 왼쪽 번갈아 가며 흔들흔들 춤을 추는 녀석에서 마음을 뺏겼다.  

   

6살부터 시작된 흔들흔들 상동행동은 8살이 된 지금도 기분이 좋아지면 여과 없이 불쑥 고개를 내민다.

지난 시간 아이의 상동행동에 사정없이 흔들렸던 난,

여전한 흔들거림에 흐뭇한 입꼬리가 먼저 반응한다.

우린 성장하고 있다.     





“피자는?”     


분명 학교에서 점심을 먹었을 텐데, 아이는 재촉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따끈따끈한 향연이 눈앞에 펼쳐진다.


쫑알쫑알 동생 없이, 골고루 먹으라는 잔소리꾼 아빠 없이, 오롯이 즐기는 식사에 아이의 광대는 내려올 생각이 없다. 그러나 급발진한 식사속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서서히 멈췄다.


“시율이 줘요. 집에 가자.”     



최근 주의력약을 다시 시작했다.

넘치던 식욕은 하얀 알약 하나로, 다소 미진해지고 사랑스러운 미소는 낯선 시크함으로 전환됐다.     


그 약 때문이었을까,

아웅다웅 동생이 생각났던 것일까.


남은 피자를 급하게 포장해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는 여전히 가볍고 밝다.

그 소중한 잔상은 오랫동안 자리 잡고 떠나지 않았다.     








생일.

아이가 한 살 한 살 거듭함이 두려웠었다.


발달이 올라오긴 할까.
학교 가기 전에 어떻게든 기능을 올려야 하는데.


아이가 내 곁에 온 소중한 날,

6월 30일 그날이 그렇게 서글펐다.   




8살 생일.

아이를 위한 날을 온전히 축하하기로 했다.

아이도 생일을 알려주면 기억하고 새다.


생일에 의미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즐거운 날임은 뼛속까지 느낀다. 그 즐거운 감정을 아이에게 8년째 설명한다.


“엄마 아들로 와줘서 고마워.”
“네!”  

   

      


           




아이의 미소에 매료된 난, 데이트를 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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