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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Jul 03. 2023

갈아 만든 사과

사랑 100%



어릴 적 주말마다 할머니 댁에 갔었다.

시골집 마당에서 친척들과 신나게 뛰어놀다 보면 어김없이 저 멀리서 큰어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밥 먹어~"


밥그릇에 볼록 오른 흰쌀밥을 잔소리 없이도 순식간에 먹고 일어나는 순간, 할머니는 화려한 꽃무늬가 그려진 양은 쟁반에 사과를 반으로 쪼개 수저와 함께 들고 오셨다. 그리고 우린 그 동그란 쟁반 선을 타고 쪼르륵 둘러앉았다.     


수저날을 세워 사과 가운데를 푹푹 패면 동그란 사과 안에 럭비공이 생다. 그리고 할머니는 수저를 야무지게 잡고 긁기 시작하셨다. 샥샥.


수저와 맞닿은 사과의 단면은 얇은 막의 형태로 켜켜이 쌓이며 달콤한 향을 뿜어다.

입안 가득 맴도는 군침에 턱끝이 저려왔고 우린, 그저 할머니 손만 바라볼 뿐이었다.     


사과 속 타원은 넓고 깊어지며, 부드러운 사과는 차곡차곡 쌓다. 그리고 할머니 손에서 우리들 입속으로 차례차례 건네받은 사과는 유독 달곰했다.     


코로나지내온 우리 아이들은 맛볼 수 없는 재미다.     







시후를 낳고, 6개월쯤 되었을 때였다. 이유식을 시작하고 맛볼 수 있는 음식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고 있었다. 그리고 시작하기 알맞은 과일은 사과였다.

어릴 적 내가 맛봤던 그 사과를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


할머니처럼, 사과를 반으로 쪼개 우주선처럼 속을 푹푹 파보았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홈의 단면 안쪽을 수저로 싹싹 긁어보았으나 부드러운 셔벗 형태보다 덩어리가 툭툭 떨어지고 만다.     


마주 보고 의자에 앉은 먹성 좋은 아이는 그저 발만 동동이다. 그리고 이내 울음을 터트렸다. 당황한 초보 엄마는 수저를 내려놓고 믹서기에 후루룩 갈아 아이에게 가져다주고서야 혼미해진 정신을 붙잡을 수 있었다.      






받아먹기만 할 땐 몰랐다. 아쉬운 양만 운운하며 ‘할머니 더. !’ 외치기만 했다.

오로지 사과만 주시했고 힘줄이 봉긋 솟은 할머니의 손등은, 그땐 보지 못했다.     

힘에 부쳐 이젠 깎아준다는 말에, 어린 손주들은 싫다고 어리광을 앞세워 지속함을 강요했다.

그 순간, 할머니는 그저 웃으며 손을 멈추지 않았다.     







어릴 적 할머니댁과 가까이 살았다. 그곳엔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큰아버지네 식구 3대가 살았다. 농사도 크게 지었고 모두가 기피하는 종갓집이란 타이틀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주말에 자주 가 했었다.     


농사가 끝나는 겨울이면 그제야 할머니는 우리 집에 오시곤 하셨다. 그리곤 오시자마자 시장가길 재촉하셨다.


"떡볶이 사줄게 시장가자."


두툼한 몸빼바지를 입은 할머니의 허리춤에 깊이 숨어있는 볼록한 무언가가 있었다.

조롱박 모양으로 입을 앙 다문 할머니 호주머니에 각양각색 지폐가 돌돌 말린 채 어우러져있었다.

그 지갑을 오른손에 꼭 고 우린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 첫 번째 골목에 줄줄이 늘어선 분식집은 6곳이었다.


"한 곳만 팔아주면 안 돼. 골고루 먹고살아야지."


첫 번째 집에선 떡볶이, 두 번째는 순대, 세 번째는 만두...

그렇게 우린 결국 한아름 안고 집으로 가져와 야무지게 먹었다. 그런 손주들을 바라보며, 소주 한잔 시원하게 마시고 가볍게 일어나신 할머니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자리를 일어나다.

식사하고 가시라 해도 손을 휘휘 저으며 소 밥 줘야 한다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셨다.







몇 년 전 사과농사를 시작한 큰집에서 사과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올해도 보내주셨다.


도마 위 반으로 쪼개진 사과 단면을 마주하며 그 시절 할머니의 미소가 생각다.     


이제는 맛볼 수 없는 할머니 손맛이 그리워 수저로 살짝 긁어 코 끝에 가져간다.

옅은 향긋함에 어릴 적 양은 쟁반에 둘러앉았던 기억이 사르르 코끝을 스쳐간다.

그 설렘을 안고 혀 끝에 다가갔을 때 아쉬움이 가득이다.


역시나 그 맛이 나지 않는다.     


지금 내가 그리운 것은,

순도 100%의 사과였을까

사랑 100%의 진한 할머니의 사랑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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