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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Jul 05. 2023

쿠팡 장바구니 58개

엘사가 되고 싶어요


이른 새벽, 아이는 부스스 떠지지도 않는 눈꺼풀 속 새어 나온 시선으로 걸어 나온다. 안방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현관으로.


“너 어디가?”
“택배 왔나 보는 거야.”
“아직 생일 아니잖아. 택배 안 왔어.”


그럼에도 철컹 현관문을 열어 문 앞을 확인하고서야 소파에 철썩 눕는다. 5살 꼬마 아가씨는 불쑥 앞에 나타나 움켜쥔 주먹을 쫙 펼친다.


“엄마, 몇 번 자야 시율이 생일이야?”
“오빠 생일 지났으니깐, 이제 이렇게만 자면 시율이 생일이지.”


아이 눈높이에 맞혀 주먹을 폈다 접으며 그 수치를 눈으로 확인시켜 주었다. 한 달 전에 비해, 확연히 줄은 손가락 개수에 배시시 웃는 아이는 그저 해맑다.     


“장바구니 줘.”
“마트 갈 때 장바구니?”
“아니. 엄마 핸드폰에 장바구니.”    

 

지난달부터 쿠팡 장바구니에 차곡차곡 담기 시작한 물건은 어느새 58개.

5살 꼬마가 생일을 맞이하는 기다림이다.

장바구니를 쭉 내려보며 아이의 관심사를 한눈에 짐작할 수 있었다. 엘사가 되고 싶다던 아이는, 정말 머리부터 발끝까지 엘사가 될 작정이었다.

심지어, 장바구니에는 엘사 팬티를 시작으로 양말까지 담겨 있었다. 그녀의 5살스러움에 장난기가 발동한 난, 아이를 불렀다.     


“너무 많아서, 쿠팡아저씨가 무거워서 못 가지고 온대.”
“아니야. 아저씨 힘세서 할 수 있어.”     


사심을 가득 채운 아저씨를 향한 응원에, 아이의 쇼핑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쿠팡 관계자분, 미래의 큰 손 여기 있습니다!

15년만 기다려주세요!     

  





시율이는 자신보다 15일 빠른 오빠의 생일날, 달콤한 케이크 앞에서의 부러움을 잠시 누를 줄 아는 누나 같은 동생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기다림’을 몸으로 익힌 나의 딸 시율은 내게 소중한 아픈 손가락이다.

    

아직 엄마의 곁이 그리운 5살은, 아픈 오빠에게 곁을 내준다. 이따금 속상함이 차올라, 작은 입을 통해 깊은 한숨을 쏟아낸다.


그 꺼지는 깊음에 누구에게도 다가가지 못하고 두 녀석 언저리에 우두커니 자리를 채웠다.


오늘의 무능함이, 버겁다.     

 



특별한 아이가 한 가정으로 왔을 때, 부모는 모든 시선이 그 반짝이는 아이에게로 뺏긴다. 그런 시간이 당연하다 여기고 그 감정이 무뎌질 때쯤, 사랑을 갈구하는 다른 아이가 눈에 들어온다. 사랑을 포기해야 함을 육감적으로 느끼는 작은 눈망울의 서운함이 심장에 콕 박히는 날, 나 역시 무너졌다. 사랑을 나눠야 함에도 나눌 여력이 없음이 나를 주저앉다.


“엄마가 시율이 많이 사랑해. 미안해.”


끄덕이는 고갯짓에 눈물이 일렁인다.      


비장애자녀는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아간다고 한다.  그러나 난 시율이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넓은 세상, 하고 싶은 것, 제약 없이 누리길 바랄 뿐이다.






오늘은 남편이 당직 후 일찍 집에 왔다.

쏟아지는 빗줄기가 유독 설렌다.

"여보 시율이 데리고 올게."


투명우산, 엘사장화를 들고 유치원으로 달려갔다.

"엘사신고 첨벙첨벙할까?"   


오랜만에 받은 엄마와 시간에, 첨벙 첨벙이 허락된 오늘, 아이는 신이 났다.

빨라진 발걸음에 빗물은 더 높이 치솟는다.

그 결에 맞혀 아이의 입고리는 더 더 높이 오른다.     


"엄마."

"응?"

"비가 더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


하늘색 엘사장화를 신은 아이가 유난히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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