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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Aug 30. 2023

안과 밖이 다른 여자

두 얼굴 또는 그 이상



장바구니와 엘사 지갑을 움켜쥔 시율이를 37.2도의 애매한 미열로 꺾을 수 없었다. 오늘은 아이가 기다리던 ‘마켓데이’이다.

이마에 맞댄 따뜻한 체온에 걱정이 앞섰지만, ‘쉴까’라는 한마디에 한순간 치켜 오른 아이 눈썹을 보며 나의 염려를 넣어뒀다. 그리고 예정된 시후의 병원 진료를 위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무겁게 울리는 핸드폰 소리는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병원 진료차 나와 있어서, 여기 마무리되면 바로 갈게요 선생님.”


이미 한 시간 이상 지나, 부리나케 달려간 유치원 놀이터에는 마켓놀이가 한창이었다. 그리고 5살 친구들 사이, 핑크색 치마를 입은 시율이도 오픈런을 위해, 장바구니와 지갑을 들고 서 있었다. 실룩이는 입고리엔, 38도의 체온은 보이지 않았다.


조심히 곁에 다가가 집에 가자는 제안에, 싫다고 고개만 거칠게 저었다. 선생님과 눈빛을 교환한 난, 마트 놀이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 얼마 후, 장바구니 2개를 양손에 나눠 들고 나왔다. 여전히 따끈한 이마였지만, 가득 채운 바구니에 잔뜩 오른 어깨를 숨길 수 없었다.


“야호! 집에 빨리 가자 엄마.”     


5살 꼬마숙녀는 스스로 고른 핑크색 장바구니와 엘사 지갑을 머리맡에 두며 마켓데이를 일주일 전부터 기다렸다. 그리고 불현듯 하루 전, 불청객이 찾아왔다. 그러나 감기라는 녀석은, 설렘을 막을 수 없었다.     


넘치는 즐거움에 행여 넘어질까 염려된 양손의 장바구니는, 균일한 무게로 아이의 중심을 잡아다.






풀소유 시율은 친구들과 동일하게 제공된 쇼핑 기회를 쪼개 오빠의 선물을 챙겼다.

‘선물!’ 하며 오빠의 손에 쥐어준 바다코끼리와 도마뱀.

무소유 시후도 마음에 들었는지, 질문이 쏟아졌다.

    

“시율아. 바다코끼리가 힘이 세, 도마뱀이 힘이 세?”
“도마뱀이 힘이 세. 키가 크잖아.”
“아닌 거 같은데? 바다코끼리가 더 크잖아.”
“오빠~ 너! 안 사랑할 거야!”     


자기편을 안 들어주는 오빠가 미운 5살 시율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빠의 관심사를 꿰뚫고 있는 누나 같은 동생이다.     







집에서 오빠를 쫓아다니며 잔소리하던 시율이는 어느 날부터, 밖에 나가면 시후 손을 꼭 잡고 놓지 않는다. 오빠 손 잡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건네도, 듣지 않는다. 맞닿아있는 손이 불편한 시후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나지 못한다.


“시율아. 오빠 손 말고, 엄마 손 잡자. 오빠 불편하대.”
“시율이가 잡을 거야.”
“왜?”
“밖에 나가면 시율이가 오빠 지켜줘야 해.”     


진심을 툭하고 건넨 아이는 서둘러 오빠와 함께 그네로 달려갔다. 나란히 앉은 그네를 그저 지켜봤다. 그리고 어느새 눈물이 차올랐다.



오빠 손을 꼭 잡은 작은 손의 무게에 먹먹해졌다. 전하지 않았지만, 눈치 빠른 아이는 어쩌면 오빠의 다름을 알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윽고 깊은 고민에 빠졌으나 결국 최선을 찾지 못했다. 그저 어둑해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벤치에서 일어나, 아이들을 불렀다.


“시율아. 집에 갈 때는 시율이는 오빠 손잡고, 엄마는 시율이 손 잡을게.”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표정의 아이는 또다시 오빠 손을 꼭 잡다.     



오빠를 사랑하는 시율이의 마음씀이, 균형을 잃지 않도록 나 또한 균일한 가슴으로 따뜻한 아이의 손을 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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