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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Aug 24. 2023

2년 만에 완성한 음파발차기

성과보다 행복


6살 겨울, 널을 뛰는 감각 불균형으로 시작된 수영은 시후가 가장 좋아하는 수업이다.


2년 동안, 눈에 띄는 변화는 수영복이 3번 바뀔 만큼의 신체적 성장이다. 마르고 길쭉했던 아이는 넓은 어깨와 쫙 뻗은 키를 얻었으나 수영진도는 여전히 발을 살랑이는 헤엄에 멈춰있었다.

잠수를 유도하는 강사의 지시에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천진난만함에 강사는 고개를 떨구고 만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고 미안함이 가득한 얼굴로 나에게 다가왔다.


“어머니. 시후가 오늘 음파를 해야 하는데 거부해서 진도를 많이 못 나갔어요. 수강료도 비싼데..”
“괜찮습니다. 진도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컨디션 살피면서 놀이랑 진도 잘 섞어서 진행할게요.”






수영을 시작한 이유는 오롯이 시후의 편안함이었기에 진도에 욕심이 없었다. 그저

“오늘 수요일이야? 수영 가는 거야?”

하며 빙그레 웃던 설레는 아이의 미소가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힘차게 물살을 가로지르며 지나가는 다른 친구들 사이, 유유자적 고액 물놀이를 즐기는 시후를 바라보며 순간 허탈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끌어 오르던 나의 욕심을 꾹꾹 눌렀다.


‘오늘의 즐거움이 우선이.’


그런 내 마음을 아는 건지, 아이는 수영하는 중간중간 나와 눈을 마주치며 손을 흔든다. 그렇게 나의 욕망을 내려놓고 웃는 아이에게 집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영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어머니, 상반기 레벨테스트가 있는데요. 해볼까요?”
“가능할까요?”
“컨디션 따라 다르지만 일단 시도하는 게 좋겠어요.”
“시후가 주황모자에 관심이 있거든요. 제가 잘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선생님과 나는 음파발차기 완성을 위해 도모했다. 지금의 파란 수영모보다 주황 수영모에 관심이 높았던 시후에게, 음파발차기를 잘하면 선생님이 주황모자를 주기로 했다고 매일 힘을 실어주었다. 그리고 대망의 테스트날, 시후는 활짝 웃으며 결승점에 통과했다.   

(태권도 띠처럼, 레벨테스트 통과 시 수영모 색깔이 바뀝니다^^)


8월 19일, 시후의 일기


아이는 ‘레벨테스트’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한다. 2부 레벨테스트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35명의 친구들 사이, 해맑게 웃는 유일한 아이는 시후뿐이었다.

1%의 긴장감도 없이, 수영 선생님을 마주 보며 레일 시작점에 서 있는 아이는 달콤한 미소를 선생님께 보낸다. 출발 신호와 함께, 평소와 같이 발 끝에 힘을 줘 정제된 물결에 살랑살랑 바람을 일으킨다.

성큼성큼 선생님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선생님의 소리 없는 입모양에 아이는 고개를 투명한 경계 사이로 부드럽게 오르락내리락 거린다.

음파. 음파.


어느새 도착한 레일 끝에서 선생님은 시후를 쓰다듬는다. 아쉬운 시후는 그 지점을 다시 시작으로 하늘을 마주 보며 누워 물결에 온전히 몸을 맡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우리 모두는 시후의 감촉을 온전히 함께 했다.     

 







우리가 지난 2년 수영에 투자한 비용을 따진다면, 이제야 통과 레벨 1은 보잘것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어 수영 기준은 ‘화려한 기술 습득’ 보다, ‘지금 이 순간 얼마나 행복한가’이다.     


시후는 수영을 통해, 스스로 나아갈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고 숨이 턱턱 막히는 물속에서도 시야와 숨을 조절해, 자신의 길을 찾았다.


지금의 이 에너지와 즐거움을 기억해,


앞으로 시후가 주도적으로 살아갈 삶에 스스로 기준을 세우고 앞에 놓인 것들을 정확히 바라보며 자신의 방식으로 걸어가길 기대한다.      


지금의 수영처럼, 앞으로 시후가 만들어갈 삶이 여전히 행복할 것임을 알기에, 난 설렌다.




시후의 첫 수영 기록, 놓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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