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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Aug 14. 2023

흐노니

물에 빠진 닭고기


사방이 푸른 산으로 둘러싼 작고 까만 도시에서 태어났다. 시야를 사로잡는 찬란한 초록빛은 땅 속 검은빛을 상상하며 이따금 가슴을 덜컹 내려 앉혔다.


그 시절 우리 집도, 옆집 친구네도, 건너편 사는 누군가의 아버지도 닮아 있었다. 눈에 띄지 않는 회색 작업복 그리고 얼굴 군데군데 묻은 석탄가루, 탄광산업이 주였던 동네에 우리 아빠도 광부였다.       






광부는 좁고 깜깜한 지하 갱도 안에서 근무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한다. 지하 땅속 푹푹 찌는 높은 열기 속에서 검은 돌멩이에 집중한다. 야속하게 피어오른 가루와 먼지는 흐르는 뜨거운 땀방울과 뒤섞여 온몸을 휘감는다. 그 지옥 같은 현장에서 아버지가 버티는 힘은 가족이 아니었을까.     


작업이 끝나고 지상으로 올라와 맞이하는 차가운 공기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한다. 이윽고 따라오는 허기에 아버지가 동료와 향한 곳은 재래시장 구석에 자리 잡은 작은 식당이었다. 메뉴는 하나, ‘닭갈비’다.  

   

네모 테이블에 둘러앉아, 솥뚜껑 전골냄비 속을 가득 채운 닭고기와 철야채 그리고 기다림이 지루하지 않도록 는 가락국수사리를 아무 말 없이 지켜본다.

붉은 육수가 보글보글 맛있는 소리와 함께 둥근 냄비 을 오갈 때 한잔의 소주와 얼큰한 국물로 목 끝과 콧속을 가득 채운 먼지를 쓸어낸다.      


오늘의 피로를 씻어 내기도, 나를 포함한 동료오늘도 무사했음을 그 한술로 서로의 안위를 확인한다.


태백닭갈비는 광부의 삶에 안도였다.






어릴 적부터 늘 가까이 있던 음식이 태백닭갈비였다. 아는 맛이 무섭다더니, 그 맛이 사무치는 날이 있었다. 바로, 소중한 아이가 내 곁에 다가온 그 순간이었다.

    

첫째를 임신했을 때, 유난히 심한 입덧에 유일하게 구미가 당기는 음식은 딱딱한 키위뿐이었다. 그러나 뱃속 아이의 건강을 생각해 내 욕심만 내세울 수는 없었다.


'오늘은 기필코 고기를 먹어보겠다.'라는 일념은 코를 자극하는 역겨운 냄새와 곧 따라오는 부대낌으로 자리를 박찰 수밖에 없었다. 그리곤 더 그리워졌다.


여보 나 닭갈비 먹고 싶어.

춘천닭갈비를 먹어보려 해도 넘어 가질 않았고 어렵사리 찾은 ‘태백식 물닭갈비’는 성에 차지 않았다. 그렇게 과일로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그 지독한 입덧에 익숙해질 때쯤 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누렁아(친구 별칭). 속 울렁거려 죽겠어. 안정기 되면 태백 가서 닭갈비 먹고 싶어.


그렇게 꽤 오랜 시간 하소연을 털어놨었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택배가 도착했다. 아이스박스 속 옹기종기 모여있는 재료들, 친구한테 고맙다는 인사보다 닭갈비가 반가웠다.


닭갈비는 끓이면서 먹는 것이 진리, 가스레인지에 커다란 전골냄비를 올려 재료를 가득 담았다.

육수를 흠뻑 먹은 가락국수사리와 향긋한 쑥갓이 한데 어우러져 넘어가는 그 목 넘김에 자리를 떠날 수 없다. 이윽고 양념에 재워진 닭고기는 바글바글 끓는 전골 속에서 더 야들야들해다.


그렇게 한껏 즐기고서야 뒤늦게 부풀어 오른 다리의 저림을 느다.

'앉아서 먹을걸. 전화부터하고 먹을걸.'


찬바람이 살랑이던 가을, 가스레인지 열기를 한 몸에 안고 후후 먹던 닭갈비는 평생 잊지 못할 맛이다.    


 




야채를 오랜 시간 달여 만든 육수는 갖은 재료와  매콤한 양념장으로 개운하고 얼큰한 맛을 높인다.

아빠는 하루종일 졸였던 마음을 동료들과 마주 앉아,

울렁이는 속을 움켜쥐던 아이와 난, 뜨거운 전골냄비 앞에 서서 안심했다.


이제 우리 살았다.     

뜨끈한 국물에 우린 서로를 채웠다.       




흐노니 : 누군가를 굉장히 그리워한다는 순수 우리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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