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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Jul 17. 2023

네가 뭔데 날 힘들게 해



“탕, 뭐야?”
“뭐가?”
“딸기 딱딱한 거 뭐야?”
“탕후루?”
“탕후루 먹고 싶어요.”     


우리 사이 텔레파시가 통하듯 욕구만 앞세운 시후 표현을 알아듣는 내가 가끔 신기하다. 철 지난 탕후루를 찾기 시작했다. 겨울 과일인 딸기를 인질로 삼고 할 수 없다고, 달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아이는 항상 나보다 한수 앞선다.


“청포도랑 블루베리 해주세요.”     






할 수 없다며 큰소리쳤던 난,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롯데마트로 향하는 힘찬 발걸음을 앞세웠다. 마음은 이미 마트 안이었으나, 늘어지는 걸음으로 보폭을 맞추느라 애쓰는 엇박자에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가 터졌다. 그리고 이내 탕후루를 보고 기뻐할 아이들의 행복함을 상상하며 왼쪽 입꼬리가 살랑였다.          


회사 다닐 적 임박한 출근시간, 지하철 도착의 띠링띠링 알림 소리에도 뛰지 않던 나였다. 그러나 오늘은 그거 하나 맛 보여주고 싶어서 오픈런을 불사했다.


‘AM10:00 오픈합니다.’

그 문구 앞에서 기다리기 10여분, 마트 직원이 열어주는 그 첫맛을 느끼게 되었다.     


서둘러 샤인머스캣 15,900원짜리 하나와 블루베리 7,980원짜리 하나를 사서 계산대에 올렸다. 항상 잊었던 물건은 결제 후 생각나는 법, 과일을 꽂을 꼬치가 뒤늦게 생각났다. 다시 발걸음을 돌려 다이소에 들려 하트가 함께 있는 이쁜 꼬치를 장바구니에 담았다.(이 정성, 남편에게 반만이라도 쏟았으면...)     


하교까지 시간이 유독 길다. 아무리 시계를 바라봐도 내 마음을 읽은 건지, 약 올리듯 느리게 걷는 시계다.     


13시 30분. 드디어 아이를 만났다.

오늘은 하교 후 맞이할 우리들의 시간에, 학교에서 일과가 궁금하지 않았다.


엄마가 탕후루 만들어줄게!


우린 평소와 같은 하굣길을 평소와 다른 감정으로 걸어왔다.   

   

내 마음 가득 담은 꼬치에 과일을 이쁘게 꽂아 보글보글 끓는 설탕물에 떼구르 굴러본다. 아이도 반짝이는 눈빛으로 곁에서 지켜본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조금 누르고 냉동실에 10분 굳힌 후 반짝이는 탕후루는 우리 앞에 놓였다.     


“짜잔.”

아이는 씩 한번 웃어 보이고 작은 입으로 샤인머스캣을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맛없어!”
“하나만 더 먹어봐.”
“아니! 포도랑 블루베리, 씻어주세요!”     


23,880원을 들인 탕후루는 까슬한 미식가를 만나, 설탕 옷을 다시는 못 입는 아찔함을 겪었다. 그날 우리는 과일은 날것 그대로 먹기로 약속했다.      

    





육아에는 다양한 길이 존재한다.

물론, 남매인 시후, 시율의 길도 이따금 다르다.

그럼에도 함께 추구하는 것은 ‘경험을 통한 행복’이다.     


시후의 머릿속 반짝이며 유혹했던 탕후루는,

시율의 시야를 자극했던 보석 같던 탕후루는,


상상만큼 부드럽지도,

입속을 화려하게 장식하지도 못했지만


그 설렘을 걸어갔던 우리의 기억 속에는 오랫동안 달콤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비록, 날것이 더 맛있음에도.






엄마,
포도랑 블루베리랑 토마토 주세요.
많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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