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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Sep 05. 2023

묵언의 꼬마가 쏘아 올린 작은 울림

출근 첫날 만난 발달장애인


“똑똑똑. 안녕하세요.”    

 

아버지의 손을 잡은 뽀얀 피부의 남자아이는 해맑게 웃으 지구대 문을 두드렸다.


“안녕. 이름이 뭐니? 몇 살이야? 경찰 좋아해?”


어떠한 질문에도 아무 말 없이 그저 일관된 미소로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것에 집중하던 꼬마 곁의 아버지는 했다.

“발달장애를 겪고 있어요. 산책 중에 인사하고 싶다 해서 들렸답니다.”    

 


“충성! 다음에도 경찰관 보고 싶을 때 또 놀러 와.”

그제야 꼬마는 눈을 슬쩍 마주쳤다. 이윽고 아버지의 품에서 활짝 웃었다. 정말 인사만 건네고 홀연히 떠난 아이와 아버지였지만, 그들이 남긴 편안한 미소는 꽤 오랫동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기나긴 휴직 끝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예전에 비해 많은 것들이 변화했고 특히, 현장경찰관에게 요구하는 것들은 늘어났다. 그래서 쉬는 날임에도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다. 복직 전 홀로 카페에 가서 육아서적을 뒤적이던 난, 근무 매뉴얼을 챙겨 익히고 있다.        

        

접수되는 관할 신고를 청취하다 보면, 전과 다르게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 당사자뿐만 아니라 지역주민의 장애인 관련 신고이다. 물론, 다양한 이유로 신고가 들어오지만 특히, 낯선 장애인의 행동을 범죄(피해)와 관련성이 존재할 수 있다는 투철한 시민의식을 가진 신고도 많다. 이런 신고를 접할 때면 우리 사회는 여전히 온기가 남아있음을 새삼 느낀다.        

  

지구대 내부 게시판에는 다양한 정보들이 게시되어 있다. 빼곡히 채워진 한 편의 벽을 유심히 눈으로 읽어 내려가며 발견한 것은 ‘장애유형별 응대 매뉴얼’이었다.

그 서류에 시선과 마음을 온전히 빼앗겼다.     







오른쪽 상단의 날카로운 페이퍼 끝에 검지 손가락을 맞대 매만진다. 따갑지도 간지럽지도 않은 애매한 촉감에 손가락 끝은 먹먹해졌다.

이내 날이 섰던 각은 어느덧 동글해졌다.     


매뉴얼 서류 뭉치를 붙잡고 오늘도 생각한다.

자신의 불편함을 설명할 수 없는 그들에게, 나는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불편한 날카로움이 둥근 편안함으로 전환하기 위해, 나는 무엇에 무게를 두어야 할지를 고뇌한다.



지금 상황에 복직함이 내 욕심일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이 컸다. 그러나 6년 만의 복직 첫날, 우리 시후의 따스한 미소를 닮은 발달장애를 겪는 꼬마 손님의 방문으로 죄책감은 뜨거워진 가슴으로 녹아버렸다.    

 


이곳에서, 내가 하고 싶고, 해야만 할 일이 생겼다.  


첫 야간근무날, 아이에게 받은 메시지


사진출처(제목)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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