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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Sep 11. 2023

9시 15분, 3000원을 건네는 남자


주의

  그 남자는 손흥민선수가 아님을 미리 알립니다^^



월요일 아침, 둘째가 유치원을 통과하는 순간, 나에게 자유가 찾아왔다. 설레는 마음은 유치원 앞 메가커피에 도달했을 때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증폭된다.


메가오더라는 스마트한 주문방식이 있음에도, 직접 누르고 결제하며 기다리는 아날로그적 수고로움이 그 설렘을 잔잔하게 이어간다. 이따금 주문이 밀려있을 때 더 행복하다. 조그마한 창을 통해 흘러나오는 커피 향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소한 향을 맡던 9시 15분, 어김없이 그가 왔다.

하늘색 체크무늬 셔츠와 댄디한 검정 반바지, 깔끔하게 쳐 올린 짧은 머리에 더해진 흰머리카락은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그의 커피 주문방식은 나와 다르다. 오히려, 나보다 더 깊은 맛을 즐긴다.      


“카페라테 하나.”


호주머니 속 빨간 지갑에 반듯이 접혀있던 3천 원을 꺼낸 그는, 100원을 돌려받는 일과 스탬프 하나 찍는 것을 잊지 않는다. 핸드폰 번호를 입력하면 스탬프가 찍힌다는 종업원의 설명에도 꿋꿋이 핸드폰 바코드를 열어 점원에게 전달하는 수고로움을 만끽한다.


그렇게 도장 하나 찍힌 핸드폰을 받고서야 그는 편안히 의자에 앉아 커피를 기다다.


커피를 먼저 건네받은 난,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그가 주문한 커피를 오른손으로 받고 카페 문을 열어, 횡단보도의 초록빛을 확인하고 건너서야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그제야 난, 작은 창을 열어 점원에게 조심히 물었다.

“방금 카페라테 사신 중년 남성분, 자주 오시나요?”
“네. 같은 시간에 오세요.”
“직접 주문하시던데 번거롭진 않으세요?”
“괜찮아요. 조금 당혹스러운 순간이 있긴 하죠.”     


느리지만 오차범위 없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난,

가슴이 두근거렸다.

당혹스럽지만 조금 다른 방식을 요구받은 점원 또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녀와 난, 같은 자리에서 다른 감정을 느꼈다.

  





점원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보통과 다른 손님을 맞이하는 일은, 그녀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이 하는 말을 듣지 않고 로봇처럼 도장을 찍어달라고만 내뱉는 그가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물결에 맞혀 유연하게 대처한 그녀의 섬세함이 그에게 빛이 되었다.     



나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는 홀로 커피를 사기 위해, 얼마의 시간과 노력을 공 들렸을까. 커피를 놓칠 수 없다는 그의 강한 욕구는 스스로의 노력과 주변의 도움으로 입안 가득 고소한 맛을 가득 채울 수 있었다.





  



아침에 만난 중년 남성은 커피를 즐기는 발달장애인이다.

발달장애인에 있어, ‘루틴’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다.


자신이 정한 일련의 과정을 수행하며 얻은 결과물에, 그는 안정과 성취감을 얻는다.

가끔, 자신의 순서가 생각지 못한 변수로 엉키는 순간, 그의 뇌 회로도 함께 엉망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받아들이기 힘든 ‘낯선 과정’으로 설명 못할 감정변화를 겪곤 한다.      


그래서 그에겐 ‘커피 한잔 사는 일’이 단순한 커피 한잔이 아닐 수도 있다.      






9시 15분,  그처럼 따뜻한 카페라테를 한잔 시켰다.


그의 커피가 나의 커피처럼 오늘 내내 따뜻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의 유연한 시선 덕분이 아니었을까.     


오늘의 카페라테가 유난히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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