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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Sep 18. 2023

아들에게 난, 신이었다.

경단녀가 다시 경력을 이어가는 힘


어제저녁 특별하게 먹은 것이 없는데 속이 시끄럽다.

잠시 앉아 있는 것도 여의치 않아 달려간 화장실에서 작은 안도감이 새어 나왔다.     

길지 않은 시간, 왼쪽 검정 휴지걸이에 있어야 할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소리만 새어 나갈 수 있게 화장실 문을 살짝 열어, 그 여백을 통해 있는 힘껏 소리를 쳤다.  

   

“아들. 안방 화장실에 휴지 좀 가져다줘!”   

  

다급한 나의 절규를 피부로 느꼈을 아이는 화장실로 뛰어와 희망을 놓고 갔다.

동글동글 이쁘게 말린 휴지 뭉치.

아들은 내가 ‘무’에서 ‘유’를 창조할 능력이 있다고 믿고 있다. 그 믿음을 깨고 싶지 않아, 호기롭게 휴지를 받아 들었다.


“엄마가 한번 해볼게!”










오랜만에 돌아간 회사에서의 매일매일은 ‘무너짐’이었다. 6년의 공백을 하루 이틀 사이 채울 수 없음을 익히 앎에도, 제복에 알맞은 대처를 원하는 지역주민에게는 그 공백을 내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도와달라고, 다급한 목소리를 내뱉는 그들에게 난 그저, 제복을 입었을 뿐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새벽 4시 30분.

이제야, 어깨에 얹은 무전기가 고요하다. 

파란색, 빨간색 경광등은 서로 적막을 주고받는다.

모두가 잠든 이 시간, 순찰차에서 멍하니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신이시여. 나에게 초능력을 주세요.’


애타게 신을 불러도, 그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저 되돌아오는 것은 앞 유리에 비친 초라한 실루엣뿐이었다.     



무엇이든 알맞은 시간이 있다.

그럼에도 욕심만 앞선 난, 그 시간을 거스르고 싶었다. 시후가 건넨 휴지뭉치처럼 신이 내게 절대적 업무능력을 뚝 건네길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출근하는 새벽길, 지난밤의 피로를 안고 그들과 반대방향으로 걸어 가족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바스락 소리에 이른 시간 잠에서 깬 아이는 엄마 대신 끌어안고 잔 애착이불을 끌며 거실로 나왔다.


“엄마. 도둑 잡았어? 몇 마리 잡았어?”
“이만큼!”
“우아. 우리 엄마 최고다.”


부스스한 머리, 한쪽만 올라간 바지춤, 달게 잔 지난 잠자리의 달곰함이 ‘엄마 최고’라는 말과 어우러져 우리 사이를 진하게 맴돌기 시작했다.


몇 시간 전 순찰차에서 맞이한 무능함은, 아이의 지지에 순식간에 자취를 감쳤다.     


난 오늘도, 아이들에게 넘치는 것을 받고 있는 미숙한 엄마다.

 







스물 후반, 가슴에 품어온 꿈을 실현한 그녀는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능력을 뽐내며 인정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어여쁜 아이가 생겼다. 내게 주어진 가족이란 테두리를 위해, 그녀는 갑자기 경단녀를 자초하게 된다.


힘들었음에도 너무나 소중한 시간을 마치고 그녀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누구 하나 뭐라 말하지 않아도 그 자리는 공기부터 차가웠다. 거기에 더해진 둔감해진 감각들과 렉 걸린 듯 드문드문 떠오르는 매뉴얼에 이윽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터졌다.


무능함보다 두려운 것은, 막막함이었다.


속절없이 당한 상실감을 안고 되돌아온 울타리에는

늘 곁을 채워주는 가족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늘 그랬듯 온기를 나눠줬다.


지금도 여전한 두려움 속에도 즐거운 내일을 상상할 수 있는 것은, 가족의 지지가 있기 때문 아닐까.


 



이젠 엄마라는 타이틀을 잠시 넣어두고 당신의 이름으로 살아갈 그녀가, 가족의 응원대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아들. 엄마가 한번 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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