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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Sep 27. 2023

싸우지 마세요

추석이잖아요


띠디딩. 사건번호 1234.

엄마랑 아빠가 싸워요. 아빠가 덩치가 커요. 무서워요.    

 

현장경찰관을 긴장시키는 알람소리가 있다.

띠디딩. 바로 112 신고 접수 알림 소리다.     


가끔 휴게소 등 푸드코트가 운영되는 대형 식당에 가면 똑같은 알람이 울리는 곳이 있다. 그러면 식사가 나왔다는 알림에 깜짝 놀란 심장을 느끼고 피식 웃곤 한다.






112 신고가 접수되면 해당 관할 지구대(파출소)의 112 시스템에 커다란 알람이 울리며 신고내용이 현출 된다.


그날도 세음절의 알람소리에 우리 모두는 긴장했다. 그리고 그 신고가 가정폭력신고일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그렇게 신고장소로 출동하는 동안, 모든 신경을 곤두세워 정신을 가다듬는다.

특히, ‘무서워요’라는 도움을 요청하는 문구가 있을 땐 외근조끼에 있는 경찰장구를 더 유심히 살피게 된다.      


부리나케 달려간 현장(가정집)의 문을 여는 순간, 긴장감은 최고를 찍는다. 재빨리 들어간 현장에서 가장 먼저 하는 것은 그들의 안전을 확인하는 것과 분리하여, 이야기를 청취하는 것이다. 그 초기 대응이 완전히 확보되었을 때, 경찰관도 사건관계인도 일단 숨을 고를 수 있다.       

   


가정폭력의 경우, 하루아침에 생긴 갈등이 아니다. 지난 세월, 그때그때 해결치 못했던 케케묵은 감정의 찌꺼기들이 그다지 크지 않는 무언가가 발화점이 되어, 걷잡을 수 없게 활활 타오르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그만큼 재범의 위험성도 높다.     


치열하게 싸우는 부부는, 서로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신에게만 집중한다. 심지어 안절부절못하며 높은 위험에 장시간 노출된 자신의 아이가 옆에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따라서 그 위험을 끊어내기 위해, 현장경찰관이 나선다.


그제야 그들은 멈추고, 자신의 소중한 아이에게 시선을 보낸다. 그리고 후회와 미안함이 뒤엉킨 눈물로 아이를 품에 안는다.     


엄마의 품 안에서 무표정의 지친 아이 얼굴을 바라보는 난, 마음이 편치 않다.     








부부가 항상 관계가 좋을 순 없다.

우리 부부도 여느 부부와 같이 꿋꿋이 세운 기준치를 앞세워, 상대가 맞혀주길 원했다.

물론 원점을 잊은 채 싸웠고, 무의미한 상처만 주고받기도 했었다.  


그 후 현장에서, 우리와 다르지 않은 그들을 만났다. 그리고 처음 맞이하는 감정은 안타까움이었다.      


수십 년의 갈등을 하루아침에 잠시 나타난 경찰관이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그들에게 건넬 수 있는 것은, 겁에 질린 아이의 시선을 대신 전하는 것과 그들의 가정의 안위를 위해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시스템을 전하는 것뿐이다.


물론,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행위에 대해서, 남은 가족의 안전을 위해 제정법을 기준으로 엄격한 절차를 이행하는 것은 당연하다.     


울고 있는 엄마의 품에 안겨 있던 무표정의 어린아이가, 우리가 떠난 뒤엔 활짝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추석 연휴 동안 일을 해야 하는 나에겐 달력의 빨간 6일이 그저 부럽다. 둘째 녀석도 그러해 보였다. 서랍 속 한복을 꺼내 입고 뱅그르르 돌아 내 앞에 나타다.


“엄마. 할머니한테 한복 입고 인사할 거야.”
“우리는 이번에 못 가고 10번 더 자고 갈 거야. 그때 입고 가자.”
“싫어!”


젤리로, 아이스크림으로 달래 봐도 쉽사리 넘어오질 않는다.     



다가오는 추석이 긴장된다. ‘가정폭력신고 매뉴얼’을 손에 놓지 못하며 내일부터 시작될 추석연휴에 가정폭력 신고가 늘지 않길 기도하는 아이러니함에 빠져있다.       

    




우리 사랑해서 결혼했잖아요.

온 가족이 모이는 추석, 한 템포씩 양보하며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사랑스러운 아이가 어여쁜 한복을 입고 기다린 추석입니다.



사진출처 : google 무료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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