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소설을 다시 읽기 시작한 건 임신, 출산, 육아로 4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둘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집 거실에 가만히 앉아 있던 때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고요함을 얼마나 바라 왔던가! 아이들을 기관에 보내고 다시 데려오기 전까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는 게 가장 좋았다.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을 때, 문득 생각난 로맨스 소설. 오랜만에 한번 읽어볼까, 하며 인터넷을 뒤적이던 게 그 시작이었다.
이젠 로맨스 소설도 종이책만 아니라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이북이나 웹소설로도 즐길 수 있다. 처음으로 발을 딛었던 ㅋ 플랫폼은 웹소설의 천국이었다. 그동안 알고 있던 작가들이 아닌 새로운 작가들의 작품들이 마구 쏟아져 나와 있었다. 눈 돌아가게 만드는 수많은 작품들 중에 어떤 걸 읽어야 할지 책 소개를 읽고 또 읽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이렇게 다양한 것들을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에 즐거웠던 것이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하원 하기 전까지 짧은 시간 동안 읽기 시작했던 웹소설은 너무나도 흥미진진하였다. 한 회 한 회 연재로 읽는 그 맛은 감질나고 바로 다음 편을 결제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이었다. 내 손가락은 결제를 누르고, 내 머릿속에서는 다음 편의 내용이 쏙쏙 들어왔다. 자유 시간을 얻고 오래간만에 다시 시작한 소설이라 처음에 한두 편 읽으며 즐기던 게 점점 빨라졌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아이들을 재운 뒤 밤에도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빨리 다음 편을 읽고 싶고 결말이 궁금해져서 참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새벽까지 읽고 나면 아침에는 비몽사몽하여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고 아이들을 등원시켰다. 그리고 커피 한잔을 마시고 카페인을 들이부어 정신을 차린 뒤, 다시 웹소설로 빠져들었다.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웹소설을 읽었다. 수십 편을 읽었고 결제한 금액만 기십만원이 넘어갔다. 나는 점점 몰입에서 몰두로 넘어가고 있던 것이다.
몰입은 어떤 것에 빠져들어 집중하는 행위로 긍정적으로 다가오는 단어이다. 하지만 몰두는 좀 더 부정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과한 집중, 결국 중독인 것이다. 하나에 빠져들어 집중하는 것은 좋으나 적당한 선을 지키지 못하고 과하게 되면 생활은 흐트러지게 된다. 몰두로 넘어가던 시기의 내 삶은 이른바 ‘현망진창’이었다. 현실의 삶이 엉망진창으로 변해간다는 뜻이다. 이러한 시기를 두어 달 겪으며 내 건강도 악화되었는데, 수면부족과 눈의 피로도가 쌓여 두통도 생겼다. 그러니 하루하루가 즐거움보다는 짜증과 귀찮음으로 넘치기 시작했다. 피폐한 삶을 겪으며 집안일도 아이들 육아도 엉망이 되어갈 때, 이 중독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좋아해도 과한 건 진정으로 즐기는 게 아니다. 때마침 가계부도 너덜거리고 있었기에 적당하게 끊어내기로 결심했다.
어린아이들을 키우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밥을 먹고 싶어도 내가 원하는 시간에 먹을 수도 없었다. 문 닫고 마음 편하게 화장실을 가고 싶어도 내 화장실 인권은 번번이 무시당했다. 내 의지대로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고, 무엇 하나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하기 불가능했던 시간들이 바로 어린아이를 돌보는 엄마들의 시간이었다. 그 시기를 벗어나 마음껏 내가 원하는 대로 하다 보니 어느새 내 의지는 자유의 반대편인 몰두, 중독에 가까워져 있었다. 어느 쪽도 적절하진 않았다. 중도와 균형을 되찾아야 했다.
그 뒤로는 하루 종일 매달리며 소설에 빠져들기를 멈췄다. 적당하게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그때 몰두한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다시 그렇게는 못하겠구나 싶다. 중독까지 갔다가 살아 돌아오니 지금의 적당함이 마음을 얼마나 편하게 만드는지 알기 때문이다. 뭐든 균형을 찾는 게 좋다. 균형 속에서 누리는 기쁨이야말로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 그 시간을 가졌기에 지금은 자신 있게 ‘로맨스 소설을 읽으니 행복해요.’라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