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엄마에게
저녁밥을 먹고 소화시킬 겸 가족들과 함께 집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갔어요. 큰 아이는 헬맷을 쓰고 자전거를 타고 둘째 아이와 엄마, 아빠는 걸어가며 공원에 도착했어요.
자전거를 타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다른 아이들을 둘러봤어요. 큰 아이처럼 남자아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자전거 무리 중에 초등생 대여섯 명이 있었는데, 그들의 옷차림이 다 검정 티였어요. 그리고 다른 아이들도 비슷한 색깔의 옷을 입었고요. 남자애들 중에 연노랑 티를 입은 아이, 그리고 빨강 티를 입은 우리 아이만이 튀는 색깔의 옷을 입고 있었어요.
그 자리에서 남자아이들의 옷 색깔은 어떤 규칙을 정해둔 것도 없으면서 신기하게도 무채색과 파랑 정도였어요. 그에 비해 여자 아이들 옷은 색감도 더 화려하고 알록달록 무늬도 있었지요.
큰 아이를 임신했을 때 인터넷에서 봤어요. 아이들이 입는 옷을 남자의 색, 여자의 색 구분해서 입힐 필요가 없다, 아이들이 편견을 갖게 하지 말라는 내용에 공감했습니다. 그래서 옷을 살 때는 일부러 분홍, 노랑 계열로 샀어요. 남자아이를 키우는 엄마들과 얘기하면서 “초등 가서는 본인이 무채색으로 고를 게 뻔하니, 엄마가 옷 골라줄 때만이라도 화려하게 입히고 싶어요.”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우리 아이가 꼬맹이 시절에 엄마 화장품에 호기심을 갖고 있어도 개의치 않았어요. 이미 그전에 맘 카페를 통해서 어린아이들은 엄마의 화장품을 얼굴에 바르는 애들이 많다는 글을 여러 차례 봤었거든요. 아이가 립글로스를 입술에 바르는 것을 흉내 내도 그저 웃어넘겼지요.
하지만 꼬맹이여도 아이가 엄마의 스커트를 입으면서 패션쇼를 시작했을 때는 슬슬 걱정이 올라왔습니다. 어느 날 옷장에 걸린 알록달록한 치마들을 보면서 예쁘다고 말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한두 벌씩 꺼내서 몸에 걸치기 시작했지요. 하하 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했어요.
한참 어리긴 하지만 우리 아이의 이런 행동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 걸까? 그저 옷이 예뻐서 하는 행동인지, 이것도 커 가는 과정 중의 한 모습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주변에서도 인터넷 정보 속에서도 그런 걸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이렇게 치마를 찾는 우리 아이는 어떤 성향이 있는 게 아닌지 의문이 들며 마음이 혼란스러웠어요.
별로 아는 것도 없지만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에 어려서부터 아이에게 차별을 심어주고 싶지 않았어요. 의식적으로 편견을 갖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관습적인 기존의 남성성에 아무 생각 없이 끌려가지 않겠다고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이렇게 답을 알 수 없는 경우를 만나니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때 제 자신과 마주했어요. 우리 아이는 ‘보통’의 남자아이들처럼 평범했으면 좋겠다고요. 타인이 봤을 때 남자답구나, 이 아이는 무난하구나, 하는 시선 속에서 안심하며 이 사회를 살아갈 수 있길 바랐습니다. 우리 아이가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동안 ‘타인들의 시선’ 속에서 이상해 보이지 않길 바랐어요. 아이들이 어떠한 편견 속에서 자라지 않도록 노력하는 엄마이고 싶었지만, 남자아이를 키우면서 이런 제 모습에 씁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