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나의 악연은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어려서 엄마가 미술학원을 보내주셨는데, 첫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 손에 이끌려 미술학원에 들어갔을 때 생각보다 크고 학원생이 많았던 그곳의 분위기에 살짝 위축되었다. 나는 낯선 아이들과 눈을 맞추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 사이 엄마는 선생님과 몇 마디 나눈 후, 나를 남겨두고 나갔다.
아이들이 열심히 미술활동을 하고 있어서 선생님이 나만 봐줄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그는 나에게 고무판과 조각도 몇 개를 쥐어주며 자리에 앉으라고 하셨다.
“우선 이 고무판화를 하고 있어.”
하지만 나는 고무판과 조각도를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이건 뭐지?’ 나는 낯선 물건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살폈다. 왜냐하면 고무판과 조각도를 본 게 그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난 고무판화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몰랐고, 용기 내어 선생님께 물어볼 수도 없었다. 선생님께 질문을 한다는 게 참 어렵고 부끄러웠던 소심쟁이였다.
당시에 눈치라도 있었으면 옆을 힐끔거리면서 따라 하기라도 했을 텐데, 좀 둔했던 나는 옆사람들을 휘휘 둘러보긴 했지만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아이들이 조각도를 들고 고개를 숙이며 고무판에 뭔가를 하고 있길래, 나 역시 조각도를 살펴보았다. 기본적으로 조각도는 둥근칼, 세모칼, 납작칼, 창칼 이렇게 4개가 한 세트이다. 한참 쳐다보다 마침내 조각도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조각도를 살짝 감싸 쥐고 고무판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 끝에서부터 뻗어 나오는 나의 기가 ‘창칼’의 칼날에 실려 고무판의 정중앙으로 향했다. 거기서부터 위에서 아래로 일직선을 그리듯이 쭉 내리그었다. 단 한 번의 손놀림으로 깔끔하게 칼 끝을 떼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칼을 대려는 찰나.. 어라, 고무판이 이상했다.
판을 보니 내가 내리그은 선 모양 그대로 판이 쪼개져 있었다. 헉!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이건 아닌 것 같았다.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에 고무판을 들어 올렸다. 잘라진 판이 덜렁거리며 꼭 두 다리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고무판을 얼른 다시 책상에 내려놓고 다시 다른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아뿔싸! 고무판화 작업하는 아이들을 보니 둥근칼이나 세모칼로 고무판에 살짝 찔러 넣고 고무를 파내고 있었다. 아무도 뾰족한 창칼은 쓰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고무판화는 원래 연필로 밑그림을 그린 뒤 조각도로 선을 따라 파내는 것이지만, 책상 위에 연필이 있다한들 내가 알 리가 있나..
아이들과 다르게 행동하고 고무판을 망쳐버린 내가 못나 보이고 싫었다. 처음이라 실수하는 게 당연한데도 나는 그걸 견디기 힘들었다. 고무판을 갈라놓은 걸로 선생님께 혼날까 봐 걱정도 되고 무서워졌다. 이윽고 눈물이 차올랐지만 초등학생이라 소리 내어 울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선생님이 다시 나에게 올 때까지 눈물을 애써 참아가며 다른 애들처럼 조각도를 바꿔 들고 고무를 파냈다. 너덜거리는 고무판으로 선생님에게 혼나거나 한소리를 듣지는 않았지만, 그날 내가 무능하다는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혀 버렸다. 완벽해야 하는데 큰 실수를 저질렀고 생각했다. 그 후에는 내가 미술에 전혀 소질이 없고, 손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무언가를 꾸미는 일은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돌이켜보면 난 어려서부터 강박적인 생각을 가졌다. 완벽해야 한다는 비합리적인 생각 때문에, 실수하면 스트레스를 받았다. 게다가 부끄러움이 많아서 선생님에게 질문도 못하고, 실수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방법도 몰랐다. 현재 우리 아이가 나를 닮아서인지 이러한 강박적인 모습들을 한 번씩 보여준다. 이것도 육아서를 읽으면서, 엄마의 마음공부와 관련된 책들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완벽하지 않고, 나 또한 예외일 수 없다. 행여 아이를 통해 대리만족을 얻으려고 해서도 안된다. 그런데 나는 자꾸만 나의 결점이 우리 아이에게서 나타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를 꼭 닮은 큰 아이를 키우는 게 무척 힘들었다. 더 정확히는 내가 내 마음을 괴롭혔다. 아이는 나와 다른 주체적인 존재로 봐야 하는데, 내 분신이라 생각하고 결점이 드러나지 않길 바랐다.
내가 정말 인정하기 싫었던 것은 아이를 통해 부족하고 못난 내 모습이 드러나는 걸 두려워했다는 점이다. 이런 비합리적인 생각들이 육아 우울증을 야기시킨 건 물론이고 아이도 힘들게 했다. 지금은 심리상담과 부모 교육을 통해 아이를 독립적인 존재로 보려 노력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공부가 필요한 엄마라 아이에게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