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웹소설을 읽는 어린 독자들에게
스무 살, 친구랑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봤어요. 사랑에 대한 주제였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 밖으로 나서는 제 기분은 뭔가 불편했습니다. 친구에게 설명하기 힘들어 꾹 눌러버렸어요.
친구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영화를 곱씹었습니다. 강렬했던 영화였어요.
‘그래, 사람마다 사랑의 방식은 다양하니까, 남자가 한 여자를 얼마나 사랑하면 그렇게까지 했겠어. 집착은 심했지만 여자도 행복해하면서 끝났으니까 뭐.. 세상에는 그런 사랑도 있는 거지.’
이렇게 생각을 마무리지었습니다.
그 영화는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였어요.
몇 년 뒤에야 그 영화를 비판하는 글들을 보면서 스무 살에 했던 제 생각이 무지했다는 걸 알았어요. 그리고 무서워졌어요. 어쩌면 전 현실에서 그런 사람을 만났더라도 그것도 사랑이니까 하면서 참아냈을지도 모르니까요.
사랑인 줄 알았지만, 실은 그저 폭력이었어요. 사랑의 한 방식이라 여겼지만 엄연한 범죄 행위였어요.
스무 살의 저는 유명한 감독이 만든 영화니까, 당연히 그것도 사랑일 거라고 그대로 믿었어요. 10대일 때부터 해외 로맨스 소설을 읽었지만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보이는 폭력적인 모습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습니다. 이야기의 마지막엔 여자 주인공은 행복해하면서 끝났으니까요.
어떠한 일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는다는 건 중요합니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로맨스 웹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들이 현실에서는 범죄이고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압니다. 로맨스 웹소설 읽기는 오래된 취미라 가끔은 어쩔 수 없는 설정이니까 하며 참고 넘기기도 하고, 그러한 설정이 있다면 소설을 안 보기도 해요.
대부분의 성인들은 소설과 현실을 구분합니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나 성인이라고 다 옳게 판단하지는 않아요. 오래전 스무 살의 저도 성인이었지만 몰랐던 것처럼요.
로맨스 웹소설은 카카오 페이지나 네이버 시리즈에서 15세 이상 관람가로 론칭되어 유료 연재되고 있어요. 지금의 10대는 예전의 저보다 훨씬 더 성교육도 잘 받았을 테고요. 그럼에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여서 그런지 조금은 우려됩니다. 성교육을 받고, 고등 교육 수준까지 올랐다고 해서 사람들이 모두 문제의식을 갖게 되는 건 아니니까요.
적어도 폭력적인 설정이 은연중에 로맨스라고 학습화되어 내재화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제가 읽은 책에서 문제의식을 갖는 것을 예를 들어볼게요.
1)
<휠체어 탄 소녀를 위한 동화는 없다> 저자는 캐나다 백인 여성 뇌성마비 장애인입니다.
책 속 내용입니다.
안데르센의 동화와 디즈니 만화 영화 <인어공주>에서 주인공은 물고기 하반신을 포기하고 인간의 다리를 가져요. 원작에서는 걷는 게 끔찍하게 칼로 베이는 듯한 고통을 겪지만 두 다리를 포기하지 못해요.
디즈니에서는 마지막에 두 다리로 걸어가며 왕자에게 안겨 결혼식을 올립니다.
저자는 말해요. 물고기 하반신을 휠체어나 목발로 생각해 보라고요. 동화 속에서 그것을 버려야만, 두 다리로 멀쩡히 걸어야만 행복해진다는 걸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오랜 옛날부터 장애는 제거되어야 한다는 걸로 무의식에 스며들었대요.
평생 휠체어에 앉아서 살아야 하는 장애인 소녀가 디즈니 인어공주가 물고기 하반신을 버리고 두 다리로 걸으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자랍니다. 자신은 평생 가질 수 없는 걷는 다리이지요. 어떤 생각을 할까요?
비장애인들은 동화를 읽으며 무의식적으로 스며든 장애에 대한 편견에 “문제의식”을 가진 적 있습니까?
2)
<남자아이들에게> 유명한 남성 성교육 강사가 쓴 성교육 책입니다. & 유튜브에서 강연하는 다른 성교육 강사들도 강조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어린아이들에게 어른이 다가와서 나쁜 행동을 하려고 할 때, “안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를 크게 외치라고 합니다. 많이 알려진 성교육 내용입니다.
여기서 어떤 “문제의식”을 가져야 할까요?
만약 아이가 너무 무서워서 싫다고, 하지 말라고 외치지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성폭력을 당하게 되었다면, 배운 대로 하지 못한 아이의 잘못일까요?
이러한 피해자 중심 교육이 문제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가해자 중심 교육으로 바뀌어야 해요. 처음부터 그러한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고, 범죄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예방 교육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