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분들에게 전하는 희망 메시지
나는 오늘도 음표로 순간을 두드린다.
정지해 있던 그 순간이
어쩌면 망각으로 향하던 것들이 음악을 통해 되살아난다.
그곳에 우리가 흔히 내뱉는 언어 또한 존재한다. 이 언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곁을 맴돈다.
짙은 향과 강한 인상을 지니는 언어는 오랫동안 아니 어쩌면 평생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
그만큼 말이 주는 힘은 위대하다.
나는 때론 언어에서 공간 감각을 느낀다.
어떤 사람은 말이 평면적이고 누군가는 입체적이다.
심지어 그 윤곽이 제 빛을 발하지 못해 단편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이따금 나는 새벽을 언어 삼아 나에게 묻곤 한다
아침이 나에게 닿기 전 물었던 물음은 나를 향해 도사리는 두려움 같은 것이었다
왜인지 그 암흑 사이에는 두려움이 그늘과 착각하기 쉬운 부스러기 같아 보였다.
두려움, 불안, 막막함이 꼭 제거되어야 하는 대상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용인되어서는 안 되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우리 모든 인간은 때때로 감정을 강요받곤 한다.
그 흐름을 역행하고자 하는 반항이 존재하는 것도 이 이유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언어로 시작한 이 글이 감정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는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단순히 흩어져 있던 낱말이 문장을 만들고
문장이 감정을 만나
대화를 이어나갈 때마다 마주하는 두려움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우리는 우리 입 밖으로 나오는 낱말들을 모두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은연중에
낯선 낱말들의 출현에 두려움을 느끼곤 한다.
그 무의식의 고리들이 차가울지, 따뜻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려움'이란 감정은 제대로 두려워할 때 의미가 있다.
두려움을 가질까 봐 또 두려워하는 이중적인 감정은 오히려 우리를 더 힘들게 만든다.
최근 나는 말 한마디가 상대방에게 끼칠 영향력에 대한 두려움, 또는 인간 본연에 대한 두려움,
새벽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이 감정을 이렇게 나열하는 이유는 나를 힘들게 하는 감정에 불안과 같은 감정을 이중으로
씌워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당당히 두려울 때 우린 점점 용기를 되찾을 수 있다
낯선 감정에 한껏 움츠려있을 그 감정을 이제는 폭넓게 풀어내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난 이들을 밀어내기 위해 미완성된 것을 이끌어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촘촘해진 불안의 정도, 빽빽하게 밀집된 두려움이 강해지기를 포기할 때
난 미리 준비해 놓은 희망을 조심스레 풀어낼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폭넓은 감정이 내재되는 흐름을 붙잡고 있기보다는
놓아줄 수 있는 여유를 지녔으면 좋겠다.
놓아줄 때 느낄 수 있는 아늑함이 여러분들에게 최고의 선물을 가져다주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