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품기 위해 , 경청하고자
합니다

경청의 힘

by 가야금 하는 희원

''저도 이제는 듣고 싶습니다''


가야금을 전공한 지 어느덧 13년이 다되어갑니다.

그런데 이제 생각해 보니 분명 이 직업이 잘 들어야 하는 직업임에도

오로지 내 연주를 하기 위해

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소리를 들어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연주를 잘하기 위해 소리를 잘 듣는 것은 분명 필요하죠!


하지만 경청의 이유가 내가 어떤 것을 전달하는 이유가

결국 '나'만을 위해서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 지는 며칠이 지나지 않았습니다.


경청과 전달은 음악을 하는 연주자로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예술이란 것이 자기만의 세계에서 개성을 살리는 것도 맞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나도 설명이 어려운 예술을 하고 있다면 아무래도 공감하기는 어렵겠죠.


그런 점에서 어떤 예술을 펼치더라도 창작자의 자유이지만,

그것들이 너무 내 중심으로 돌아간다면

'축을 잃은 궤종시계 같은 예술'이 되지 않을까요?


따라서 우리는 경청하는 태도를 배워야 합니다

공감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전달하는 말에 너무 깊고 어려운 군더더기가 끼어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합니다.


오로지 나만을 위한 경청이 '상대방도 위하는 경청'이 되는 순간,

비로소 우리의 예술을 펼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저는 예전에 썼던 공책을 펼쳐보았고, 저는 피식 웃었습니다.

물론 비웃음은 아니었지만, 과거의 내 모습이 귀여워 보여서 웃은 미소였습니다.


즉 오롯이 나만 알아볼 수 있는

때론

나도 잘 모르겠는 미제의 방정식 같은 글들이 적혀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용기를 내어 제가 과거에 가야금을 연주한 녹음본도 감상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나름 좋다고 생각하여 표시를 해놓은 녹음이었고

그렇게 두 번째 수줍음의 미소가 새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깨닫게 되었죠.

'아, 인생은 내가 갇힌 프레임을 깨고

나만의 속삭임이 아닌 모두의 속삭임을 볼 수 있는 눈을 키워가는 게 인생이구나'


이렇게 전체를 볼 수 있는 시선에서

자신만의 예술을 선보일 수 있다면

얼마나 환상적인 조화일까요?


저는 그런 예술을 선보이는 사람이 되기 위해

세상의 모든 소리를 자연스럽게 듣는 연습부터 하려고 합니다.

또한 엄마와의 대화, 친구와의 대화 등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그들의 이야기를 그 어떤 판단 없이 지긋이 들어보려 합니다.


이 잔잔한 경청이 진정한 예술의 시작이니까요.

저는 그렇게 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듣는 것이 아닌 경청을 하기 위해 지긋이 듣는 청자가 되겠습니다.


모두가 차분히 서로의 삶의 소리를 경청하는 세상이 찾아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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