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이 내 생명줄인 이유

솔직함에도 용기가 필요한 법

by 가야금 하는 희원

'아 또 돈 들어가네..'

'나 때문에 엄마아빠가 싸우시는 거 아닐까?'


이 마음의 소리는 내 마음속에서 자주 들리는 소리였다.

가야금을 하다 보면 돈이 들어갈 때가 많았다.

그래서 우리 아빠는 내가 가야금을 하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았으며

적극적인 지원 또한 없었다.

입시로 대회로 돈이 들어갈 일이 생기면 아빠 눈치보기 바빴다.

아빠의 거친 호흡이, 찡그린 표정이 전부 나 때문인 것 같아서 너무나도 불안했다.

잦았던 엄마 아빠의 갈등에 내가 불을 지핀 것 같아서 이 또한 무서웠다.


그럼에도 난 가야금을 좋아했다.


그래서였을까?

이렇게 되기까지 가야금과 나는

서로 놓을 듯 말 듯, 절대 놓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내가 호흡을 조금만 놓기만 해도 가야금과 내가 멀어질까 두려웠다.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내 삶은 언제나 간절했고, 무엇이든 애틋했다.

도망치는 것 또한 사치였고

우울한 것 또한 사치였다

우울함을 느끼거나 고민하고 나면 내가 마주해야 하는 건

열정과 멀어진 시간이었다.


잠깐의 망설임으로 멀어지면, 멀어진 것만큼 다시 따라잡아야 했다.


많은 사람들은 가야금을 하면, 악기를 전공하면

유복한 집안에서 걱정, 고민 없는 세상에서 악기를 전공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내가 가야금 하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경로이탈,

누군가에게는 눈물샘이었다.


가야금과 나는 간절함과 애틋함이 없으면 안 되는 사이였다.

그래서 난 움직일 수밖에 없었고

내가 마주하는 모든 원인과 결과가 간절할 수밖에 없었다

원인마저도 말이다.


때론 나의 선택이 누군가에게 걸림돌이 된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난 그저 가야금을 좋아한 거뿐인데

내 간절함이

내 진심이

내 사랑이

혹여나 내가 사치를 부린 것일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사치가 되지 않도록

헛된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움직여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을 절실히 소망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상하다

물론 이 선택이 부정적인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해도

내가 가야금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난 다시 태어나도 가야금을 또 선택할 것이다.

어쩌면 예상되어 있는 비극이 나를 기다린다고 해도

이것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아프지만 않기를 바랄 뿐

난 다시 선택할 것이다


그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다.

그 아픔의 크기가 얼마나 커다란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지만

가야금을 할 수만 있다면

난 얼마든지 고통스러울 자신이 있다.


외로워도 슬퍼도 가야금을 하고 싶은 마음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그 어떤 것도 변명이 되지 않았다.

가야금을 하면 안 되는 이유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난 가야금이 좋다.


때론 내가 화를 내면 안 되는 사람인 줄 알았다.

우울함, 불안 따위 포기했어야 했다.

행여 어쩔 수 없는 슬럼프로 공백이 생기면

절실함으로, 노력으로 채워야 했다.


때론 괜찮은 상태가 목표일 때도 있었다.

내가 괜찮아야 늘 내 꿈을 응원해주는 엄마가 괜찮고

내가 괜찮아야 동생이 괜찮으니까

그리고 괜찮아야 내가 가야금을 계속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난 몇 년 간 나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속여왔다.

그렇게 몇 년을 괜찮다고 선언했다가 사실은 안 괜찮다고 무너지기를 반복했다

힘들다고 인정하기까지도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 선언도 이 무너짐도 절대 헛되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을 이야기로 만들 수 있고,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으니까

이제는 나를 힘들게 하는 상처가 아니라

내가 가야금을 재밌게 할 수 있는 소재가 될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내 이야기로 관객들을 위로해 줄 수 있으니까


난 이와 같은 이유로 직접 곡을 작곡하여 연주하게 되었다.

우리 세상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이 많다

'잘 될 거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수도 있고

아무 말 없이 안아줄 수도 있다.


하지만, 난 내 이야기를 음악으로 솔직하게 전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었다.


내가 이 글을 쓴 건

내 신세를 한탄하자고 글을 쓴 게 아니다.

내가 그 어려움 속에서도 가야금을 할 수 있었던 이유

내가 왜 가야금으로 곡을 쓰고 싶었는 지를 말하고 싶었다.


이렇듯

'김희원'에게 가야금은 내 생명줄이자

나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러니 난 내가 삶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계속 가야금을 할 것이다.


솔직히 이 이야기를 쓰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내 솔직함이 누군가에게 큰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이제는 충분히 솔직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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