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인연을 만난 지금 , 가야금 연주자 에세이
가야금을 하다 보면 수많은 인연을 만난다
물론 스쳐가는 인연도 있고 기억되는 인연도 있지만
저마다의 빛깔을 발휘하는 건 내가 그만큼 그렇게 만나온 인연을 좋아해서가 아닐까?
가야금으로 사랑을 만나기도
이별을 맞이하기도
혹은 삶의 의미를 찾아가기도 했다
좋아서 시작한 가야금이 수많은 만남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상상도 못 했다
수백 개의 알알이 맺힌 우연이 필연이 되고
고리타분했던 내 삶이 조금이나마 특별해지는 건
내 사람들과의 시간들 덕분이었다
한 번은 그런 적이 있다
구례에서 공연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늦게 마쳤기에 마지막 기차를 타야 했고 피곤했던 몸을 기차에 실었다
그 기차는 마침 전주를 경유하던 차였고
잠시 통로에서 전화를 받고 있던 찰나에
익숙하면서도 따뜻한 실루엣이 나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늘 온 마음을 다해 좋아했던 선생님의 실루엣이었다
얼른 달려가 선생님을 불렀고 그때 보이셨던 선생님의 미소는 그 어느 때보다 따스하셨다.
심지어 같은 호차였다
많고 많은 기차 그리고 수많은 시간 중에
한 날 한 시에 선생님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신기하였다.
운명을 그저 낭만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나,
하지만 이 또한 현실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된 기적 같은 날이었다
또한, 운명도 나름대로 내 삶에 짙게 머물기를 바라다보면 이를 잊어버릴 때 즈음,
나에게 선물같이 찾아온다는 것을 배웠다.
그때 그 은은한 미소가 아직도 내 마음을 부드럽게 달군다.
시간이 흘러 추운 겨울이 된 지금, 난 그때 그 따뜻했던 순간을 꺼내먹으며 추위를 달래기도 한다.
이처럼 인연은 정지될 뻔한 순간이 부드럽게 흐르도록 만들어준다
그런 점에서 음악이랑 참 많이 닮아있다
그 만남에도 이야기가 있고 부드러운 음률이 있고 그들만의 리듬이 있을 테니까.
앞으로 나에게 어떤 리듬의 인연이 찾아올지
그리고
어떤 필연적인 만남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갈지 알 수 없지만,
순간순간 다가오는 만남에 온 마음을 다해 충분히 행복을 느끼고 싶다